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김밥을 세 줄 만드는 데, 걸리는 시간은 30분에서 1시간 30분까지 만들 때마다 다르다.
처음 김밥을 만들었을 때가 가장 오래 걸린 1시간 30분이었다.
오랜만에 만든. 오늘은 2시간이 걸렸다.
30분에서 2시간까지 걸리는 시간의 차이는 무계획과 그로 인한 주저함에서 나온다.
게다가 오늘은 겨우 몇 번 김밥을 만들었던 경험에서 온 오만함이 아무 준비 없이 시작하게 만들었다.
애초에 순서와 계획을 정해놓으면 음식을 하다가 뜬금없이 먼 산 바라보는 일은 생기지 않는다.
무계획으로 김밥을 만들어, 중간중간 다음에 뭘 해야 할지 먼 산 바라보며 생각하다가,
'순서가 맞나?' 하며 주저하니, 행동마저 굼뜨기 마련이다.
재료도 한꺼번에 꺼내놓고 손질한 뒤, 김밥천국처럼 이쁘게 그릇에 순서대로 담아두면 얼마나
좋았을까? 재료를 꺼내 놓지 않아, 김밥 만들면서 냉장고를 열 번 이상은 열었다가 닫은 것 같다.
참치김밥을 만들겠다면서 참치를 마요네즈에 버무려 놓은 것을 잊어. 김에 밥을 펼쳐놓고는
마요네즈를 찾아 참치를 버무려 올린 뒤에, 깻잎을 준비하지 않아, 다시 냉장고를 열어
급한 마음에 냉장고 안을 마구 들쑤시니 냉장고 야채코너는 엉망이 되었다.
그 상태를 만들어 놓고 깻잎을 찾자, 좋다고 꺼내서는 씻은 뒤, 물기도 제대로 털지 않은
깻잎을 밥이 펼쳐진 김 위에 올렸다.
원래 머릿속에서 만들고자 했던 김밥 모양. 솔직히 저렇게 이쁘게 만든 적 없다. 부럽다.
여기서 내 김밥 만들기의 만행이 끝났으면 좋으련만, 김밥에 넣을 속재료를 중구난방으로 놓고
만드는 바람에 도대체 뭐가 들어가고 안 들어갔는지 머릿속에서 정리가 안 되고, 재료를
널어놓은 상태도 그야말로 개판이어서 눈으로도 확인하기 어려웠다.
할 수 없이 밥이 펼쳐진 김 위에 올려진 재료를 뒤적뒤적 들추면서 빠진 녀석은 없나 하면서,
만드니 재료는 여기저기 나뒹굴고 속이 빠진 것도 꽤 되었다.
주방은 엉망이 되고, 김밥 세 줄 마는데, 두 시간밖에 안 걸린 게 용한 일이었다.
최단 시간인 30분이 걸렸을 때는 한참 김밥 만드는 재미와 다양한 김밥을 만들어 먹는
재미에 푹 빠졌던 시기였다. 어느 정도 익숙해져 있었기에 그야말로 아무 생각 없이 김밥을 만들기
시작했지만, 주저 없이 빠른 동작으로 착착 진행되어 30분이란 시간에 가능했다.
아마도 그런 식으로 김밥 만들기를 꾸준히 했다면, 더욱 시간은 줄어들었고, 몸에 동작이
배여서 오늘처럼 세월아~ 하면서 김밥 만드는 일은 없었을 거다.
김밥의 완성도는 가장 짧은 시간이 들었던 30분 만에 만든 김밥이 가장 튼튼하면서도
맛도 좋았다. 집중력 있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가장 시간이 많이 걸렸던 오늘의 김밥은 실패한 김밥이 다 그렇듯 옆구리가 터졌다.
두 줄은 반 만 옆구리가 터졌는데, 그래도 김밥이니 칼로 썰어내다가 모두 다 터트리고 말았다.
또 한 줄은 터지진 않았지만, 맥알이 없이 말아졌다가 칼을 대니 스르륵 수줍게 터진 옆구리를 보여주었다.
김밥은 여러 재료가 들어가 맛이 없기 참 힘든 데, 오늘 만든 김밥은 맛마저 없었다.
김밥 만들어주겠다고 어머니께 큰 소리를 쳤지만, 아무리 가족이라고 해도 옆구리가
심하게 터진 김밥을 드릴 수는 없었다.
"김밥 어딨어?"
"없어!"
"왜?"
"그냥 없어!"
라며 내 방으로 문을 쾅 닫고 들어왔다.
까닭 없는 화를 낸 뒤, 내 방으로 들어와 옆구리 터진 김밥을 혼자 실컷 배 터지게 먹었다.
계획 없이 충동적으로 일을 벌이면, 그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결국에는 나의 못난 행동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 어딘가에 책임 회피할 곳을 찾다 못 찾으면 저렇게 괜히 어머니에게
화를 내는 거다. 무계획은 사람을 점점 못나게 만든다.
저렇게 이쁜 그릇에 담아 어머니에게 드리려고 했는데.. 내가 만든 김밥은 너무 흉해 사진을 올릴 수 없었다.
무계획, 주저함은 시간도 잡아먹지만, 일의 완성도도 현저히 떨어뜨린다.
뭘 하더라도, 서두르지 말고 차분한 계획이 필요한 이유다.
애초에 우리 인생이란 게 자신이 계획해서 시작한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계획 없이
살면 나만 손해일뿐이다.
우리네 짧은 인생에서 무턱대고 오래 살 궁리만 하면 안 된다.
의학이 발전되기는 하겠지만, 노년의 삶이 젊은 시절의 삶에 비할 바는 못 된다.
뭔가를 할 수 있는 힘이 남아 있을 때, 짧은 인생을 그나마 즐겁고, 알차게 보내고 싶다면
무계획으로 인한 주저함, 쓸데없이 반복되며 무의미하게 흘려버리는 시간들을 잡아야 한다.
계획 없는 삶은 엉터리로 김밥을 만드는 나처럼 괜히 세 배 이상 시간을 지체하면서 맛도 없는 그런
삶을 사는 것인지 모른다.
아무리 쌓기 어려울 것 같은 저런 돌도 차분하게 계획을 쌓으면 된다. 인생은 저렇게 차분하게 계획을 쌓는 돌 쌓기처럼.
난장판이 된 김밥을 먹으면서, 계획되고 준비된 삶만이 옆구리 터지지 않는 튼튼한 김밥 같은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닐까 라는 웃기지도 않는 생각이 든 것은 터진 김밥의 잔해가 너무나
잔혹했고, 공들인 두 시간은 너무 아까운 시간이었다.
생각해 보니, 계획 없이 살아온 내 인생은 김밥 만들 때만 그랬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스스로 알아차리지 못한 사이에 내 인생을 그렇게 계획 없고, 형편없이 살면서 쓸데없는 시간을
낭비하며 살아왔던 것 같아 옆구리 터진 김밥 맛이 더욱 맛없게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