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누나 셋과 살아온 애잔한 아들

막내의 설움

by 서화

막내가 아들이 아니라 딸이었어도 그 아이는 막내의 설움을 겪고 있을까? 문득 의문이 든다. 세상이 두 쪽이 나도 바뀔 수 없는 서열. 그 상하관계는 내가 의도적으로 단단히 굳혔다고 인정한다.


둘째가 태어나고 첫걸음이 늦었던 큰 아이는 심부름하려고 움직일 때마다 자신을 위해 환호해 주는 사람들이 좋아서 더 부지런히 쫓아다녔었다. 기저귀, 젖병, 수건, 쪽쪽이, 딸랑이, 휴지 등등. 동생의 물품들을 찾아서 전해주는 것은 즐거운 놀이였다. 셋째가 태어나고 시어머니는 이제는 동생이 둘이 된 큰애에게 심부름시키기를 원했지만 나는 둘째가 해야 한다고 명확한 생각을 전했고, 언니에게서 받은 사랑과 관심을 둘째도 동생에게 보이도록 전담 꾼을 시켰다. 그렇게 또 사랑을 받은 셋째는 막내의 따뜻하고 고마운 보호자가 되었다. 물론 돌려줄 대상이 없는 막내는 그동안 받은 내리사랑의 보은으로 무조건 심부름하게 시켰다. 그런 시스템 속에서 자란 나의 아들, 이 집 막내는 그래서 누나들의 부탁과 명령은 거부권이 아예 없는 줄 알고 살아왔다.


이런 ‘내리사랑 보은 시스템’은 실패했다. 만약 지금까지 내가 아이들과 쭉 같이 살았다면 그 시스템의 버그도 잡고, 오류도 수정 보완하여 성공적인 모델로 만들 수 있었을 텐데 나는 그럴 수 없었다. 어릴 적에는 과하다 싶은 심부름 요구는 내 선에서 차단할 수 있었지만, 재수를 시작하며 서울로 상경해 대학생 누나들의 집으로 들어가는 순간부터 미처 보호막의 필요성을 예측하지 못한 나의 잘못으로 막내는 절대 쉽지 않은 시집살이를 시작했다.


그저 똘망똘망하게 귀엽기만 했던 남동생이 수염 난 아저씨로 바뀌어서 들어왔으니, 누나들의 실망감(?)이 상당했다. “우리 귀여운 수혁이는 도대체 어디 갔어?” “예전의 내 동생을 돌려놔!” 웃어넘길 농담이 아니다. 바뀐 것은 막내의 외모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누나 셋의 성격이 너무 강해져 있었다.


북적거리며 어린 시절을 보냈는데 누나들이 차례차례 기숙사로 떠난 후 막내는 심하게 외로워했다. 게다가 누나들의 입시를 한 번도 직관하지 못한 결과, 대학 입시는 아무나 다 들어가는 거라는 망언을 하기에 이르렀다. 남들은 인생을 걸고 대학을 준비하는데 이 녀석은 천하태평이었다. “대학은 꼭 가야 해요?” “하고 싶은 게 없는데 대학은 왜 가요?” “누나들은 다들 자기가 하고 싶은 게 다 있었는데 나는 바보인가 봐요” 덩치는 커지는데 자존감은 한없이 작아지던 시기였다.


본적이 화성과 금성으로 달랐던 막내와 나는 전쟁 같은 고등학교 시절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엄마와 아들이라는 관계를 벗어나 인생을 대하는 자세부터 판이했던 세대 차이가 있었고, 단순하고 답답한 남자들의 생각과 언어적 표현 앞에서 나는 매번 좌절하듯 우울해졌다. 그래서 두 번째 입시를 위해 서울로 막내의 짐을 옮길 때 나는 솔직히 걱정을 좀 덜어 가벼워지고 싶다는 마음이었던 것 같다. 딸들에게 막내를 맡기고 좀 쉬고 싶었다. 예상된 네 번의 입시를 너머 한번 더 해야 한다는 결과에 짜증이 났고, 그 화를 아들을 향한 것도 나를 향한 것도 아닌 실체 없는 대상에게 다 떠넘기고 편안해지고 싶었다. 그렇게 막내는 챙겨준 만큼 가혹하고 냉정했던 누나들의 정글 속에서 살아가기 시작했다.


고3이던 어느 날. 너는 서울에 있는 대학 가면 누나들이랑 살아야 하는데 알고 있냐고 물었더니 자기는 무슨 일이 있어도 누나들하고는 못 산다고 손사래를 쳤었다. 서울로 가야 가능한 일이고 니 성적으로는 서울 가기 힘들다는 말로 끝맺은 대화였지만 누나들 앞에 서면 선생님 앞에서 혼나는 학생처럼 진땀 흘리며 제대로 말을 못 하는 자신이 너무 바보 같다고 울먹이던 표정이 떠올라, 서울로 가도, 서울로 못 가도 내 고민은 줄어들지 않을 것 같았다.


결국 우여곡절 끝에 막내는 서울에서 대학 생활을 시작했다. 내가 또 물었다.

“너 누나들 하고 죽어도 못 산다고 했던 거 기억나? 살아보니 어때? 죽을 것 같아?”

웃으며 물었더니 저도 멋쩍게 웃는다.

“제가 참 철이 없었죠. 서울에서 이렇게 같이 사는 것만도 감사한 일인 줄 모르고 멍청이같이 따로 살 거라는 겁 없는 소리를 했네요.”


막내의 고충을 내가 왜 모를까. 살뜰히 챙겨주는 셋째는 가장 친하고 고마운 누나인 동시에 화나면 아주 신랄한 비판자가 될 것이고, 둘째는 좀 더 강하게 키운답시고 매번 남동생을 군기 잡듯 몰아붙이고, 큰애는 자기 일에 바빠 깊게 관여는 안 하겠지만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살아라.” 했을 것이다.


장장 7년을 막내는 누나들과 살아왔다. 나는 가끔 막내가 누나들에게 혼난 이야기를 체험 후기처럼 듣고 있었지만, 정확한 상황과 각자의 태도와 대처를 가늠할 수 없었기에 그저 “수혁아 니가 좀 더 신경 써”라고만 했다. 그리고 한마디 덧붙였다. “속상한 거 있으면 엄마한테 다 말하고”


8년째 접어드는 2025년, 드디어 내가 들어갔다. 산더미처럼 쌓인 설거지는 막내 몫이라며 전혀 신경들을 쓰고 있지 않아서 그게 제일 먼저 화가 났다. ‘각자 분담한 몫이라 이거지?’

지들도 자신들의 몫을 그다지 잘 해내고 있지 않으면서 막내의 몫은 학생이라는 신분과 세트로 묶어 직장인인 자신들 보다 시간적 여유가 있으니 하면 된단다.


나는 한 달 동안 설거지를 막내에게 시키지 않았다. 그 대신 식사 준비를 도와 달라고 했다. 막내가 먹고 싶은 것으로 메뉴를 준비했고, 막내는 나를 도와 신나게 요리를 같이했다. “우와 엄마 진짜 손 크시다. 냄비 가득 이라서 넘칠 것 같아요.” 고기 반 김치 반인 김치찌개를 한 냄비 끓이는 내내 막내는 엄마 밥 먹는 게 제일 좋다고 행복해했다. 내 짐이 들어 온 후에 한 달이 넘는 기간 동안 막내는 힘센 아들 노릇을 제대로 해주었다. 무거운 거 옮기는 것도, 주문한 물건 조립해서 제자리에 배치하는 것도, 그리고 마트에 가서 어마무시한 양의 장을 보고 정리하는 것도. 하루 종일 내가 움직일 때마다 따라다니며 그렇게 든든한 제 몫을 해주었다.

‘니들은 이만큼 못 도왔잖아. 그러니 내가 수혁이 대신 설거지를 한다고 뭐라 하지 마. 원칙이 그렇게 중요하면 내가 진짜로 원칙대로 해볼까?’


나는 표나게 누구의 편을 들어 줄 수는 없는 입장이다. 그동안 어떤 방법으로 매듭지어져 왔는지 파악이 필요했으며 무조건적인 보호는 막내를 위해서도 좋을 것 같지 않았다. 이럴 때는 딸 세 명이 다 출근한다는 사실이 고마웠다. “이 근처 맛있는 집 없어? 점심 먹을 만한 것 추천해 줘” 그렇게 집 근처, 아들내미 학교 근처의 숨겨진 맛집을 다니며 나는 막내와 여유로운 휴식을 즐겼다. 누구든 숨 쉴 구멍은 필요하니, 내가 숨구멍이 되어주면 되는 것이다.


그렇게 조금씩 집이 정리되어 가던 어느 날, 둘째가 퇴근했다. 거실 소파에 앉아 있는 나를 바쁘게 지나쳐 가며 큰 소리로 남동생을 불렀다. “수혁아, 재활용 쓰레기 니가 버려. 한번 만에 할 수 있지?”

‘야 요것 봐라. 지 일인데 수혁이한테 시켜? 지는 피곤하다. 이거잖아’

갖다 버릴 쓰레기양이 얼마나 되는지 파악하지도 않고 다짜고짜 너 혼자 할 수 있지? 라며 떠넘겼다. ‘언니가 빨래 밀렸을 때는 약속 안 지킨다고 노발대발하더니 지는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시키네’


나는 아는 체 안하고 침묵했다. 그리고 둘째가 방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막내에게 큰 소리로 말했다. “수혁아, 너 혼자 두 번 버리지 말고 나랑 한 번 만에 하자. 10분 뒤에 나가자”

옷을 갈아입고 나온 둘째가 두 번 가야 할 정도로 쓰레기양이 많냐고 묻더니 둘이 같이 하자고 하며 들고나왔다. 막내가 결국 도와주었다. ‘적어도 지도 하면서 부탁해야지. 뭐 이런 놈이 다 있어?’ 심부름을 해주라 했지 누나들 할 일을 떠넘겨 받으라 한 건 아닌데. 나는 내가 관여함으로써 둘째가 자기 일을 엄마에게 넘겼다는 점을 확인시키고자 하는 의도를 명확히 드러내 보였다. 이 방법이 가장 잘 먹힐 것임을 알고 있다. 둘째에게는 나의 힘듦이 아킬레스건이었다.


나는 막내와 성향이 아주 많이 다르다. 다르지만, 엄마라서 이해하려는 노력을 부단히 하고 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노력하고 있음에도 여전히 아들이 미덥지 못하다. 착하고 여려서 물가에 내놓은 애 같은 불안은 아니지만 이 험한 세상 씩씩하게 헤쳐 나갈 수 있을지는 조금 염려가 된다. 아침에 의식이 돌아오며 잠에서 깰 때면 나는 무언지 모를 답답함부터 느낀다. 내가 어디에 누워있는지, 지금이 몇 시인지 확인한 후 제일 먼저 떠오른 걱정. ‘수혁이는 과연 자신이 좋아하는 글쓰기로 인생을 살아낼 수 있을까. 성공까지는 아니더라도 제 한 몸 건사할 정도의 경제적 안정은 해 낼 수 있겠지?’ 아마도 내 잠재의식에는 아직도 막내의 미래에 대한 불안과 그 아이의 여린 성정이 단점이 될까 하는 근심이 앙금처럼 가라앉아 있었던 것 같다. 엄마라고 해서 모든 자식을 다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특히 아들은 더 그런 것 같다.



그렇지만 나는 딸과 아들의 다른 점을 이해의 근본으로 놓고 시작하고 싶지는 않다. 같은 여자라서 더 공감된다거나 성별이 다르니 이해가 불가능하다고 전제하지 않았다. 딸이든 아들이든 나한테는 같다. 그저 내가 낳은 내 자식일 뿐이다. 노력한다고 다 되는 것이 아니라는 현실적인 조언보다는 그저 너가 힘들 때 기운 나게 해주는 방법을 가장 많이 알고 있는 니 편이 있다는 것만 알아주면 좋겠다.


어이 아들! 잘하고 있어. 좀 삐걱대도 괜찮아. 20대에 꼭 성공해야 하는 거 아니야. 엄마는 60인 지금에서야 성공을 욕심내고 있는걸. 잘 웃고 긍정적인 사람이 결국은 행복한 거래. 우리 많이 웃고, 서로를 웃겨주며 천천히 가자.

인경혜수! 상대방에게 요구하기 전에 자신부터 돌아보며 좀 너그러워지자. 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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