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여행 선택지에서 매번 제주는 제외되었다. 짧은 일정으로는 적절한 장소가 아니었고, 7,8월 여름휴가철의 제주는 달갑지 않은 기억이 있는 곳이었다.
제주를 힘겹게 만든 그 여름…
처음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끌려가다시피 했다. 70이 넘는 고령의 엄마가 대장이 되어 준비한 여행에 토를 달 무모한 자는 결코 없었다.
몇 년 전에도 숨 막히는 싱가포르의 여름을 온몸으로 뿜어져 나오는 땀을 쥐어짜며 체험했었다. 더위라면 칠색 팔색하는 나조차 ‘가족여행’이라는 타이틀 앞에서는 아무런 의견을 낼 수가 없었다.
인생에서 가장 짙은 기미와 잡티를 두 뺨에 훈장처럼 새긴 그 싱가포르 여행 이후 2년 만에 나와 내 아이들은 한증막 같은 대한민국의 여름 제주도 ‘3대 가족여행’에 또다시 징집당해야만 했다.
자식이 넷인 나의 엄마. 그 자식의 자식들이 무려 열인 다복(?)하신 할머니는 어딜 가나 전직이 교사였음을 만인에게 드러내고 싶어 하셨다. 제주도 여행을 예전 동료 교사였던 분의 여행사에 예약하신 직후 제주도 교육청으로 문의전화를 넣으셨다. 자고로 여행은 깨달음이 있어야 한다는 모토로.
열 명의 손주들과 제주도를 가고자 하는데 교육적으로 권할 만한 곳이 있느냐고 물으셨다. 그런 전화를 받고 당황하셨을 그분이 안쓰러웠다. 관광청도 아닌 교육청으로….
친절하신 응대에 만족하신 엄마는 그 모든 일정을 빽빽하게 준비하시고는 여행사의 그분에게 웬만하면 일정을 엄마가 원하시는 경로로 짜줄 것을 요구하셨다.
나중에 가이드분이 불만 섞인 투로 엄마가 없는 곳에서 조심스레 우리에게 토로했지만 우리는 그저 웃었다. 여기서 우리는 40이 훌쩍 넘은 네 자식들을 말한다.
‘우리도 어쩌지 못해요’ 그저 웃을 수밖에.
나잇대가 비슷한 초등생과 유치원생들 열명
이건 ‘가족여행’이 아니라 ‘수학여행’이었다. 참가자들의 연령대와 인원 때문이 아니라 처음부터 그렇게 계획되었었다.
뙤약볕의 열기와 뜨거운 전복죽은 나와 더위에 최약체인 나의 아이들에겐 고난의 행군일 수밖에 없었지만 다수를 위한 힘든 소수는 엄마의 시선에서는 당연한 열외였다.
“엄마. 너무 힘드니 이번에 해변가에 가는 건 나하고 우리 애들은 안 가고 차에서 좀 쉴게요”
“니는 어디 엄마가 되어 가지고 다른 애들 다 가는데 애들을 바보 만들고 있어. 더위 좀 참는 게 뭐가 어렵다고. 내가 이러려고 돈 들여온 줄 알아? 잔말 말고 내려”
잔말 않고 내렸죠.
그때는 삼킨 저의 진심을 뒤늦게 이렇게라도 꺼내봅니다.
‘왜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엄마 말대로 안 하면 무조건 해롭고 불리한 상황에 내몰리게 될 것처럼 왜 그렇게 저에게 날을 세우셨어요?
저는 엄마의 그 사고 자체가 싫어요. 누구든 손아귀에 쥐어 원하는 대로 휘두르고 싶어 하는 거요.
저에게 아킬레스 건은 내 아이들이니 매번 아이들을 들먹이며 저를 누르려고 하신 거 제가 모를 거라고 생각하세요? 어떻게 할머니란 사람이 그래요. 시키는 대로 안 하면 내 아이들이 바보가 된다고요? 엄마는 할머니 자격이 없어요. 그날 차 안에서 제가 별말 없이 내려걸었던 것은 엄마의 주장에 동조한 게 아니고 그저 제 아이들을 위한 선택이었어요. 감정에 휘둘리는 할머니랑 엄마는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거든요’
나는 그 후 ‘수학여행’에는 참가하지 않았다. 우리 아이들도 참여시키지 않았다.
“네가 바쁘면 시간 되는 애들이나 보내라. 우리가 데리고 다닐 테니까. 애들 아무것도 못하는 등신 만들지 말고”
엄마의 우려와 달리 우리 애들은 바보가 되지 않았고 오히려 분명한 자신의 의사를 표현했다.
큰애는 또 다른 여행의 참여를 거절하며 그 이유를 명확하게 설명했다.
“외할머니랑 가는 게 더 싫어요. 혁수랑 유림이가 싸운다고 공항에서 할머니가 애들을 때리셨어요. 사람들이 다 쳐다보는데 큰 이모랑 외할머니가 고함치고 진짜 싫었어요”
나는 친정이 없다. 법적으로는 있지만 심정으로는 없다. 왕래를 끊은 지 여러 해다.
내 아이들에게 할머니의 노쇠함을 들먹여 참으라고 부탁했었던 나의 노력이 다른 형제들의 무례함으로 돌아오는 것을 보며 나는 마음을 닫았다. 내가 참아주면 상대가 스스로 변할 것이라는 착각 때문에 10여 년이 넘는 세월 동안 매번 상처 입은 내 아이들에게 미안했고 부끄러웠다. 엄마인 내가 지켜주지 않았으니.
이런 단절에도 나는 믿고 있다. 내가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나는 누군가가 불행해지길 작정하고 바란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타인의 삶에 곁눈질할 겨를이 없이 바쁘게 살아왔고 당장의 웃음과 현재의 행복에 감사하며 종종거리리고만 있다.
그러니 엄마!
‘무엇을 원하시든 원하시는 대로 하고 싶은 신 대로 그렇게 쭉 잘 사세요. 엄마가 엄마의 인생을 엄마의 몫으로 견디시듯 제 삶은 제가 살아내겠습니다. 부디 평안하시길…’
내리쬐는 뙤약볕에서 내려다보는 제주의 바다는 그 속조차 뜨거워 보였었다. 엄마는 그 바다를 보는 손주들에게 이렇게 소리치셨었다.
“바다를 보며 호연지기를 키워야 하는 거야. 다 같이 ‘야호’ 소리 질러봐”
우리 가족은 그 이후 17년이 지나도록 다 같이 제주를 방문한 적이 없다. 딸들은 고등학교 수학여행차 아니면 각자 친구들과의 여행으로 가거나 직장 동료들과 식물탐사를 위해 여러 번 다녀오기도 했지만 어쩐지 가족여행으로는 매번 다른 장소를 택했다.
제주의 그 단체여행의 기억이 거의 없는 막내를 제외하고 다른 가족들에게는 몇 년 동안 숨 막히는 할머니의 잔상이 남아있어 가고 싶지 않다고 의견이 모아졌었다. 우리가 제주의 기억을 잊을 때쯤부터는 각자의 생활이 바빠진 자식들과 좋은 계절에 여행날짜를 잡는 것이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기 때문에 제주는 가족 여행지에서 매번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나는 여름의 제주가 싫었다. 더위를 피해 알래스카로 도망치고 싶은 여름에 제주라니… 그래서 여름밖에 휴가를 낼 수 없었던 상황에서는 제주는 처음부터 선택지에 들어있지도 않았다.
그런 우리가 제주를 다녀왔다.
유일하게 직장인이 쉴 수 있는 명절 연휴에.
처음 내가 제안을 했을 때 아이들은 ‘진짜 갈 수 있을까? 명절에?’ 하는 시큰둥한 반응이었지만 그 자리에서 바로 비행기를 예매하는 나를 보고 함성을 질렀다.
겨울 추위에서 이른 봄이 기다리는 제주로의 2월 여행.
각자의 경험이 아닌 다 함께 만드는 추억이 최고로 기대된다는 막내의 소감을 들으니 기대가 커졌다.
이 여행은 의도적이었다. 어디를 거쳤고 무엇을 먹었고 어떤 대화가 오갔었는지 명확하지 않으면서 불쾌하게 뒤섞인 감정의 찌꺼기로만 남아 있는 기억을 알록달록하게 채색하고 싶었다. 그렇게 꼭 그리운 제주를 만들고 오리라.
“숙박하고 비행기, 차량이 준비되었으니 나머지는 각자 먹고 싶은 음식, 가보고 싶은 곳 찾아보고 개인적으로 준비해. 계획은 없어. 날씨에 따라 그때그때 정하자고”
나에게 여행은 자유와 여유로움이다. 눈으로 볼 수도 입으로 맛볼 수도 그리고 마음에 담아 올 수도 따뜻한 사람과의 새로운 인연을 만들 수도 있는 것이 여행이라고 믿고 있다. 머릿속에 담을 어떤 것을 찾아 목표를 정해 나아가는 건 내가 살고 있는 이곳만으로도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