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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버 Mar 24. 2023

나만의 응답하라 1988

소심함을 이겨내고, 이문세 5집을 사기 위한 분투기

나는 소심하다. 큰 결정을 할 때면, 오랜 기간 고민을 한다. 그렇다고 열심히 고민한다기보다는

그 고민의 무게감에 짓눌리다 이내 피하고 싶어 회피한다고 봐야 할 것이다. 결국, 시간만 끌다가

어쩔 수 없이 결정해야 하는 순간이 다가오면, 그 고민으로  다시 들어가 그 무게감에 압사를 당한 채,

정신을 못 차리고 비명을 지르듯이 아무렇게나 결정을 해버리고 만다. ‘장고 끝에 악수’라는 속어의

모범답안에 맞는 삶을 살아온 것이 바로 나다.

이런 소심함 덕분에 뭣하나 잘한 것도, 이룬 것도, 돈을 많이 모으지도 못한 삶을

살아온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결과다. 지금은 그나마 나이를 먹으면서 대담해진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대담해지기보다 그냥 무뎌져서 소심함을 느끼지 못하는 것일 뿐이라고

봐야 하는 게 정확한 현실이다. 소심함을 숙명처럼 받아들이며 살아왔지만,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니다. 어릴 적, 순수했던 시기에는 나름 내 소심함에 도발을 한 적도 있었고, 처음으로 나름 큰

결정을 시도했을 때는 내적갈등도 참 많았다. 

그때의 기억을 더듬어 약 35년 전으로  다시 돌아가 본다....

 

내 인생에서 첫 큰 결정은 중학교 1학년이었던 어느 가을날에 있었다.

그 해 가을에 세간에 큰 주목을 받으면서 이문세 5집이 발매되었다.

이 당시 이문세의 위세는 어마어마했다.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 힘들겠지만, 모든 tv방송을 거절하고

음반과 공연, 가끔 라디오에 출연하는 그 당시에 유행하던 일종의 '얼굴 없는 가수'였다.

3집과 4집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면서도 좀처럼 얼굴을 보기 힘들었기에 신비감까지 더해 이문세의 인기는

독보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당시 팝송 LP 가격이 사 천 원이 훌쩍 넘었던 반면, 가요 LP는 삼 천 원이거나 

그 보다 못한 가격이었다. 그 당시 10대와 20대는 팝음악만 들었을 뿐, 가요는 거의 듣지 않았다. 

친구들 집에 가면 이문세 앨범은 여러 팝앨범 사이에 꼭 있었다. 그만큼 이문세는 특별한 존재였다.

이문세 5집은 팝송에 비견될 만큼 스스로 경쟁력이 있다고 생각했는지 팝과 같은 사 천 원이라는

도발적인 가격에 발매되었다. 십 만장 팔리면 대박이라던 시절에 이문세 5집은 발매와 동시에 순식간에 

수 십 만장이 팔려 나갔다. 그만큼 이문세의 인기는 절정기였고, 발매된 음반의 완성도는 지금까지도

명반으로 기억하고 있을 정도이다.


그 기세 좋은 판매량과 소문을 듣고, 발매일에 이문세 5집을 구매한 친구 집에서 전축을 통해 들은 이문세

5집은 열세 살 밖에 안 된, 어린 중학생의 마음을 흔들었고, 한 달 용돈이 오 천원도 안 되는 사정 따위는

무시하고 사천 원 짜리 이문세 5집 구매를 과감히 결정했다. 내 소심함을 생각하면, 신속하고 결단력이

있는 결정이었지만, 나보다 공부도 못하고  우리 집 보다 못 사는 녀석이 이문세 5집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내게 우월감을 과시하며 자랑하는 꼴사나운 모습에 분노를 느껴 벌인 일종의 우발적인

결정이었다.  나는 지독한 음치였기에 형이 틀어놓은 음악을 옆에 같이 들었을 뿐, 나 스스로

카세트 작동 단추를 눌러서 음악을 들어 본 적도 없었다. 소심한 사춘기였기에 행여나

'노래도 못하는 놈이 무슨 음악을 안다고...' 

라고 빈정거릴까 봐 두려웠던 거다. 음반 구입을 통해 내 취향이 겉으로 드러나 빈정거림의 대상이

될 두려움과 사천 원이라는 거금을 생각하면, 이례적으로 신속한 결정이었고 내 인생에서 의미 있는

첫 큰 결정이었다고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그 과정은 만만치 않았다.....


나답지 않은 신속한 결정에 내 소심함이 잠시 당황했지만, 녀석은 정신을 차리고 출발부터 발목을

잡기 시작했다. 출발 전에 이문세 5집을 구매하기 위해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서 정가의 두 배인

팔 천 원이 들어 있는 주머니에 손을 넣어서 몇 번이나 꺼내 확인했다.

아마도 천 원짜리만 아니었다면, 대단히 중요한 비즈니스를 하러 가는 것처럼 보였을 거다.

여하튼, 주머니에 손을 자꾸 넣었다가 뺐다가는 돈이 주머니에서 나도 모르게 빠질 수 있다는 한심한

걱정이 내 머릿속을 가득 채워, 이에 대한 근심 때문에 출발은 하염없이 지연되었다.

결국, 최종적으로 팔 천 원이 주머니에 들어가는 것을 눈알이 빠지게 확인한 뒤, 접힌 천 원짜리 여덟 장이

주머니 위로 돌출된 부분을 통해 눈으로 확인하고 손으로 툭툭 쳐서 확인하는 놀라운 방법을 발견하고 내

혜안에 매우 만족해하며 마음 놓고 레코드 가게가 있는 시내 지하상가로 향했다.     


구매를 결정하고, 돈을 챙겨서 시내까지 나왔지만, 막상 사천 원이라는 거금을 지불할 생각 하니, 내 가슴

속에서 설마설마하며 나를 지켜보던 소심함이 ‘이 새끼가 미쳤나?’ 하고 날뛰기 시작했다.

지하상가로 내려가며 가슴이 뛰기 시작하더니, 원래 사려고 했던 레코드 가게 앞에 가서는 정말 미친 듯이

가슴이 뛰어서 어디 가서 쉬고 싶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결국, 첫 번째 구매시도는 실패로 돌아가고

나는 지상으로 올라와 맑은 공기를 맡으며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자유를(??) 만끽하며 근처 벤치에 앉아

놀란 가슴을 진정시켰다.    

 

이런 계단은 아니었지만, 가슴속은 저 계단처럼 회오리가 쳤었다.


맑은 공기를 맡으며 벤치에 앉아 있으니 무너진 댐에서 흘러나오는 물처럼 걱정들이 머릿속으로 마구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문세 5집 안 듣는다고 공부하는데, 지장이 있는 것은 아니잖아?’

라는 고민은 학생의 본분에 대한 고민이었다면,

‘이문세 5집 없다고 내 인생이 당장 뭐 어떻게 되는 것도 아닌데.’

라는 고민은 이문세 5집이 내 인생에 존재할 가치에 대한 나름 중학생의 깊은 철학적 고민이라면 지나친

주접일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 구매를 포기하고 집에 돌아갈까 하는 생각이 내 머릿속을 채우기

시작하자, 내 소심함은

‘그래, 너! 그럴 줄 알았어.’

라며 마음을 푹 놓은 듯, 가슴속에서 다시 얌전하게 웅크리기 시작했다.

그 순간,

‘남자가 말이야, 음반 하나 사는데, 무슨 이 따위 고민을 하는 거야?’

라며 자책을 하면서, 내 소심함이 다시 방심한 사이에 나는 지하상가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곧바로 다시 그 레코드 가게 앞으로 진격했다. 하지만, 거의 문 앞에 다다른 순간, 어느 순간부터 다시 뛰기

시작한 가슴 때문에 도저히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가게 앞을 지나치자, 내 소심함이 안도의 한숨을 쉬었고 그와 함께 내게는 평화가 다시 찾아왔다.

다만, 아까처럼 격렬하게 가슴이 뛰지는 않았던 것 같았다. 지하상가를 계속 돌면서 마주하게 되는

레코드 가게로 들어갈 시도를 했지만, 내 소심함은 끊임없이 나를 방해했고, 나는 어느새 지하상가

레코드 가게 앞을 그냥 지나치는 것에 익숙해져 그 안을 몇 차례 뱅뱅 돌기 시작했다.

똑같은 결심과 고민과 주저함으로 지하상가를 돌 던 나는 종아리에 통증을 느끼며 다시 지상으로

올라왔다.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아버지 퇴근 할 시간이 다 되었네.’

라는 생각이 든 순간, 또 다른 걱정이 튀어나왔다.

아버지는 성적이 떨어지거나, 뭔가 잘못을 하면

“아버지가 뼈 빠지게 일해서 키워주고 공부시켰더니. 이 따위...”

라는 자신 만의 레퍼토리로 질책을 하셨었다.

“아버지가 뼈 빠지게 일해서 준 용돈으로 유행가나 듣겠다고 돈을 써! 이 빌어먹을 자식아!”

라고 말하실 것만 같았다.

원래 계획은 아버지 몰래 이문세 5집을 사서 내 방에 잘 숨겨놓고는 아버지가 집에 안 계실 때만 들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내가 구매를 주저하는 사이 아버지 퇴근시간이 성큼 다가온 것이다.

이제 모든 것을 포기해야만 하는 것일까? 하고 낙담을 하며 내 소심함에 패배를 인정하고 집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마음은 참 편안하기 짝이 없었지만, 집에 가는 길에 무거워진 다리는 지하상가를 무려 두 시간이

돌던 것과 달리 나의 무기력 때문이라는 것을 나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다. 처량한 기분이란 게, 이런 걸까

하는 생각을 하며, 집까지 약 절반 정도 터벅터벅 걸어왔다. 뉘엿뉘엿 넘어가는 해를 바라보니 처절한 

패배감에 발은 더욱 무거워졌다. 그 순간,  오후를 모두 날린 것에 대한 억울함이 치솟아 오르기 시작했다.

이윽고, 난 과감하게 발을 다시 돌렸다. 내 소심함은 하루 종일 나와 싸우느라 지친 것일까? 다시 지하상가 

레코드 가게로 가는 동안 아무런 느낌이 들지 않았다. 거의 무아지경으로 레코드 가게에 들어갔다.

그렇게 들어가고 싶었던 레코드 가게에 들어서자 가슴은 안 뛰는데, 정신이 몽롱했다. 꿈을 꾸는 듯싶었다.

“이문세 5집 있어요?”

“응.”

“아... 예. 그렇구나.”

보통은 이렇게 말하면, 음반을 꺼내어 줄텐데, 레코드 가게 주인이 계속 쳐다본 것은 내 몽롱한 정신이

얼굴 표정으로 드러나 얼빠진 표정을 짓고 있었던 모양이다.

“살 거야?”

정신이 몽롱한 나는 레코드 가게 주인의 말을 제대로 듣지 못했다.

“네?”

“이문세 5집 살 거냐고?”

정신없는 사이에도 그 말이 정확히 귀에 꽂혔다. 드디어 나는 용기를 쥐어짜 토해내 듯 대답했다.

“네!”

레코드 가게 주인이 이문세 5집을 꺼내 비닐포장에 넣어주는 장면이 마치 꿈꾸듯이 흘러갔다.

그리고, 드디어.... 이문세 5집이 내 손에 쥐어졌다. 꿈을 꾸는 것 같았다. 이게 현실인지 꿈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지하상가에서 두 시간을 뱅뱅 돌고, 집에서 오고 간 시간까지 무려 세 시간을 그것도 선택과

고민, 주저함, 낙담, 포기 등 인간이 겪을 수 있는 고민의 감정이란 감정을 모두 겪은 나는 이젠 지칠 만

했지만, 집에 오는 길에 그런 피곤함 따위는 없었고, 설레는 감정으로 가슴이 벅차오르며 뛰다시피 해서

집으로 왔었다. 내겐 이문세 5집이 있으니까!     


하지만, 너무 늦게 도착해서 집에 오는 길에 아버지를 만나고 말았다.

너무 놀란 나머지 아버지에게 ‘다녀오셨어요?’가 아니라

“안녕하세요?”

라며 가려지지도 않는 레코드판을 등 뒤로 돌리면서 인사했다.

“뭐라고? 이 녀석이.. 그건 뭐야?”

아... 하늘이 다 무너지는 줄 알았다. 하루 종일 개고생하고 오늘의 마무리는 아버지에게 혼나고, 잘하면

쥐어터지게 생겼네라고 생각하며 망연자실하게 레코드판을 앞으로 내밀었다.

“레코드판이네. 너도 이제 음악 듣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눈물이 괜히 핑 돌았다.

“이제 다 컸네. 음악도 즐겨 듣고... 허허허.”

그 순간, 정말 눈물이 쏟아질 뻔했고, 아마도 눈물이 한 방울 정도 찔끔 나왔던 것도 같다.

하지만, 아버지는 내가 산 레코드판을 들여다보시느라 내 모습을 못 보았다.

“이문세? 노래 잘하는 녀석인가?”

그날 집에 오자마자 아버지는 내가 산 이문세 5집을 틀어주셨다. 그리고,

“노래 좋네~‘

아버지의 그 말 한마디에 하루 종일 겪었던 피로감이 해가 뉘엿뉘엿 지는 ‘붉은 노을’(이문세 5집 수록곡)

뒤로 싹 사라지는 통쾌할 정도로 상쾌한 기분이었다. 타고난 나의 소심함을 극복한 아마도 처음이자 마지막

날은 아쉽게도 붉은 노을 뒤로 점점이 지고 있었다.


                                                 

지금도 노을을 보면 이문세의 붉은 노을이 이따금 그 지하상가와 함께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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