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지만 가질 수 있었던 희망적인 생각으로 나를 놓지 않고 다시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고는 해도 그건 마음가짐이자 태도에 불과하다. 애석한 것은 희망은 희망이고, 삶이 계속되는 한 살아가야만 한다는 것이다.
짊어진 채무로 인한 의무는 물론, 그 자체의 무게만큼 미치는 영향으로 스트레스와 압박감은 물론 고민과 복잡한 생각 따위가 가득한 삶을 말이다. 최소한 정해진 채무가 끝날 것으로 예상되는 날까지 일 텐데 그게 자그마치 8,9년이었다.
세상이 끝날 것만 같은 이별을 해도 세상은 멈춰주지 않고 어김없이 찾아온 아침에, 다니는 직장으로 출근해 일을 해야만 하는 것처럼 삶과 현실은 잔인하고도 무서운 면이 있다. 나의 심정이나 감정은 조금도 개의치 않고 기계처럼 일정하게 움직이고 흘러간다.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쉬지 않고 흘러가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괴롭게 흔들리면서도 완전히 쓰러지지 않게 애쓰고 애써야만 한다. 삶에는 벅차오르는 순간보다 지루하고 괴롭기 그지없는 모래알 같은 날들이 대부분이라는 것을 매 순간 느끼면서.
자칫하면 이전 직장을 떠나지 못할 뻔했지만, 버티고 버티다가 찾아온 실업급여 수습 가능 조건으로 큰 탈 없이 나와 잠시간의 휴식을 갖고 그보다는 급여도 출근의 난이도도 높은 생산직 생활을 하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해결은커녕 완전한 보완책도 되어주지 못하는 임시방편에 불과했다. 몇 개월 정도는 버틸 수 있겠지만 그 이후는 추가로 충당되는 돈이 있어야만 연체라는 가장 크고 우려스러운 문제가 터지지 않을 정도였다.
그 때문에 목표는 어느새 퇴직금을 받는 것, 그를 위해서 최소 1년은 버티는 것이 되었다. 퇴직금을 받는다면 그래도 고비를 잘 넘길 수 있을 만큼은 되었으니까.
1년이란 시간이라는 것이 막연하지만 어렵고 불가능하게는 느껴지지 않았다. 다행히도 몇 개월간은 일이 재밌기도 하고, 신입이라는 이유로 친절하고 잘 대해주는 사람들 덕분에 일이 힘들어도 따뜻한 분위기 속에서 잘 적응할 수 있었고 명절에 비례해 늘어난 연장근무 시간으로 급여도 꽤 많았다.
그것이 나의 상황에서 희망이자, 당분간은 다른 것을 신경 쓰지 않고 일에만 집중할 수 있게 만드는 긍정이었다. 사실은 그래야만 버틸 수 있을 것 같아서 희망과 긍정으로 삼았던 것 같다.
채무가 시작됐을 때부터 현재까지는 물론 앞으로 큰 행운과 변수가 없는 이상, 빚을 갚을 돈의 출처는 월급 즉 직장생활을 하며 다달이 받는 급여가 될 수밖에 없다. 적으면 이 백만 원 중반대의 액수에서 많으면 삼 백만 원 언저리의 돈이 급여로 일정하게 들어오는데 사실 하나도 남지 않는다. 전부 다 빠져나간다고 보면 된다.
돈을 추가로 쓰지 않음에도 다달이 청구가 되는 돈들인데, 크게 신용카드 대금과 대출금이다. 이 중에서 가장 큰 금액은 신용카드 대금으로 일시불뿐만 아니라 개월수를 길게 해서 끊은 할부금이 같이 더해진 것이다. 사실 이뿐이라면 당장은 물론 다가올 가까운 미래에 무거운 걱정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동영상 사이트에서 스치듯이 봤던 다큐 영상에서처럼 치명적인 신용카드의 서비스인 리볼빙이 더해지면서 실질적으로 치명적인 문제로까지 발전이 되었다. 그때당시에는 당장 모자라는 급여로 인해 할 수밖에 없던 임시방편적인 선택이, 엄청난 족쇄가 되었다. 대금을 일정 비율만 내고 나머지는 다음 달로 이월시키는 대신 약 20프로의 고금리의 이자가 붙는 이 서비스는 당장 몇 달은 편리하고 숨통을 트이게 해 줄지 몰라도 어느 순간 어마어마한 빚 폭탄을 안겨주고 만다.
그렇다고 뒤늦게 리볼빙 서비스를 해지하기에는 이미 불어나 버린 금액을 일시금으로 모두 토해내야 하는데, 당장 그 달에 몇 십만 원이 없어서 리볼빙을 한 사람이 적게는 몇 백만 원 많게는 천만 원에 육박하는 돈을 한 번에 청산할 수 있을 리 만무했다. 그렇게 되면 달마다 압박과 고통, 조금이라도 돈을 마련하려 발버둥 치는 생활을 매일매일 계속해야만 한다.
거기에서 추가로 돈을 더 쓰지 않으면 다음 달에 내야 할 돈의 액수는 점점 줄어들 수야 있지만, 한 달 꼬박 돈을 아예 안 쓰는 수준이어야만 가능하다. 즉 생활에 필요하고 불가피한 최소한의 돈만 써도 고액의 카드대금이 거의 줄어들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전 달보다 액수가 불어나게 되는 정도다.
여기에 카드 하나의 정해진 한도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다른 카드를 추가로 한 번씩 사용하게 되다 보니 한 달에 내야 하는 카드값의 종류가 무려 4개였다. 금액이 상대적으로 크진 않았지만, 이미 리볼빙으로 더해진 금액이 많은 상태에서 적은 돈이라도 더해지는 부담은 감정과 정신을 짓누르기에는 충분했다.
그러나 만약 내 빚이 카드값뿐이라면 견딜만한 시련이라 느꼈을 것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내게는 신용카드대금과 함께 대출금이 존재했다. 카드값의 단위가 백만 원일 때 대출금은 몇 십만 원 수준으로 상대적으로 크지 않았던 때가 있었지만, 워낙 눈덩이처럼 무섭게 불어난 청구금으로 인해 급하게 손을 대었던 대출이 하나씩 늘어나면서 점점 그 액수도 증가하더니 고정 대출금이 어느새 백만 원이 넘게 되었다. 그로 인해 최근에는 다시는 손을 대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부디 그렇게 되지 않기만을 바랐던 카드론에까지 비참한 심정으로 손을 댈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월급제도 그렇긴 하겠지만, 시기와 생산계획에 따라 정해지는 업무량으로 총액수가 달라지는 변동성을 가진 시급제의 급여로, 거의 일정하게 고액인 금액을 안정적으로 지불해 낸다는 것은 무척 불안정한 일이자 추가 대출승인 등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에 가까웠다. 이미 언급했던 것처럼 임시방편이자 일부 금액만 확실하게 감당할 수 있는 것이 고작이었다.
스스로 한 선택이고, 과거로 돌아간다고 해도 같은 선택을 했을 거라고 생각할 만큼 그 당시에도 고통을 받고 있는 지금도 당연할 수밖에 없었던 채무생활이긴 하지만 실제로 그 생활을 한다는 것과 생각보다 오래도록 겪으며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은 상당히 큰 고통이 따랐다.
하지만 선택에는 책임이 따르고 나는 그 책임을 다해야 하며 최대한 노력하고 감당해야만 한다. 현재 겪는 고통의 세세한 모습은 알지 못했지만 고통스러울 거라는 걸 예상하고각오한 선택이었으니까.
그래서 부단히 애썼지만 또 한 편으로는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음에도 추가적인 소비를 할 수밖에 없었기도 했다. 그건 채무생활을 떠나서 사람들 속에서 인간인 나로서 할 수밖에 없는 것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