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시작은 단순했다. ‘부모와 자식이 한집에서 같이 사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닌가.’ 7년 전 두 집으로 나뉘어 살기 시작한 초기에는 합치기 버거운 대가족이었지만 지금은 내가 혼자이니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가볍고 명료했다. ‘내 자식들에겐 내가 필요해.’ 제대로 관리되고 있지 않은 그 집의 실태를 목도할 때마다 내 확신은 또렷했다. 시장 다녀오는 길에 마주치는 23층 선생님이나, 3층에 사는 대구 사투리가 구수한 동향(同鄕)의 언니는 나의 계획을 기쁘게 반겨주었다. “아이들과 다 같이 살면 진짜 좋겠다. 애들하고 떨어져 산 지 오래됐지? 어른들 모시고 사느라 진짜 수고했으니 이제 애들하고 재미있게 살날만 남았네.”
나는 이사를 준비하는 나의 즐거운 계획을 알리고 싶어 친구들을 만났다. 주어진 자유와 새로운 터전, 그리고 나를 필요로 하는 자식들과의 합가까지. ‘잘 생각했어. 자기 애들도 좋아할 거야’ 이런 반응을 기대하며 일 년에 한두 번씩 만나는 예전 동료들 앞에서 환한 얼굴로 공표했다. “애들하고 같이 살려고 서울 갑니다. 이제 보는 건 아무래도 힘들겠죠? 전화는 자주 해요, 우리.”
“왜? 왜 애들하고 또 같이 살아?”
“자유가 주어졌는데 왜 또 고생하려고 해?”
“아니, 이제 저 혼잔데 당연히 애들하고 살아야죠. 그리고 우리 애들이 고등학교 때부터 기숙사 생활해서 나랑 떨어져 산 기간이 너무 길어요”
“애들 다 커서 지들 하고 싶은 대로 살고 있는데 엄마가 들어간다면 좋아하겠어?”
“애들 입장도 좀 생각해. 그리고 나이 들어 애들 밥해주러 가는 게 뭐가 좋다고?”
예상 못 한 반응에 당황스럽다. 이렇게 질타받을 일인가?
‘고생하겠지만 애들이 결혼하거나 완전히 독립하기 전에 살아보는 것도 좋을 것 같네요. 근데 힘들면 그만두고 바로 내려와요’ 이런 뜻을 돌려 말한 건가?
그들은 현재 자신들의 아들 딸과 동거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머리 굵어진 자식들과의 동거의 단점을 먼저 토로한다. 엄마의 밥에 여전히 투정 부리고 엄마의 말은 간섭하는 잔소리라고 짜증 낼 것이라고. 뭘 해줘도 자식들은 고마워할 줄 모르니 후회할 선택은 하지 말란다.
감정이 상해버린 나는 그 이후 그들과의 어떤 대화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집집이 사정은 다 다른데. 그리고 우리 애들은 당신네 애들과 다르다고요’
확신했다. 어리석게.
둘째 딸의 전화를 받는 내 목소리는 반가움에 톤이 높다.
“왜? 무슨 일 있어?”
“엄마. 집이세요? 통화할 시간 되세요?”
“응. 나 지금 운동하고 와서 좀 쉬고 있어. 말해”
“며칠 전에 언니랑 싸웠거든요.”
불길한 짜증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이 녀석들은 나이 차가 크지 않다. 첫째와 막내가 다섯 살 차이다. 그 5년 사이에 네 명이나 있다.
나도 모르게 뱉어지는 한숨을 삼켰다.
“왜 싸웠는데?”
“언니가 빨래를 전혀 신경 안 쓰고 너무 밀려서 우리가, 나랑 혜주가 몇 번이나 주말 전까지 빨래 돌려야 한다고 해도 답을 안 하는 거 있죠.”
“인주는 요새 많이 바빠?”
“언니가 언제 안 바쁜 날이 있어요? 그리고 나는 안 바빠요? 혜주도, 수혁이도 다 바빠요”
“맨날 바쁘대요. 밖에 일은 다 챙기면서 왜 분담한 집안일은 안 하냐구요”
“우리 둘이 한 시간 넘게 싸웠는데 그다음 날도 세탁기 안 돌리고 그냥 나갔어요. 그래서 혜주가 돌렸어요”
나는 그저 듣기만 했다. 새삼스럽지 않은 일이었다. 처음 큰애와 둘째가 같이 살기 시작한 10여 년 전부터 있어 온 다툼이었다. 셋째와 막내가 보태어지며 지금은 성인 넷이 살고 있지만 해결되지 않고 그 부피만 커졌다. 각자의 방은 기본이고, 청소 설거지 빨래 음식물쓰레기와 재활용 쓰레기 등. 공동생활에서 나눠지는 역할 분담으로 잡음은 한 번도 멈춰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내가 잠시 간과하고 있었다. 알겠다고 해도 둘째는 말을 멈추지 않았다. 셋째가 대신 빨래를 해주어도 고맙다는 말이 없었고, 언제까지 이런 기본적인 집안일로 싸워야 하느냐며 맨날 잔소리해야 하는 자기도 너무 힘들단다. 당장 해결책을 줄 수 없는 푸념에 나도 조금 지쳤다. “엄마가 알았으니까 진정하고. 수혁이랑 혜주한테 수고했다고 전해라. 너 지금 근무 중이잖아. 목소리 가라앉히고 들어가서 일해.”
하소연하는 둘째를 다독이고 전화를 끊었다. 머릿속이 마구 엉켜버렸다. 끝을 찾을 수 없게 엉켜버린 실뭉치를 손에 쥔 듯 답답했다. 이런 통화는 그동안 수도 없었다. 다람쥐 쳇바퀴 같은 문제가 갑자기 내 믿음을 저만치 밀어내고 있다.
‘다툼의 잘잘못까지 판별하면서 내가 과연 행복해질까?’
내 선택이 어리석은 해프닝으로 끝날지도... 명치가 눌린다, 심장까지 조여와서 숨이 막혔다.
나는 안다. 큰애는 둘째와의 말다툼에서 한참을 밀렸으리라는 것을. 덩치에서도 기싸움에서도 언니는 동생에게 상대가 되지 못했다.
둘째의 전화가 있은 날 저녁. 웬만해서는 연락을 잘하지 않는 셋째가 통화할 시간 있냐고 톡을 보내왔다. 며칠 전 일어난 사건의 객관적인 설명을 꼭 말해줘야겠다며 차분하게 전한 내용은 둘째가 토로한 전말과 아주 많이 달랐다.
“큰언니가 미안하다고 주말에 하겠다고 하는데도 이런 식으로 계속할 거냐면서 장난 아니게 화내고 큰언니가 울면서 그만하라고 하는데도 진짜 엄청 시끄럽게 그랬어요.”
“수혁이가 참다가 나와서 그만하라고 하는데도 지 화가 풀릴 때까지 고함지르고 했어요”
둘째는 참고 있던 자신의 화를 큰애에게 쏟아부었을 것이다. 회사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고스란히 얹어 뱉었을 것이다. ‘엄마가 집에 올 때마다 청소하고 빨래하고 하는 건 좀 미안하지 않아? 제발 각자 방 좀 깨끗하게 치우고 맡은 일 미루지 말고 해’ 그렇게 잔소리를 이어가다가 직장의 힘듦까지 딴딴해져 폭발했을 거라 짐작이 되었다. 둘째는 자신들의 공간이 엄마에게 짐이 되는 것을 싫어했다. 엄마의 도움이 없이도 잘 돌아가는 시스템을 원했다. 하지만 그건 혼자만의 바람이었고 그래서 버거운 책임감이었을 것이다. 자취를 시작하고 몇 개월 지났을 때다. 방학이라 며칠 다니러 온 둘째가 욕실에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는 수건을 한 손으로 쓸더니 말했었다. “이렇게 꽂혀있는 수건에 얼마나 큰 엄마의 노고가 들어있는지 그전에는 미처 몰랐어요”
큰애와 둘째는 한마디로 앙숙 같다. 유치원 때부터 추월한 몸집과 씩씩한 성격에 인싸의 강인함까지 가진 동생한테 매번 지는 것이 싫었던 큰아이는 그래서 티끌 같은 가시에도 뾰족한 억울함이 멈출 줄을 모른다.
셋째와의 통화 후 나는 큰 아이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그 어떤 것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임을 안다.
어설픈 위로의 말조차 큰아이에겐 가시가 됨을 경험했었기에 그저 그 현장을 겪은 셋째에게 큰아이를 맡겼다. 모든 감정이 억울함으로 덧씌워진 큰아이에게 어른의 조언을 했다가 나는 가시 돋친 장문의 글을 받은 적이 있다. 담담하게 쓴 것처럼 보이지만 차가운 존칭과 존대가 서늘했던 그 문자를 나는 읽자마자 그 자리에서 지워버렸었다. 양쪽 말을 들어보지 않고 둘째의 고자질을 기반으로 한 조언이었기에 내 어리석음으로 인해 큰 아이가 받은 상처가 너무 깊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고 후회하고 또 후회했었다.
바보 같은 나는 이 우습지 않은 코미디 상황을 과연 견뎌낼 수 있을까? 원칙주의자인 둘째와 이해받기를 바라는 감성주의자인 큰애. 책을 갖다 달라고 부탁하면서 그 책이 집의 어디쯤 있는지도 몰라 온 집안을 다 찾게 만드는 큰아이와 달리 자기 책장 위에서 세 번째 칸 왼쪽에서 두 번째에 꽂혀있는 문제집을 가져다 달라는 둘째. 초등학교 2학년, 학급 임원이 되어 자그마한 체구로 힘겹게 조회 시간에 반 친구들을 인솔하던 큰아이를 보며 둘째가 조언했었다. “언니 반장 부반장 그런 거 하지 마. 쓸데없는 일에 힘쓰지 마.” 역시나 둘째는 학급 임원을 권하는 선생님께 당당하게 자기는 그런 일에 신경 쓰고 싶지 않다며 단칼에 거절했었다. 일기 쓰기가 즐거웠던 큰애와 주장 글에 독보적이었던 둘째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성인이 된 자녀들과의 동거를 ‘어리석다’로 말려준 이들의 마음이 순간 고마운 진심으로 와닿았다.
나는 현실주의자다. 정해진 결과는 없다고 믿는다. 같은 시작이어도 100% 똑같은 결과는 불가능하다. 수많은 변수 앞에서 하는 선택들이 자신만의 길을 만들어 가는 것이리라. 갈림길에서, 타인들의 조언은 듣되 선택은 오로지 내 관점에서 한다. 내가 원하는 결과는 나의 선택만이 답인 것이다. 합가를 기다리며 혼자 보내는 날들에 익숙해질수록 나의 고민은 깊다. 내 선택의 결론은 이미 정해져 있다. ‘나와 아이들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행복해야 한다. 절대 예외는 없다.’ 그러면 나는 어떤 자격을 갖고 입성해야 할까.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심판관? 무한한 내리사랑을 실천하는 엄마? 나도 이제 그 부담감을 얹고 시작하기 싫다. 추구하는 방향이 이렇게나 달라진 아이들을 두고 자꾸 한 곳으로 모이라고 닦달하고 싶지도 않다. 자식들과 다른 세대를 살아왔다고 선을 긋는 순간 나는 절대 행복해지지 않을 것만 같다.
집안일이 잘 분담되고 그 역할에 서로가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책임감 때문에 둘째도 지쳐있었다. “경주야. 엄마도 엄마가 잘하는 걸 할 거야. 너희들이 다투는 90%는 집안일 때문이잖아. 잘 못하는 것을 하려니까 다들 힘든 거야. 그런데 엄마는 집안일이 그다지 힘들지 않아. 내가 집안일을 책임지고 할게. 시간 나는 사람이 도와주고. 그렇게 각자가 잘하는 걸 하자. 엄마에게 뭔가를 맡기는 것이 엄마를 힘들게 하는 거라고 생각하지 마. 나도 같이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내 몫은 있어야지. 벌써부터 니들이 날 위한답시고 다 해버리면 엄마는 이 집에서 뭐 해? 각자의 몫을 하다가 힘들면 서로 부탁하고 그렇게 같이 살아가자.”
나의 바람은 상하가 아닌 동등한 자격으로 지내는 것이다. 엄마라는 책임감을 아예 내려놓을 수는 없겠지만 10여 년이 넘는 기간 동안 떨어져 살아온 아이들이 이미 통제 범위는 벗어났다는 점부터 인정하고. 각자의 방식으로 사회에서 버텨온 내 아이들을 보이는 모습 그대로 믿어주고 응원해주고 싶다. 역으로 아이들에게도 내가 예전 태산 같고 엄격하기만 했던 엄마가 아니기를 바란다.
오랜 고민 끝에 마침내 나는 엄마가 아니라 같은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이 집에 입성하기로 했다.
인경혜수! 우리 잘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