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고쳐 볼까요
“자, 시작하세요”
그 순간 전동 드릴 돌아가는 소리가 요란스럽게 시작되었다.
나도 내 도구를 오른손에 들었다.
두꺼운 앞치마를 두르고 손에는 작업 장갑까지 낀 상태임에도 긴장감이 밀려온다.
20년 전 직접 공방을 찾아 두 달 동안의 작업으로 아이들 책상을 만든 경험까지 했던 나다. 그럼에도 회전 속도만큼 야단스러운 전동 드릴은 여전히 두렵다.
겁먹은 나와 달리 39명의 사람들은 주저없이 드릴의 방아쇠를 당겼다.
‘촤르르르’ ‘지이이잉’ ‘드륵 드륵’
감기는지 풀리는지 모를 시끄러운 소리의 빠른 회전 그리고 순식간에 이루어지는 결과물.
나는 드릴의 앞 부분에 끼워지는 도구가 무서웠다. 끝까지 돌려 고정했음에도 풀릴지 모른다는 걱정을 내내 했었다. 콘크리트 벽 같은 단단한 무언가에 못을 박는다고 하다가 나의 실수로 못이 튕겨 나가면 어쩌지 그래서 사람이 다치거나 물건이 부서지면 큰일인데… 상상하며 진저리를 쳤었다.
이런 공포로 벽에 못 박는 것은 포기하고 살았다.
내가 가진 두려움을 말하면 사람들은 깜짝 놀란다. 매사에 담대하고 거침없어 보이는 사람이 작은 연장에 공포심을 갖고 있다는 것을 믿기 힘들다면서. 극복해 보고 싶었지만 쉽지 않았다. 더군다나 작금의 나는 쇠하는 중이고 연장을 손에 들 기회는 더욱더 희박한데 뭐 어쩌겠어 살던 대로 살아야지.
문제는 집이었다.
내가 사는 집이 나이를 먹어가며 나처럼 삐걱대기 시작했고, 작동을 멈추거나 온전하지 않은 불편함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씽크대 수전의 수압이 약해지고, 쭉 당겨 빼낸 수전의 목은 어느 날부터 제자리로 들어가지 않는다.
설겆이도 재료 세척도 번거로워 졌지만 나는 선뜻 바꿀 엄두를 내지 못했다. 인터넷에서 찾아본 수전은 가격과 디자인이 다양했고, 어떤 것을 염두에 두고 사야 할 지 혼란스러웠다. 고심해서 주문한들 결국 누군가를 불러 출장 비와 설치 비를 주어야만 했다.
정말 이 수전 교체가 내가 손대지 못할 정도로 복잡할까.
물이 터져 부엌 전체가 엉망이 되고 아랫 집에 물이 새는 대 참사가 벌어질 수도 있을까.
유튜브를 보면서 따라하면 된다고 했지만 나는 도무지 용기를 내지 못했다. 설명서에 적힌 생소한 단어에 한숨이 나오는 걸 어쩌랴.
씽크대 뿐이 아니다.
세면대는 조심하는데도 자꾸만 막히고, ‘뚫어뻥’을 뿌린다고 해결되지 않을 것임을 짐작하면서도 더 자주, 더 오랜 시간 뿌려두는 것만 반복하고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세면대 아래에 있는 연결관을 확 뜯어서 근본적인 청소를 하고 싶지만 그게 또 무섭다. 내 능력 밖으로 일이 커질까 봐.
집에서 가장 손이 많이 가는 것은 전등이다.
백열등 형광등 전구는 여러 번 갈아봤지만 LED는 엄두를 못 내고 있었다. 영구적이라고 들었는데 자꾸 고장난다. 친분 있는 시장 철물점 아저씨한테 물었더니 직접 교체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한 번 해보란다.
할 줄 아는 사람들의 ‘어렵지 않다’는 신뢰가 안 간다.
‘그렇게 쉬운 거면 와서 시범적으로 좀 보여주시지’
이전 전구들은 스위치 끄고 장갑 준비해서 그저 돌리거나 잡아당기면 되었지만 통째로 교체하는 LED의 등장은 정말 혼란스럽다. 내가 어디까지 업데이트 되어야 하는 건지 세상의 진화가 부담스럽기까지 하다.
눈 질끈 감고 모르는 척 외면하고 살아도 상관없었다. 전문인을 부르고 그들이 달라는 대로 사례를 하면서 그렇게 살면 되니까. 하지만 나는 그 방식이 불편한 사람이다. 내가 사는 집에 대해 너무 모른다는 현실에 답답하고 그런 나 자신에 불만이 커져만 갔다.
‘서울시 집수리 아카데미’
그래서 나는 이 수업이 정말 구세주 같이 반가웠다.
번잡한 씽크대 아래의 구조도 단번에 파악할 수 있도록 가르쳐 준단다. 미로같이 느껴지는 세면대 연결관이 왜 자꾸 막히는지 보여 준단다. 배우고 나면 전구 교체는 껌이란다.
불편을 해소할 수 있을 것 같아 반가웠지만 두 번의 이론 수업을 듣고 깨달았다. 나는 배우는 그 자체가 기대되고 설레었다는 것을. 쓸모의 유무가 중요하지 않았던 이유가 그것 때문이었다는 것을.
아침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등교하는 학생처럼 눈뜨는 순간부터 분주했고 신나고 즐거웠다.
살다 보니 알겠더라.
늙어 간다는 것은 배움의 기회가 줄어든다는 뜻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