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가 제일 좋았어?

by 서화

"다들 뭐가 제일 좋았어?"

제주에서 돌아오고 첫 주말이었다. 저녁을 먹으며 막내가 제주에서 먹었던 몸국의 맛이 자꾸 생각나서 그것 때문에 다시 제주를 가야 할 것 같다며 우리에게 던진 질문이었다.


전날 큰아이가 자신의 SNS에 올린 사진과 글을 보았던 나는 지금까지의 가족여행 중 최고라고 한 이유가 궁금하다고 큰아이의 대답부터 종용했다. 아이들은 각자의 소감과 이번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을 쏟아냈고 시끌벅적하고 왁자지껄 했지만 눈물 나게 감사한 저녁이었다.


큰아이가 옥돔구이, 겡이국, 올레길 6번 코스, 유채밭 등을 회상하듯 하나씩 짚어가며 많은 것이 좋았다고 말하자 저마다의 의견이 넘쳐났다. “큰누나, 그 옥돔구이는 진짜 예술이었어” “큰언니, 올레길 6번 코스도 쉽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다 같이 이야기하면서 사진 찍으면서 걸으니까 다 멋있었어. 날씨도 좋고” “언니 말대로 날씨도 좋았고 맛있는 음식, 멋진 풍경 다 좋았어”




나는 아이들의 이유에 내 의견을 덧붙여 보았다. 물론 생각으로만.


큰아이는 유독 여행준비에 적극적인 성의가 없다며 동생들의 질타를 계속 받아왔었고 그래서 다 준비된 상에 숟가락 얻는다는 비유를 민감하게 받아들였다. 그게 싫으면 좀 더 관심을 가지면 좋을 텐데 내가 보기에도 무관심한데 그런 말은 듣고 싶지 않은 이기적인 아집 같았다. ‘니들이 자꾸 그러니까 더 안 할 거야’

그런 큰아이가 출장 가서 먹어본 잊히지 않는 옥돔구이 집을 동료에게 물어 찾았다며 톡을 한날. 동생들은 “야호”를 외쳤고 기대되고 설렌다는 이모티콘이 그득했었다. 출발 전 반응과 최고였다는 가족들의 맛집 후기가 큰아이에게 이번 여행을 최고로 만들어 준 이유라고 나는 확신했다. 그 어떤 불만도 듣지 않은 여행이었으니.


둘째는 여행 내내 운전기사노릇을 했다. 번갈아 가며 할 수도 있었는데 오롯이 혼자 했다. 그래서 동생들과 언니가 매번 수고했다며 고마움을 표했고 엄마에게 한 번도 운전을 맡기지 않고 자신이 온전히 해낸 여행이라서 아마 더 기억에 남았을 것이다. 결코 쉽지가 않았을 테니까. 그래서 스스로가 더 대견했을 테니까.


셋째는 유독 사진에 진심인 아이다. 유채밭도 셋째의 계획이었고 여럿 있던 유채밭에서 어떤 곳을 방문할지도 배경이 될 삼방산의 위치까지 고려해서 셋째가 결정했었다. 사진사가 요구하는 대로 꽃밭에 들어가고 커다란 돌 위에서 옹기종기 붙어 앉았고 두 팔 벌려 하늘을 보았다. 그렇게 만들어진 자연스럽고 행복이 가득 들어찬 사진들로 그날 저녁 모두의 프로필 사진이 변경되었었다.

맛난 음식, 제주의 풍경, 그리고 가족들의 사진.

셋째의 이유는 이미 느낄 수 있었다. 환하게 웃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을 찍어주며 셋째 또한 얼마나 행복했을지.


우리 막내. 막내의 역할은 좀 과하다 싶은 찬사와 반응뿐이었다. 무엇을 먹든 어디를 가서 무엇을 보든 막내는 감탄하고 손뼉 치고 기뻐했다. 가끔은 중저음의 큰 목소리 때문에 누나들의 눈총을 받기도 하지만 이미 자신의 감정에 푹 빠진 막내는 물러나지 않고 행복감을 드러냈다.

“몸국 진짜 맛있다. 내가 먹어본 국중에 최고야. 이것 때문에 다시 오고 싶을 것 같아. 우와”

“큰 누나가 찾은 그 옥돔. 겉은 튀김같이 바삭하고 속은 부드럽고 생선살도 엄청 알차고 거기다 한 사람에 하나씩이어서 나는 그거 먹느라 밥도 나중에 먹었잖아. 누나가 진짜 맛있는 집 찾아줘서 고마워”

먹성 좋은 청년답게 먹는 것으로 행복감을 다 전했다.


재잘대는 아이들의 표정만으로도 행복한 저녁이었다.

“엄마는 뭐가 제일 좋았어요?”

둘째가 묻자 순간 모두가 나를 쳐다본다.

주고받으며 대화하는 아이들을 보며 순간 떠오른 장면이 나에게도 있다.




유채꽃을 찾은 날 갑작스럽게 바람이 거칠어지며 기온이 떨어졌었다. 오전의 날씨만 예상하고 온 우리의 옷차림은 너무 얇았고 예상보다 길어진 사진촬영 때문에 가고 싶었던 식당 방문은 무리일 것 같았다. 유채밭에서 올레길 시작점에 차를 세워둔 주차장까지 간 다음에 다시 식당으로 이동해야 했지만 우린 계획을 변경했다. 근처 식당에서 점심으로 추위를 녹이고 버스를 탔다.


버스에서 내려서 주차장까지는 걸어서 5분. 느긋하게 걸을 수가 없어서 뛰었다. 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뛰었다. 아이들도 덩달아 뛰었다. 방향 없이 들이치는 바람 때문에 헝클어진 머리를 매만질 생각도 못하고 우린 달렸다. “엄마. 바람이 미쳤어요” “우와 우리 엄마 잘 뛰신다” “조금만 더 가면 돼. 다들 힘내” “언니, 모자 손으로 잡고 뛰어”

뜨거운 바다 앞에서 엄마가 소리치라던 “야호” 대신, 우리는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웃음 섞인 비명을 질렀다. 그게 진짜 ‘호연지기’ 아닐까.


나에게 바람은 자유인가 보다. 왜 그 장면이 떠올랐을까. 인적 드문 거리를 한 줄로 뛰고 있던 우리가 왜 생각났을까. 헉헉거리는 들숨에 섞여 들어온 바람에서 나는 왜 시원함만을 느꼈을까. 깔깔 웃으며 내달린 그 짧은 시간과 거리가 4일 동안 돌아다닌 제주의 가장 선명한 한 컷이라고 아이들에게 말했다면 어땠을까.


내 여행은 그 싸한 바람 덕분에 싫은 기억을 씻어낼 수 있었던 것 같다. 말과 행동으로 배려 없이 생채기를 만들던 나의 엄마와 그런 엄마만큼 숨 막혔던 17년 전 제주의 여름을 그렇게 날려버렸다.

제주는 나에게 유채꽃. 동백꽃, 옥돔구이, 파랑딱새, 겡이국, 갈칫국, 넷이 몸을 밀착해서 동동거리던 버스정류장, 혼자였을 때와 완전히 다른 길처럼 느껴졌던 올레길 6코스, 그리고 바람의 나라가 되었다.


아이들이 모두 나를 쳐다보고 있다. 엄마의 행복은 무엇이었을까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우리 가족이 다 같이 갔다는 것. 다 같이 먹고 다 같이 즐거웠다는 것. 그게 최고였지”

같은 마음이라는 듯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바람의 이야기는 나만 아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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