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계산법
“엄마, 혹시 저녁에 치킨 먹을까요?”
둘째가 방에서 핸드폰을 보며 나왔다. 간장하고 양념치킨이 특히 맛있는 가게가 있다면서 ‘두 마리 시킬게요’ 한다. 지금 집에 있는 사람은 둘째랑 막내, 그리고 나. 세 사람이 저녁으로 먹기에 치킨 두 마리는 적당했다. 하지만 나중에 두 명이 더 와서 먹으면 모자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렇게 배고픈 상태가 아니었던 나는 내가 적게 먹으면 다들 맛은 볼 수 있겠구나 싶어 그냥 잠자코 있었다. 저녁은 조금 적게 먹는 게 건강을 위해서 나쁘지 않을 것 같기도 했고.
배달온 치킨은 역시 맛있었다. 나는 두 조각을 맛보고 멈추었고, 대식가인 막내도 그날따라 적당한 양으로 끝내니 두 가지 맛 치킨은 각 맛으로 예닐곱 조각씩 남은 것 같았다.
식탁을 정리하고 자리에서 일어나며 둘째가 막내에게 말했다.
“수혁아, 너 치킨값 만 원만 보내”
“응.”
‘에? 치킨값? 사준 거 아니었어?’
자연스럽게 대화를 주고받으며 둘째와 막내는 각자의 방으로 들어갔다. 거실 소파에 앉아 있던 나는 순간 뇌가 정지된 듯 사고회로가 멈추었다. ‘치킨값을 나눈다고? 더치페이한 거야?’ 너무 기가 막혀 심장이 벌렁벌렁하는 나와는 달리 막내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얼굴이었고 먹은 양에 비해 적게 내는 것에 신나서 몸을 들썩들썩하며 제 방으로 들어간다.
‘막내가 많이 먹으니까 그럴 수 있지. 매번 배부르게 사주기는 좀 그렇기는 하다. 와, 집에서 먹는 것도 나누어 낼 수 있구나’
엄마가 보는, 지금까지 가족의 경제를 총괄해 온 사람의 견해로는 가족 공동체에서 발생하기 껄끄러운 상황이라는 것이 솔직한 마음이었다. 나는 멍한 표정으로 한참을 그렇게 앉아 있었다.
한 시간쯤 뒤, 셋째가 퇴근을 했고 부엌을 거쳐 자신의 방으로 향하던 중 식탁 위 치킨 상자에 눈길을 보냈다. “어? 치킨이네. 엄마 저녁에 치킨 드셨어요?” “너는 회사에서 저녁 먹고 온다고 하지 않았어?” “간단하게 먹었더니 배고파요.” “그럼 먹어. 많이 남았어.”
셋째가 얼른 옷을 갈아입고 콧노래를 부르며 식탁에 앉자마자 둘째가 “혜주, 퇴근했어?” 하며 거실로 나왔다. “저녁 먹었다며 또 먹는 거야?” “응. 저녁을 일찍 먹고 회사에서 일 좀 더했더니 배고파” 셋째는 핸드폰으로 드라마를 보며 치킨을 맛있게 먹었다. 몇 조각을 먹었는지 나는 모른다. 밤 시간이라 과식은 하지 않았을 것으로 짐작되었지만 셋째의 식사가 끝날 때쯤 둘째가 다시 나와서 식탁 위 치킨 상자를 유심히 보더니 말했다. “혜주야 7천 원만 보내” “응”
주저 없이 답해서 더 놀라웠다.
내 방에서 컴퓨터로 워드 작업을 하던 나는 너무 놀라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이건 또 뭐야?’ 의자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식탁으로 걸어갔다. 내 머릿속은 뒤죽박죽 엉켜있지도, 그렇다고 열받아 뚜껑 열린 상태도 아니었다. 그저 두 아이의 표정이 궁금했다. 어떤 얼굴로 저런 대화를 주고받고 있을지 직접 보지 않고는 상상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걸어 나가는 동안 셋째는 벌써 둘째에게 송금한 것 같았다. “언니. 보냈어” 한다.
“너희는 집에서 치킨 시켜 먹어도 더치페이해?” 결국 참지 못하고 물었다.
“매번 어떻게 사줘요. 내가 샀다고 나만 먹을 수도 없지만 남았다고 매번 그냥 먹는 것도 아니죠”
따져 보면 틀린 말은 아니다. 틀리진 않지만, 명치끝에 걸린 마음이 편치 않다. 온기가 없는 의자에 내몰린 듯 차갑고 야박했다.
치킨은 두 가지 맛을 합쳐 여섯 조각이 남았다. “그럼, 인주가 이거 먹으면 마지막으로 계산하는 거야?”
“언니는 아마 안 먹을 거예요.”
“왜?”
“언니는 돈 달라면 안 먹어요. 돈 아낀다고요”
순간 심장이 조여지며 눈물이 차올랐다.
공무원인 둘째와 회사원인 셋째. 어쨌든 규칙적으로 월급을 받는 두 명과 달리 큰아이는 지금 프리랜서다. 하고 싶은 일을 하기에는 어느 한 곳에 시간적으로 매여있을 수 없었던 큰아이는 2022년, 원하는 만큼 근무할 수 있고 월급이 꼬박꼬박 나오던 직장을 그만두었다. 그리고 책을 발간하고 강연을 다니며 정기적인 수입은 없지만 꿈꾸는 미래를 그려나가고 있는 상태다.
녹녹지 않은 현실과 불확실한 미래를 걱정하고 있는 큰아이는 고등학생 때 입었던 셔츠를 여태껏 입고 다닐 정도로 알뜰하다. 자신이 하는 일이 밖에서 식물을 다루는 일이다 보니 더더욱 머리 질끈 묶고, 바람막이 잠바에 등산화가 익숙한 터라 가족들은 그러려니 한다. 한 번씩 둘째와 셋째가 너무나 제멋대로인 첫째의 패션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지만 엄마인 나는 걱정하지 않는다. 주위의 시선에 흔들리지 않고 자기 생각대로 입는 패션이라면 그 또한 자신의 선택인 것이다. 다행히 중요한 자리에 필요한 차림이 있다면 동생의 옷을 빌려 입고,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둘째와 셋째의 검사를 받고 있으니 굳이 한두 번 입을 옷은 살 필요가 없다는 큰애의 마음을 이해하기로 했다.
합가 하기 두어 달 전, 그렇게 아끼며 씩씩하게 사는 것 같던 큰애가 꾹꾹 눌러왔던 서러움에 폭발한 일이 일어났다. 그동안 아파트 관리비를 아직 학생인 막내를 뺀 세 명이 함께 나누어 내고, 셋이 같이 한 통장에 돈을 모아 두었다가 마트에 필요한 물품을 주문해 왔던 것 같다. 나에게 자세하게 설명하지 않아서 나는 몰랐었다. 그러다가 큰아이가 바빠지며 거의 집 밥을 못 먹고 다니는 날이 두 주째 이어지고 있었고, 큰아이는 자신이 먹지 않는 식비를 계속 내는 건 옳지 않다고 의견을 내면서 큰 소리가 오가는 다툼이 벌어졌고 결국엔 내가 알게 되었다.
큰아이는 전화 통화 내내 울었다. 지금 대학원 졸업논문 준비 때문에 시간을 낼 수가 없어 강연도 못 하고 수입이 몇 달째 없어서 저금해 놓은 돈을 찾아 쓰고 있단다. 그래서 힘들다고 동생들에게 아무리 말해도 들은 척을 안 한다며 서럽게 울었다. 큰애의 울음에 나는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얼마나 아끼고 아끼며 살고 있을지 나는 누구보다 잘 안다. 내게 도움을 청할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러지도 않았다. 동생들도 경제적으로 독립했는데 자신이 엄마에게 손을 벌리는 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단다.
큰애는 혼자 힘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고, 그동안 대학원 학비를 마련하느라 여전히 먹는 것, 입는 것 아껴가며 생활해 왔던 것이다. 종종거리며 잠 줄여 마감에 쫓기는 큰애가 안쓰러워 “아이고, 잠 모자라서 어떡해. 이번 책 끝내면 여행이라도 다녀오면 좋을 텐데. 기분 전환도 하고” 했더니 듣고 있던 둘째가 “엄마가 뭐 그런 거까지 신경을 쓰세요. 다 자기 좋아서 하는 일인데. 지금은 한창 일할 나이예요” 하며 불쑥 끼어든다.
순간 짜증이 확 올라왔다. “그건 니들 입장이고, 같은 나이대인 니들이랑 엄마가 느끼는 마음은 같을 수가 없어. 엄마로서의 내 감정까지 니가 왜 간섭해,”
딱 잘라 말하니 슬그머니 일어나 방으로 들어간다. 이럴 때는 이성이 강한 둘째에게 섭섭한 마음이 크다. 친구들 일에는 공감도 잘하면서 지 언니한테는 어찌 저리 냉담한지 그동안 쌓인 감정이 커서 그런가 싶어 속상했다. 하지만 크게 걱정되지는 않았다. 서로가 다를 뿐이지 나쁜 마음은 결코 아니다. 우리는 가족이니까.
둘째는 우리 집에서 가장 자주 맛있는 밥을 사는 사람이다. 보너스를 받거나 그게 아니어도 친구들과 먹어본 음식이 맛있을 때, 예약까지 해서 사주기도 여러 번 했다. 큰애는 통 크게 쓰는 둘째가 고맙다가도 스스로가 그러지 못하는 현실에, 단번에 좋아질 것 같지 않은 본인의 미래에 우울해한다. 밥 사주는 둘째에게 고마워하는 것을 큰애 입장 챙기느라 못할 수도 없을뿐더러 둘째만큼 못 한다고 큰애에게 과한 요구를 하는 그것도 나는 원치 않는다.
솔직한 엄마 마음은 이렇다.
더치페이. 그래 형제들끼리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가족 중에 누군가가 힘들면 좀 도와주고 기다려 줄 수 있었으면 더 좋겠다. 둘째는 매번 이렇게 주장한다. “언니가 모아놓은 돈이 나보다 훨씬 많아요” 당연하다. 큰애는 조금 먹고, 아껴 입고 그렇게 살아왔으니. 둘째는 친구들과 가고 싶은 곳 여행 하고, 사고 싶은 옷 사 입었으니 당연히 모은 돈이 적을 수밖에.
둘째가 큰애를 걱정하는 내 어깨에 손을 얹으며 자주 하는 말이 있다. “엄마, 걱정하지 마세요. 언니 저러다가 유명해져서 나중에는 언니가 밥 다 살 거예요. 우리는 월급쟁이지만 언니는 돈 많이 벌 거니 걱정 마세요. 우리 엄마는 걱정이 너무 많아서 큰일이십니다.”
진짜 그랬으면 좋겠다. 하지만 그건 앞으로의 일이고 나는 현재 쪼들리는 큰애에게 기준을 맞추고 싶었다.
그래서 우리 다섯 식구의 생활비는 내가 책임지기로 했다. 아끼고 아껴 재산을 불린 다음 아이들에게 유산처럼 물려주는 것은 내가 원하는 방식이 아니다. 나는 내 돈을 우리 가족의 편안함과 단란한 추억을 위해 아낌없이 쓰고 싶다. 내가 죽은 후 내 자식에게 물려줄 유산은 돈이 아니라 같이 밥 먹고, 같이 이야기하고, 같이 여행 다닌 추억이었으면 좋겠다. 현재 내가 가진 돈 좀 축내며 살다 보면 연금이 나올 것이고, 나이가 더 든 후에는 힘이 없어 돌아다니지도 못한 채 내 연금은 쌓일 것이니 건강한 바로 지금, 내 아이들과 나의 오늘이 마냥 행복했으면 좋겠다.
세상 한 30년쯤 더 살았고, 가진 돈이 좀 더 많고, 무엇보다 너희에 대한 사랑이 폭발하듯이 가득한 이 선배가 조금 더 쓸 테니.
인경혜수! 우리 서로 배려하고 격려하며 재미나게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