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송재경
오늘은 내가 할 말 좀 해야겠다.
내가 도대체 뭘 잘못했는데? 내가 너한테 뭘 그렇게 잘못해서 내 전화도 씹는 거냐고.
이 못된 기집애야.
내가 너랑 뭐라도 지지고 볶고 해 봤으면 억울하지라도 않지. 같이 밥 먹자고 네가 먼저 연락했었잖아. 그래서 수원 살던 내가 서울에 가서 점심 먹었던 게 마지막이었고. 그건 기억하냐?
카톡도 읽씹하고 전화도 안 받고. 너 진짜 나빠.
무슨 일이 생겼나 걱정하며 연거푸 전화했더니 톡하나 달랑 보내왔지.
‘너도 희영이도 다들 잘 살고 있는 것 같은데 왜 나만 힘든지 모르겠다. 너희들 보는 게 힘드네’
뭐 소여물 먹는 소리야..
희영이가 그러더라. 힘든 일이 있는 것 같은데 그냥 내버려두라고. 지가 싫다는 걸 뭐 어쩌겠냐고.
“지 살고 싶은 대로 살라고 해. 그러다가 연락을 해올 수도 있고 아니어도 그만이야.”
진짜 정 없고 싸가지 없는 년.
대한민국 대표 기업의 임원이나 된 사람이 어째 타인의 삶에 대해 그렇게 이해력이 없어서 여태껏 회사생활은 어찌했나 궁금하다.
솔직히 지금 내가 너한테 하는 건 치받아 올라오는 속상함의 10분의 1도 아니니까 그냥 입 닥치고 듣기나 해.
희영이도 나도 그동안 사는 게 얼마나 고달팠는데.. 우리 둘은 이메일로 소식 주고받고 몇 년에 한 번 국제전화도 하면서 어렴풋하게나마 서로의 억울한 인생살이를 알아 갈 동안 너는 그냥 회사생활 하느라 정신없었잖아.
연락해도 매번 바빴고. 아니야?
네가 무슨 고민이 있고, 무엇이 그리 널 비참하고 날카롭게 만들고 있는지 말을 해야 알지. 우리가 어떻게 알아.
진짜 재수 없어.
너의 그 문자를 읽고 미국에 있는 희영이랑 긴긴 통화를 했었어. 무엇이 이렇게 힘들다고 하는 걸까. 남들은 한번 들어가기도 힘든 그 회사를 너는 스스로 퇴사 후 다시 복직제안까지 받은 재원인데.
아들문제? 자식이야 어느 집이든 부모바람만큼은 못해. 더군다나 전국적으로 놀았던 너의 큰 아들이 갑작스레 음악을 하겠다고 방문을 걸어 잠겄을 때 너의 실망과 혼란은 우리 둘 다 진심 공감해.
그렇지만 자식 때문에 썩는 속을 너만 갖고 있을 거라고 생각해?
내려놓고, 도 닦는 심정으로 스스로를 망치질하면서 다듬는 노력. 나는 안 해봤을 것 같아?
어쨌든 우리는 너의 그 우울을 이해하자고 결론지었었어. 좋아지면 먼저 연락해 오겠지 하면서 말이야.
장장 10년이다. 니 카톡 이후 흘러간 세월이.
2년 정도 지났을 때부터 너의 카톡 프로필이 아주 자주 화사하고 근사하게 바뀌더라.
미국에 있는 희영이에게 얘길 했더니 웃더라. 웃기만 하고 아무 말 안 하더라.
바뀐 프로필을 처음 확인 했을 때의 내 반응과 같았지. 그 반응에 내가 한번 더 욱했다.
“와 우리가 이걸 친구라고”
여고동창
너와 희영이 그리고 세경이와 나
넷이서 잘 살고 있다고 믿고 우리의 노후까지도 우정으로 화기애애할 거라 장담한 내가 참 어리석었다 싶다.
연락조차 안 되는 세경이. 그리고 냉정하게 단절한 너.
잘 들어.
희영이는 친정아버지 돌아가시고 노쇠하신 엄마 때문에 일 년에 한 번은 한국에 들어와.
우리 둘은 그때마다 밤새워 시간을 보내도 내내 아쉬워.
너는 신경 안 써도 돼. 이제는 니 얘기는 안 하니까. 딱히 궁금하지도 않고.
네가 정말 바라는 게 이거라면 이루어졌으니 좋겠구나.
어이, 송재경!
기분 상하는 말 잔뜩 해놓고 이런 이야기하는 내가 참 머쓱하지만 그래도.
내가 며칠 전 뜬금없이 예전 우리 꿈을 꿨어. 기차여행에 대한 글을 쓰다가 파릇파릇한 우리들의 여행을 추억해 냈기 때문일 거야.
하늘색 줄무늬 반팔 셔츠에 파란색 바지. 비둘기 열차의 창문 아래 의자에 비스듬히 기대어 창밖을 보고 있는 내 모습. 그래 네가 찍어준 사진이야.
우리 넷은 부산으로 자주 기차여행을 했었어. 기억할 거야 너도.
그 시절에는 해운대보다 태종대였지. 그렇게 바다를 실컷 보고 오면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대구의 답답한 더위를 좀 버리고 온 것 같아서 특히 여름에 자주 갔었던 것 같아.
아무튼 내가 아주 좋아하는 사진이야. 너도 푸른 옷을 입고 있었어. 둘 다 큰 안경을 쓰고 촌스럽게 스머프처럼 새파랗게.
우리가 벌써 환갑이다. 살날이 얼마 없다고 뻥치기에는 현실적으로 노인은 아니다만 그래도 점점 소모되는 나의 시간 안에 네가 없고 너의 시간 속에 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현실이 먹먹하다.
어느 날이었어.
‘드라이기’가 어딜 가나 붙박이처럼 구비되어 있는 환경에 살고 있는 우리 애들에게 내가 나의 여고시절을 들려준 적이 있어.
“머리를 수건으로 자연건조 시켜야 하는데, 여름에는 선풍기라도 있지 겨울에는 기다릴 시간이 없어서 엄마친구는 그냥 긴 머리를 땋아서 학교에 와. 그리고 다시 풀면 물기 많은 머리가 얼어서 장난 아니었어. 학교에서 풀어서 말린 다음 다시 땋곤 했지. 엄마는 짧은 머리여서 괜찮았고.”
그래 너 얘기야. 유난스럽게 길게 땋은 헤어스타일을 고집했었잖아.
잊고 살다가도 한 번씩 너의 존재가 떠오르면 나는 잠깐 우울해진다.
우리의 긴긴 단절이. 너의 부재가.
엄청 행복한 거 맞지? 얼굴 안 봐서 정말 좋은 거 맞지?
어떤 이론과 핑계를 갖다 붙여도 중요한 건 딱 하나야. 불행한 이는 없어야 한다는 것.
그러니 재경아.
아프지 말고 지금처럼 쭉 잘 살아라.
그래도..
난 네가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