문이 닫히고 남겨진 컵 하나, 발자국 하나가 오히려 적막을 더 또렷하게
가끔 친구가 들렀다가 가고, 드물게 가족이 잠깐 왔다 가는 날이 있다.
그럴 때의 방은 평소와 조금 다르다.
말소리가 한 번 지나가고, 웃음이 머물렀다가 사라지고, 컵이 하나 더 쓰인다.
혼자 살던 공간이 잠깐 둘 이상의 공간이 되는 것이다.
그 시간은 대개 짧다.
커피를 마시고, 대충 앉아서 이야기를 하고, 냉장고 문을 열어보고, 방이 생각보다 괜찮네 같은 말을 듣는다.
아주 특별한 일이 없어도 사람이 한 번 다녀간 방은 묘하게 숨이 돈다.
평소에는 들리지 않던 생활의 온도가 그때만큼은 조금 높아진다.
그러다 문이 닫힌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는 소리, 복도가 다시 조용해지는 순간, 현관 앞에서 내가 슬리퍼를 돌려놓는 동작까지.
그때부터 방은 다시 원래의 얼굴로 돌아가려 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바로 돌아오지는 못한다.
식탁 위에 컵이 하나 더 놓여 있고, 소파 한쪽 쿠션이 살짝 눌려 있고, 현관엔 벗어두었던 신발의 방향이 아직 어수선하다.
별것 아닌 흔적들인데 그게 유난히 눈에 들어온다.
방금 전까지 여기 누군가가 있었다는 증거들이, 사람보다 오래 남아 방 안을 서성이는 느낌이다.
그 흔적을 볼 때마다 나는 잠깐 멈추게 된다.
혼자 있는 데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누군가 다녀간 뒤에는 다시 혼자인 사실이 새롭게 느껴진다.
평소의 적막은 익숙해서 견딜 만하지만, 사람의 온기가 한 번 지나간 뒤 남는 적막은 조금 다르다.
비교할 기준이 바로 직전에 생겼기 때문이다.
조용함은 같아도, 그 조용함을 받아들이는 마음은 전보다 한 겹 얇아진다.
나는 보통 손님이 간 뒤 바로 설거지를 하지 못한다.
싱크대에 놓인 컵 두 개를 잠깐 그대로 둔다.
마른 입술 자국이 남은 잔이나, 덜 마신 물이 들어 있는 컵을 보면 그날의 대화가 아주 조금 더 이어지는 기분이 든다.
지워버리기 아까운 장면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하지만 결국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간다.
컵은 씻겨 찬장으로 들어가고, 접시는 물기를 닦아 세워두고, 현관은 다시 한 사람의 동선만 남는 모양으로 정리된다.
방은 늘 그랬다는 듯 단정해지고, 나도 늘 그랬다는 듯 혼자 남는다.
생활은 생각보다 빨리 원래 상태를 회복한다.
그런데 마음은 조금 늦는다.
문 닫힌 뒤의 정적을 몸이 받아들이는 데 시간이 걸린다.
아까까지 웃었던 이야기가 갑자기 멀게 느껴지고, 잠깐 환해졌던 방 안의 공기가 서서히 식어간다.
그럴 때 나는 이 방이 원래보다 조금 더 조용하다고 느낀다.
어쩌면 방은 변한 게 없을지도 모른다.
달라진 건 내 쪽일 것이다.
사람의 기척이 지나간 자리를 기억하고 있는 마음, 방금 전의 온도를 아직 놓지 못한 감정이 이 공간을 더 적막하게 만든다.
혼자 사는 사람의 방은 이렇게 가끔, 부재 때문에 더 조용해진다.
그래도 그런 시간이 싫지만은 않다.
누군가 다녀갔다는 건 그만큼 이 방에도 한때 온기가 머물렀다는 뜻이니까.
완전히 혼자만의 공간으로만 남아 있지 않았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짧더라도 함께한 시간이 있었기에, 다시 혼자가 된 순간의 적막도 생겨나는 것이다.
나는 이제 안다.
누가 다녀간 뒤 다시 혼자가 된 방이 조금 더 조용한 건, 내가 여전히 사람의 온기를 반가워한다는 뜻이라는 걸.
혼자 사는 생활에 익숙해졌다고 해서 누군가의 기척이 필요 없어지는 건 아니다.
오히려 익숙해질수록, 잠깐 머물렀다가 사라지는 온기의 자리를 더 정확히 알게 된다.
그래서 가끔은 일부러 컵 하나를 바로 치우지 않는다.
잠깐이라도 그 흔적을 남겨둔다.
다시 혼자가 된 방에서 완전히 혼자였던 것처럼 굴고 싶지 않아서.
오늘 이곳에 누군가 다녀갔고, 그 시간 덕분에 이 방이 잠시 덜 조용했다는 사실을 조금 더 붙잡아두고 싶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