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로서의 경제적 능력?

내 점수는 몇점일까.

by 서화

세상에!

영상을 끄면서 나는 재차 나 자신에게 확인시킨다.

‘이건 보여주기 위한 영상이야. 누가 이렇게 살아? 이 사람들은 이게 직업이야’


세상에는 살림의 고수가 많아도 너무 많고 셰프라 자부하는 요리사들이 정말 넘쳐나고 있다. 실제 요식업에 종사하고 있든 아니면 과거에 종사했었든 나이도 상관없고 성별도 상관없는 다양한 사람들이 영상으로 자신의 집과 자신의 부엌과 자신의 요리를 소개하고 있다. 이런 영상들을 정보를 얻기 위해 한두 번 찾아보기 시작하자 지속적으로 나에게 추천되어 보이게 되었고 무의식적으로 사람들의 살림 능력과 음식 레시피를 탐구하기 시작했다. 맛있어 보이는 음식을 배워보고 싶었고 아이디어 넘치는 정리의 센스에 감탄하며 그저 구경꾼의 심경으로 바라보았다. 처음엔 그랬다. ‘이런 걸 할 수 있는 사람들도 있네’


엄청난 구독자를 보유한 어떤 주부의 영상이 나에게 추천된 날이었다.

영상 속 집은 마당에 꽃과 나무가 조화롭고 따뜻해 보였고 강아지와 아침을 시작하는 평화로움과 능숙하게 다양한 종류의 음식을 준비하는 여유롭고 익숙한 손놀림. 집은 모델하우스 보다 더 멋있어 보였고 신체의 일부만, 그러니까 앞치마를 두른 뒷모습만 보이고 있는데도 멋진 스타일링에 늘씬한 체형에 직접 하는 내레이션의 매력적으로 부드러운 목소리까지.


부스스한 새벽 기상의 내 아침과는 너무나 다르게 평화롭고 잔잔하다. 맛있고 건강한 요리를 시작하고 중간중간 손질된 재료와 사용한 가전의 장점까지 설명하며 최상의 밥상을 준비하는 과정을 차분한 목소리로 소개한다. 가족들과의 식사 후 계획된 그날의 일정으로 집안 청소와 배달되어 온 재료로 음식을 만드는 과정을 전문가적인 편집능력으로 누구나 감탄할 만한 영상으로 보여준다.


나 같은 부족한 주부의 시선을 강탈하여 따라 하고 싶은 마음이 들 수밖에 없었다. 최신가전으로 꾸며진 집과 너무나 잘 어울리는 안주인의 면모였다. ‘우와. 진짜 이렇게 사는 사람도 있다는 거네’ 부러운 감정으로 감탄했다. 이 영상을 구독하는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궁금해서 찾아본 댓글에 의외의 질문하나 가 눈에 확 들어왔다. ‘전업주부이신가요? 살림을 어쩌면 이렇게 잘하세요?’ 그 유투버는 이런 질문을 여러 번 받았던 것 같다. 영상 안에서 그 질문을 언급했다. 정확한 회사명은 기억에 없지만 ‘원자력 같은 곳의 연구원으로 근무했고 유튜브를 본격적으로 하게 되면서 회사는 그만두었다' 고 밝혔다. '연구원'이란 단어가 머리에 콱 박혀서 그 뒤 영상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그 이후 며칠 내내 우울했다. 그 사람은 뛰어나게 살림을 잘 해내는 사람이 확실하다. 그런데 연구원이었단다. 똑똑한 사람은 어느 방면에서나 예사롭지 않구나. 나의 주부 경력이 갑자기 초라해서 미칠 것 같았다.

내가 감히 가족들의 건강을 책임지고 살았다고? 그 사람의 레시피는 내 식탁을 단번에 부끄럽게 만들어버렸다. 내가 지금까지 한 것들은 도대체 뭐였지? 이런 것들을 요리라고 하고 살았나? 그리고 또 나는 왜 제대로 정리도 못하는 게으른 사람으로 살았지? 나름 단정하고 깨끗하게 보이던 살림살이들이 초라하고 어수선하게 아무렇게나 던져놓은 듯 나의 세상이 무너지고 있었다. 공부를 잘해서 좋은 직업을 가졌던 사람이 살림도 기가 막히게 잘해서 또 그 능력으로 돈을 벌고 있단다. 능력이 한 사람에게 다간 것 같아 억울한 감정에 속이 쓰렸다.






유튜브 속 또 다른 살림 자랑 영상 속의 사람들도 고가의 최신가전과 좋은 소재의 요리도구를 사용하는 자신의 부엌과 외국브랜드의 비싼 그릇으로 정리한 냉장고 안을 보여준다. 나도 하나 살까 싶어 인터넷을 뒤져보면 하나에 10만 원이 훌쩍 넘는 제품들이 대부분이다. '정리에 도움이 되는 영상을 보면 그 사람이 추천해 주는 물건을 사야만 정리가 될 것 같은 착각에 빠져서 나는 그런 영상 안 본다' 는 동네 친구의 말이 떠올라서 나는 얼른 인터넷 창을 닫았다.


친구의 조언이 있기 전에도 나는 이미 전력이 있는 사람이다. 냉장고 정리를 기가 막히게 해 보겠다고 큰돈 들여 산 냉동 냉장 겸용 수납 그릇들과 바구니 등등. 의욕 넘치게 시작은 했지만 그 이전으로 돌아가는 데 걸린 시간은 들인 돈이 민망할 정도로 순식간이었다. 사실 냉장고 크기에 맞춘 바구니는 사용 그 자체로 손이 많이 갔다. 바구니 안에 가지런히 적당한 양으로 매번 소분해야 했고 크기보다 남아도 모자라도 깔끔하게 딱 떨어지는 정리는 되지 않았다.


그리고 식품의 종류를 보이도록 구분하려다 보니 투명하고 다양한 크기의 비닐도 참 많이 소모되었다. 냉동 냉장 겸용 그릇은 또 어떤가. 내가 단편적으로 멍청했다는 것을 증명하듯 어처구니없는 결과를 보여주었었다. 내가 산 스무 개 안팎의 그릇으로는 전체 냉장고 안의 오만가지 식품들을 지속적으로 정리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줄어드는 식품의 양에 따라 작은 사이즈의 그릇이 더 많이 필요했고 마트에서 사 온 대용량의 식품들을 위해서는 큰 그릇이 또 많이 필요했다. 여섯 가족의 냉장고는 그 속내가 정말 어마어마했다.


영상 속의 그들처럼 말끔하고 여유로운 냉장고를 위해서는 대부분의 식품들을 버려야만 했다. 아니면 냉장고를 하나 더 사든가. 내가 어리석었다. 냉장고 안의 숨겨진 내용물들을 꼼꼼히 체크해 보지 않고 덜컥 물건부터 산 내가 무지했다. 냉장고와 냉동고 겸용이면 물건이 반으로 줄기라도 할 것이라 착각이라도 했던 걸까. 후회의 한숨밖에 안 나왔다. 결과적으로 크게 달라지지 않은 냉장고 상태에 나 자신을 질책하는 반복적인 패턴.


타인의 살림을 깊이 들여다보는 것이 이리 불편할 줄 몰랐다. 능력치를 조목조목 평가받는 더러운 기분이 들다니 내가 참 속 좁은 사람이다 싶어 더 짜증 났다. 그저 부지런히 아끼면서 내 손맛으로 살아온 나 같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이런 영상은 약일까 독일까. 요즘은 슈퍼 PR시대다. 조금이라도 남보다 잘하는 것이 있으면 자랑할 수 있고 그것이 수입을 가져다줄 수 있다. 어찌 보면 다양한 기회가 주어진 좋은 세상인 건 맞다. 그런데 이런 가능성이 열린 세상에서 나는 왜 내세울 것이 하나도 없지?


집안 정리도 눈살 찌푸리지 않을 정도로 하는 정도고 요리도 우리 가족에게나 그리운 '엄마 밥'일 뿐이고 본인들이 하고 싶은 일하며 살지만 명문대의 간판도 대기업의 연봉도 없는 아들 딸들. 그래서 자녀 교육으로도 나는 무능력한 양육자가 되었다. 네 명의 아이들이 좋아하는 분야에서 자신의 삶을 바르고 올곧게 잘 살아내고 있는데도 이런 자부심은 내세울 간판이 없는 사람의 자격지심으로 만들어 버리는 학벌 좋은 자녀를 만든 사람들의 정보 영상. 그저 책임감 속에서 허둥대며 사느라 몰랐다. 평균으로만 이루어진 내 능력치들이 이렇게 보잘것없다는 것을. 견디며 지나온 세월의 값어치는 나를 지탱하는 자긍심임에는 이견이 없지만 그 가치가 경제적 이득을 만들어 주지는 않는다는 사실이 침울했다.


70, 80년대에 부동산 투기로 주부들이 강남 일대를 뒤흔들어 '복부인'이란 명칭을 얻게 된 사건들이 있었다. 이때 뉴스를 보며 남편이 복부인이 아닌 자신의 평범한 아내를 채근하여 부부싸움을 했다는 이웃집 이야기가 내 귀에도 들어왔었다. "주부라도 다 같은 주부가 아니네. 넌 그저 놀기만 하잖아" 남편의 이 말에 큰 싸움이 나서 이웃들이 개입해야 했을 만큼 시끄러웠었다. 그 당시에 주부들의 부의 축적은 사회의 이슈 거리가 될 만큼 지탄을 받았지만 현재는 어떤가. 주부의 노동의 가치가 무시된다는 항변과 어긋나게 유튜브나 SNS로 수입을 올리고 있는 주부들은 결코 적지 않다. 나 같은 사람은 뭘까? 경제 창출 능력으로 걸러지고 걸러지고 걸러져서 맨 밑바닥에 흩뿌려진 미세하고 쓸모없는 찌꺼기가 된 것 같아 정말 기분이 더럽다. 매사가 평균이어서 좋았었는데 그리 나쁜 것이 없어서 보통 사람으로 살아가는 삶에 만족했었는데 결국은 남보다 못난 것이 많더라도 뛰어난 것이 하나 만이라도 있었어야 했다는 자책을 하고 말았다.


'주부'도 직업군에 속하기는 할까? 노동자의 날에도 휴식이 없고, 휴일로 인정해 달라고 청할 곳도 부정확한 관심 밖의 노동자. 보수도 없고 경력으로 인정도 못 받아 왔는데 어느 날 갑자기 '주부로서의 너의 경제적 능력을 마음껏 펼쳐 봐' 라며 등 떠밀리는 난처하고 황당한 기분. 나만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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