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똑똑해야 해?

by 서화

이런 기분은 참 좋지 않다.

자꾸만 내가 똑똑하지 않은 사람인 것 같다. 똑똑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바보 같다.


한국어 교사 자격증을 취득할 때도 이랬다. 자격증만 가지면 내가 도전해 볼 한국어교사로서의 자리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물정 모르는 착각이었다는 사실에도 화가 났지만 그보다 더 나를 의기소침하게 만든 건 공부를 하면 할수록 깨달은 나 자신의 무지 때문이었다.


나는 공부라는 것을 하기만 하면 내가 점점 더 똑똑해질 줄 알았다. 새롭게 배운 지식을 넘치도록 눌러 담으면 이전보다 훨씬 더 멋진 사람으로 변화될 줄 알았던 것이다. 하지만 나는 여전했다. 어째 공부를 하면 할수록 더 초라해지고 있었다.

‘역사를 제대로 알기는 해?’

‘외국인의 질문에 주저 없이 답할 자신 있나?’

‘맞춤법도 자꾸 틀리고 띄어쓰기도 잘 지켜야 하는데’


깨우친 의미와 쌓여가는 지식들로 내 삶이 더 풍만하고 세련되어질 것이라는 바보 같은 기대.

지식은 어느 지점부터 싸락눈처럼 닿기가 무섭게 사라지고 있었다. 내가 하는 노력은 지식의 탐구가 아니라 깨우침 뿐이었다. 입가에서 맴돌며 뇌로도 입으로도 방향을 잡지 못한 듯 단어를 뱉어내지 못하는 나의 기억력. 열심히 글을 써도 내 나라말을 자꾸만 더듬거리게 되는데 하물며 영어는 말해 무엇하랴. 공부랍시고 쑤셔 넣은 숫자에 비해 부드럽게 휘발되어 버리는 숫자가 월등히 많은걸.


현재 나의 공부는 지식을 추구할 수가 없다. 결코 똑똑해질 수 없다. 단순히 무뎌졌던 감각을 느낌과 기분으로 깨닫고 있을 뿐인 것 같은 패배감. ‘유레카’를 외쳐본 기억도 가물하다. 쓰는 글에서든 읽는 책의 구절에서든 새롭다는 신선한 감각보다는 ‘그랬지, 맞아. 이 감정을 나도 느꼈었지’ 되찾는 중이다.

사람들이 내 기분을 이해할 수 있을까?


유명인의 이름도 예전에 가 보았던 장소도 그리고 현재 내가 타고 다니는 자동차의 종류까지도 두어 번 숨 고르며 기억을 더듬어야 말로 뱉을 수 있는 기분 나쁜 상태를 말이다.

늙어서 하는 공부라서 이런 걸까?

어른의 공부는 이게 맞나?

나는 지금 무얼 찾고 있는 거지?

단순한 나이 탓으로 단정 지어 평가받는 것은 너무 슬프다. 살아온 세월만큼 나의 뇌가 활동성이 줄어들기 때문이라는 뻔한 진단은 극복에 단 1%로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무조건’은 무조건 반발심부터 생긴다.




지혜롭고 현명하다는 칭찬이 똑똑하다는 말보다 더 가치 있다고 두리뭉실하게 믿고 살아왔는데 나는 지금 명확하게 그 차이를 체감하고 있다. 아무리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영어공부를 하며 하루 종일 노력하고 있어도 욕심내는 만큼 채워지지 않는 이 허기를 이제는 외면하고 싶지 않다.


이럴 경우 일반적으로는 더 열심히 해보라는 충고가 먼저다. 지칠 때 잠시 쉬어가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들 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웬만한 조언자들보다 많이 살았다. 세상을 따스한 온실 속에서만 산 것도 아니었다. 그러니 남의 말 그만 듣고 발전이 아니라 변화가 아니라 숨 고르기가 아니라 체념을 택하겠다. 맞다. 지금껏 살면서 대한민국 국민들이라면 가장 싫어하는 ‘포기’ 바로 그것을 하겠다는 것이다.

하나 정도는 포기해도 괜찮다. 내가 가진 욕심 중 얼토당토않을 것 하나 내려놓는다고 내 인생이 폭망 하는 것도 아닐 것이고 나를 지켜보는 내 가족들과 지인들이 안타까워하며 슬퍼하지도 않을 것이다.


20년 동안 끊어졌다 이어졌다를 지속했던 영어공부. 이제는 없다.

나도 예상 못했다. 나라는 사람이 살면서 포기를 스스로 선택하는 날이 올 줄은. 하지만 참 아이러니하게도 선포하듯이 포기하겠다고 말하는 지금 나는 속이 후련하다. 텅 빈 것 같은 허전함이 아니라 시원하다. 공부는 젊어서 하는 것이 맞다.


그렇다고 내가 아무것도 안 하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맡은 집안일은 여전히 부지런 떨며 해 나갈 것이고 같이 살고 있는 가족들과의 정신적 유대감과 친밀감은 변함없이 유지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단지 새벽에 일어나 공부로 맞이하는 시작은 없다. 하루 안에 꼭 마무리해야 하는 할당한 영어공부도 없을 것이다. 외출하지 않고 집안에만 있는데도 어째서 그날의 숙제가 해결되지 않는지 성마르고 초초한 걸음은 과감히 멈출 것이다. 채움을 멈추고 쑤셔 박아둔 것들을 꺼내서 내 머릿속도 여유 있게 내버려 둘 것이다.




일주일 사이에 아파트 화단의 나무들은 만개한 꽃으로 단장했다. 나는 목련꽃아래에 잠시 서 있었다. 올려다본 하늘에는 소담스러운 목련화가 수북하다. 예전엔 봄이면 꽃을 찾아다니는 이들을 동경했었다. 왜 나는 아파트 화단의 벚꽃으로 만족해야만 하는지 짜증스러웠었다. 그림 같은 풍경이 내 핸드폰 앨범에 없다는 것이 마치 패배한 것처럼 억울했었다. 그래서 다른 것으로라도 만족감을 채워야 했던 것 같다. ‘나돌아 다니는 너희들 못지않게 나도 많은 것을 성취했어…’


스치는 개나리와 멀리서 바라본 꽃분홍의 진달래만으로도 올해는 조금도 억울하지 않다. 버스정류장 바로 앞의 벚꽃만으로도 내 가슴과 머릿속을 봄으로 채울 수 있어서 그것이 더 놀랍다. 여전히 변함없이 자신들의 일에 최선으로 바쁜 아이들과의 하루도 담담하게 평화롭다. 어쩌면 나의 발전을 위한 종종걸음이 아이들의 쉼도 잘못된 것으로 만들어왔던 것 같아 미안하다.


주말 아침, 해가 중천에 떠 있다. 간간이 들리는 아이들의 고른 숨소리.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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