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님. 잘 계시죠?
오늘 불현듯 ‘아프면서 이렇게까지 오래 살 줄은 몰랐다’고 탄식하시던 어머님의 옆모습이 떠올랐어요.
우리가 같이 살긴 했지만 사별 후 애틋함까지 나눌 관계는 아닐 줄 알았거든요. 그래서 좀 당황스러웠습니다.
오늘 혜주가 라식 수술을 했거든요. 하루도 빠짐없이 렌즈를 착용하고 있어서 제가 매일 마음을 졸이고 있었죠. 요즘 기술이 어떤지 모르겠지만 젊은 시절 다쳐서 고생해 본 경험이 있어서인지 안경 쓰고 당당하게 잘 살아줬으면 싶었어요, 나처럼요.
결국 제가 졌어요. 둘째 경주 친구들도 다들 했다고 하고,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만난 50대 이상의 남녀 동반자들 대부분 눈 수술을 해서 시력이 좋다는 사실을 듣고 난 후에는 무턱대고 반대만 할 수는 없겠구나 이미 각오를 하고 있었죠.
그런데 어머니. 공장형 병원이라는 표현처럼 넓고, 직원도 많고, 환자도 너무 많아 병원이 맞는지 제가 자꾸 두리번거렸어요. 어머님 눈에나 제가 알아서 척척하는 똑똑한 며느리지 저도 이제 늙고 있다는 체감을 자꾸 하게 되는 것 같아요. 보는 것도 듣는 것도 예전만 못하니 앞으로 점점 더 느리고 답답해질 수밖에 없을 것 같아 저 스스로도 변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그래도 우울해요.
아무튼 사방이 하얀 벽인 병원 복도에 앉아 호명되기를 기다리는데 불쑥 아주대병원에서 어머니 백내장 수술이 끝나길 기다렸던 그 복도가 떠올랐어요. 의술을 믿는 마음이었으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80 후반의 노인이 제발 무사히 나오기를 걱정하며 기다리는데 무서웠어요. 이런 기다림이 앞으로 몇 번이 더 있을지 두려웠어요. 결국엔 죽어야 끝나고, 쇠퇴할 날만 남았다는 어머님의 탄식이 반박할 수 없는 사실 같았거든요.
당신 자신의 현재 고통을 자꾸만 스스로의 인생을 잘못 살아온 죗값인양 한탄하실 때면 제가 “아이고 어머니. 기계도 88년 쓰면 고장 나요. 세상에 88년을 썼는데 멀쩡한 게 어딨 어요” 위로랍시고 했지만 결코 위안이 되지 못했을 겁니다. 내 팔을 잡으며 “니가 고생이 많으니까 미안해서 그렇지” 또 그렇게 대화가 끝났죠.
어머니.
잠 못 자는 고통. 약에 취해 기억이 희미한 시간들. 이가 아파서 힘든데 방법이 없다는 답변, 그리고 다른 노인분들도 다 비슷하다는 말이 마치 처방약인양 건네는 의사들.
그곳에선 아픈 곳 없이 내내 평안하시죠? 저는 통증 없이 환하게 웃던 어머니 얼굴이 기억이 안 나요. 너무 길었잖아요. 병원을 전전한 기간이요. 무려 20년. 정말 고생 많으셨어요. 이제야 제 위로를 건넵니다.
얼마 전 오랜 비행으로 생긴 통증으로 혼자서 허리에 파스를 붙이려는데 잘 되지 않아 짜증이 폭발하려던 순간 별안간 내 앞에 등을 보이며 엎드리고 있는 어머니의 모습이 보였어요.
“니가 있어서 정말 고맙다” 제 방으로 와서 파스를 내밀기까지 얼마나 혼자서 애써 보셨을지 안 봐도 저는 알아요. 같은 방을 쓰는 어머니의 남편도 소용없어서 저한테 오셨겠죠? 저는 스스럼없이 처음부터 저한테 해달라고 말하면 좋겠다고 아주 진지하게 진심을 전했지만 변함없이 여전하셨고요.
그 이유는 저는 알아요.
한 남자 때문에 고부지간이 되었고 우리 사이에서 그 남자를 지운 후가 불안하셨다는 것을요.
할 말은 거리낌 없이 하는 제가 섭섭하고 못마땅하면서도 저와의 이별은 죽음 같다고 여기시며 제 옆자리를 고수하셨다는 것을 제가 왜 모르겠어요. 제 입장을 옹호하는 사람들이 어머니에게 면박을 주었을 겁니다. “아들과 이혼했는데도 붙어사는 게 미안하지 않아요?”
아무리 사이가 좋던 며느리라 하더라도 친자식보다야 못할 것이라는 보편적 견해. 저도 갖고 있었어요. 그럼에도 “나는 너하고 살고 싶다”라는 애절한 간청을 차마 외면할 수 없었을 뿐이었거든요. 저도 그 감정을 순수하게 이해하지는 못했어요. 삶은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며 사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라 믿고 있었을 뿐이었죠. 누구와 살던 말이죠.
우리가 이별한 지 벌써 3년째입니다.
자꾸만 옛 기억을 떠올리는 것이 저도 늙어가고 있다는 것 같아 싫은데 그게 잘 안돼요.
“아이고 니는 아직 젊다” 이렇게 말하고 싶으시죠?
알아요. 아는데 지나가는 할머니들에게서 자꾸 어머니의 모습이 보여요. ‘아이고 걸음걸이를 보니 허리가 아프시구나’ ‘장바구니가 무거워 보이는데..’ 애쓰는 젊은 이들보다 고단한 노인들이 제 눈에 더 들어오는 건 아무래도 어머님 때문일 겁니다. 마치 내 몫인 것처럼 말이에요.
혹 제가 한 말 때문에 제 안부를 염려하신다면 그러시지 않아요 돼요.
저 잘 지냅니다. 잠깐씩의 후회는 어쩔 수 없는 기복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니 걱정 마세요. 반성하고 다시 후회하지 않게 노력하면서 오늘도 잘 살고 있습니다.
제 친구가 저한테 물어보더라고요. “시어머니 시아버지랑 살았던 것 후회해? 그 사람들과 사느라 아이들과 5년이나 떨어져 있었잖아”
살아보니 무엇이 정답인지 잘 모르겠어요. 제가 확언할 수 있는 건 방향을 정해놓고 애쓰지 말고 마음 가는 대로 흘러가는 게 인생이라는 제 신념이 제가 찾은 답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마음으로 아이들과도 잘 지내려고 노력 중입니다.
그리고 고백합니다. 어머님과 사는 동안 저는 좋았어요. 어머님은 통증 때문에 저는 이혼 때문에 고달프고 울적한 시기여서 웃음은 적었지만 서로에 대한 우리의 마음은 누가 뭐래도 사랑이었습니다. 그래서 같이 산 5년 후회는 없습니다.
지금 제 고백에 웃고 계신 것 맞죠?
고통 없는 곳에서 많이 많이 웃으시며 저를 지켜봐 주세요.
저도 많이 많이 웃으면서 어머님을 기억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