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돈 계산이 그렇게 어려워?

동등이 아니라 공정

by 서화

큰애와 둘째가 같이 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예견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더 자세히 풀어놓자면 큰애의 투자가 이윤이 높음을 알게 된 둘째가 자신도 이득을 보고 싶어 큰애에게 편승을 했었다. 한 통장에 돈이 묶여 같이 투자되면 받은 이자는 당연히 배분의 번거러운 계산이 뒤따를 것을 두 아이는 모두 인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투자가 3년째 접어들면서 원금과 이자, 딱 맞아 떨어지는 숫자가 아니게 달라진 금액들 때문에 그래, 계산이 좀 더 복잡해 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 전에야 어떠했는지 나는 알 바가 없다. 둘째가 같이 투자했다는 것도, 얼마나 투자 했는지도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을 뿐이다. 문제의 그 날은 내가 이사를 하고 어느 정도 집안 물건이 정리가 된 2월 중순의 어느 날이었다. 큰 애와 둘째는 몇시간 전, 분담한 집안 일로 어긋난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거실 공기에 불편한 기류를 먼지처럼 흩뿌리고 있었다. 부엌 식탁에 앉아 컴퓨터 작업에 열중하고 있는 큰애와 거실 소파에 앉아 핸드폰으로 게임을 하고 있는 둘째는 그 어색한 기류에는 전혀 신경쓰고 있지 않다는 듯이 각자의 일에만 몰두했고, 그런 와중에도 대화를 간간히 이어가고 있었다.


“우리, 이자 계산 빨리 해야해. 내가 수수료도 벌써 지급했어. 니가 내야하는 만큼 나한테 빨리 보내줘. 나 이번달에 쓸 돈 모자라”

둘째는 핸드폰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언니가 빨리 계산해”

“같이 해. 나 계산하기 힘들어. 시간도 없어” “혼자서 그냥 해. 그거 얼마걸린다고”

얼마걸리지 않으니 자신이 해도 무방한 일을 둘째는 귀찮다는 이유로 큰애에게 종용했다.


나는 처음부터 그 가운데에 앉아 있었다. 소파에 앉아서 그 편안하지 않은 공기도 마시고 있었고, 툭툭 주고 받는 대화사이의 껄끄러움도 고스란히 느끼고 있었다.

큰애는 자신이 받아야 할 입장이니 조금 더 조급함을 드러냈고, 둘째는 그 정도 돈으로 뭐그리 대수롭게 구느냐, 답답하면 언니가 빨리 계산 하면되잖아. 계산이 뭐 어렵다고. 같은 말만 반복했다.


“인주야, 너는 니 작업이나 계속해. 경주야 너 나랑 같이 계산하자. 간단하다며? 지금 바로 갖고와.”

핸드폰에서 계산기를 찾으며 내가 거실 탁자에 바짝 당겨앉으니 둘째가 핸드폰에서 눈을 떼며 나를 본다. 이리로 당겨 앉으라는 듯 나는 고개짓을 했고 둘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알았어요. 내가 할게요. 내가 알아서 할테니까 엄마는 그냥 계세요” 둘째는 일어서서 책상으로 고개를 숙여 펜을 들고 종이에 숫자를 적었다. 핸드폰을 보며 한 5분남짓 계산하더니 큰애를 부른다. “언니, 이리와봐. 계산 맞는지 봐” 큰애가 와서 둘이서 어쩌구 저쩌구 하더니 맞다고 하며 끝.


둘째는 큰애에게 얼마를 송금할지 확인하더니 자기 방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나는 일어나서 둘째를 다급히 따라 붙었다. 그리고 방으로 같이 들어서며 엉덩이를 툭툭 두드려주었다. “잘했다. 니가 수학을 잘하니 니가 하는게 훨씬 쉽잖아. 잘했어. 진짜 잘했어. 5분밖에 안 걸렸잖아. 고맙다” 둘째는 뒤를 돌아보며 어색하게 웃었다. 이게 칭찬받을 만한 일인가 조금 멋쩍어 하면서 그래도 내 칭찬에 기분좋은 듯 그렇게 웃었다.


본인에게 어렵지 않다고 다른 이들에게도 그만큼 쉬울거라는 판단은 너무 강한 이기심이다. 그 이기적인 편견 때문에 결과의 가치를 격하시키게 되고, 상대가 완벽하지 않았을 경우 쉬운걸 해내지 못했다고 비난하게 된다. ‘애교한번 떨어봐’라는 요구에 온 몸에 닭살이 돋는 사람도 있다는 걸 안다면 그거 하나 못해주냐고 기준을 당연시 정하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각자가 잘하는 걸 그저 하기만 하면 된다. 내가 잘하는 것을 상대도 잘 할 것이라 오판하지도 말고, 내가 쉽게 할 수 있다고 해서 상대의 노력을 그까짓거라 폄하하지도 않으면서.

셋째와 같이 가는 나들이길은 특히 사진촬영이 아주 즐겁다. “엄마 꽃을 바라보세요. 아이고 이쁜 것 하는 마음으로 흐뭇하게 바라보세요” 상황을 만들어 준다. “언니 지금 앉아 있는 벤취에 예전에 애인이랑 같이 왔었어. 그래서 지금 그사람 생각이 나고 있어. 옆자리를 아련하게 보는거야” 그렇게 둘째의 인생사진이 또 하나 만들어졌단다. 같은 장소에서 다른 포즈로 30-40장을 찍게 되더라도 우리는 마냥 즐거웠다. 나는 만들어지는 상황들이 너무 새로웠고, 주위 사람들이 우리를 어떻게 바라볼지 단 1도 신경이 쓰이지 않았다. 셋째의 상황극은 매번 나를 용감하게 했다. 그리고 나는 그런 내가 뿌듯했다.


우리는 셋째가 어떠한 요구를 하든 무조건적으로 따랐다. 특히 나는 셋째의 요구대로 하는 큰애가 제일 신기했다. 큰애는 수줍음이 많고, 타인을 지나치게 의식하는 성격이고, 그래서 조금은 결단력 없었던 자신을 후회하며 반성하는 성향의 사람이기 때문이다. 요구하는 포즈를 취하는 큰애의 미소는 약간 어색했지만 그래도 했다. 옆을 보라면 옆을 봤고, 45도로 시선을 들어보라면 애법 아련한 눈빛을 만들어주었다.


그 때 나는 셋째의 또 다른 재능을 보았다. 사진기 앞에 선 사람을 무장해제 시키는 경이로운 재능. 나는 풍경 사진이 아니라 사람이 주제인 사진을 찍고 싶을 땐 셋째가 없음을 매번 아쉬워하게 되었고, 이상하게도 셋째 없이는 그런 상황을 상상할 수가 없다. 소극적인 큰애 조차 포즈가 과감해 지도록 만드는 것은 만장일치로 우리 셋째 혜주만의 능력이었다. 우리는 셋째를 믿는다. 그 아이의 요구에 따랐을 시 가지게 될 결과물을, 그리고 그 연출된 상황안에서 신기하게도 행복하다는 사실을 그 누구도 부정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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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는 자신이 수학적 계산이 빠르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어느 자리에서든 꺼낼 수 있게 정장왼쪽 위 주머니의 손수건 장식처럼 마음 한 곳에 꽂아두고 있는 것 같다. 빠르고 신속한 수학적 판단. 그게 필요한 어느 상황에서든 원하면 보여 줄 수 있다는 듯이. 둘째는 직장에서도 모임에서도 자신이 똑똑한 사람으로 평가받는 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다. 그럼에도 큰애의 짐을 덜어주기 싫어서 계속 미루어왔다고 나는 판단했다. 그 계산이 미루어질수록 자신은 손해가 없지만 큰애는 동생에게서 받아야 할 돈을 받지 못하는 불편이 계속 될 것이기에 둘째의 이기적인 괴롭힘(?) 이 있었다고 느꼈다. 그래서 또 내가 하겠다고 나선 것이었다. 내가 한다면 둘째는 싫을 것이다. 본인이 엄마를 부려먹고 싶어서 일을 미룬게 되버리는 건 계산에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조금 괘씸한 마음이 있었음에도 빨리 계산을 끝내준 둘째에게 고마운 마음만 기꺼이 전했다. 그게 엄마의 마음이다.


설령 큰애를 조금 답답하게 했더라도 결국 했으니까 나로서는 고마운 마음이 더 컸다. 처음부터 자매간에 우애가 깊어 말하지 않아도 챙겨준다면야 그보다 좋을 수 없겠지만 세상사는 공평하다. 진한 우애가 있었다면 또다른 것으로 부정적 골이 생겼을 것이라 나는 확신한다. 왜냐하면 세상에 그 어떤 저울도 한쪽으로만 기울어져 유지되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비록 그것이 가까운 이와의 감정 저울일지라도.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표현은 무언가를 되돌려 줄 때 사용하는 말이다. 받은 만큼의 복수. 하지만 나는 사람들과의 감정거래에서는 이 논리가 큰 힘이 없다고 믿고 있다. 내가 누군가에게 받은 감사함과 고마움을 꼭 그 사람에게 그 만큼의 감사함과 고마움으로 되돌려 주어야 할 필요는 없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결혼 전 어느 퇴근길. 우산을 두 개 가지고 버스에 탄 나는 우산이 없어서 비를 조금 맞은 학생에게 내 우산을 건네 주었었다. 그 아이는 우산을 어떻게 돌려줘야 하냐고 물었고, 나는 혹시 우산없어서 비 맞는 사람을 보거든 주라고 했었다.


그 몇 달 전 소나기가 쏟아지던 어느 날, 나는 횡단보도 앞에서 그 우산을 같은 이유로 선물받았었다. 지금은 횡단보도마다 햇빛을 피할 파라솔이 갖추어져 있지만 그 시절에는 없었다. 그래서 횡단보도 앞에서는 비를 피할 수가 없었다. 그때 나에게 갖고 있는 우산이 하나 더 있다며 건네주던 아주머니. 예상못한 친절에 머뭇거리는 나에게 우산을 펴서 던지듯 주고 길을 건너가는 그분에게 내가 던졌던 말이었다. "제가 우산을 어떻게 돌려드릴까요?" "나중에 비 맞는 사람이 있으면 지금처럼 건네줘요. 그럼돼요."


내 우산은 꼭 나에게로 돌아와야 할 이유가 없었지만 둘째는 큰애의 계산요구에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임했어야 했다. 언니의 도움으로 자신의 투자가 이득을 보았다면 고마운 마음을 먼저 가져야 했다. 금전으로 그 고마움을 전하든지, 아니면 자신이 잘하는 계산을 더 적극적으로 해결함으로써 큰애에게 고마움을 표현해야만 했다는 판단에 나는 등떠미는 상황을 만들어서라도 그렇게 하게 했다. 큰 애는 그 날의 상황을 이렇게 인지하고 있을 것이다. 계산은 둘째가 했지만 그것이 기꺼운 행동은 아니었다고.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우여곡절 끝에 그럼에도 계산은 결국 둘째가 했다. 큰애의 번거로운 시간을 줄여준 것이기에 그것은 좋지 않은 기억으로 만들 필요가 없는 나름 괜찮은 결말이라고 확신시켜주어야겠다. 대화하기 좋은 기회의 어느 날에.


인경혜수! 세상에 완벽한 호의도 없지만 100% 계획된 시나리오도 없어. 엄마 믿지? 그럼 나를 믿듯 내 말도 믿어봐. 알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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