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이서 본 바이킹은 생각보다 거대했지만, 움직임이 너무 단순해서 만만해 보였다.
'돈 내고, 괜히 재미없는 거 타는 거 아니야'
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만만하게 보고 맨 뒷자리에 앉았다.
이윽고 조금씩 바이킹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움직임이 크게 느껴졌다. 얼마 움직이지 않았는데도 가슴이 섬뜩섬뜩한 느낌이
이따금 왔다. 다른 녀석들도 어떤 느낌이 오는지,
“야~, 이거 생각보다 괜찮은데”
“이 자식은 벌써 겁먹었는데... 하하하”
내가 먼저 선수 치면서 애들을 놀렸지만, 이미 난 가슴에 느껴지는 낯선 섬뜩함에 질린 상태였다.
바이킹의 움직임이 약 절반 정도로 올라오기 시작하자, 이따금 느껴지던 섬뜩한 느낌은 온몸을 감싸고
좀처럼 떠나지 않기 시작했고, 난 서서히 공포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타기 직전 지루하게 보이는
단순한 움직임과는 전혀 딴판이었다. 거기에 시각적인 두려움도 한몫하기 시작했다.
인간이 공포를 가장 크게 느끼는 높이가 10미터라고 하지만, 난 지금도 바이킹이 가장 높이
올라갔을 때가 가장 공포스러운 높이라고 생각한다.
바이킹의 움직임이 정상적인 궤도에 이르자 여기저기서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우아! 죽인다!”
“와 미치겠다”
“사람 살려!”
“그만! 그만!”
마지막 두 마디는 나 혼자 뱉은 말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즐기면서 지른 비명이었지만, 난 난파선에 조난당한 선원과 같은 마음으로 절실하게
살려달라고 지른 비명이었다.
다행히 내 비명도 다른 사람들의 소리에 묻혔고, 나의 비명을 진실을 눈치채지 못한 듯싶었다.
복싱선수가 3분을 길고 고통스럽게 느끼듯이, 나도 그 짧은 바이킹의 순간이 끝나지 않을 것처럼
길고 고통스러울 뿐이었다.
바이킹을 타 본 사람들은 잘 알겠지만, 바이킹은 올라갈 때는 아무렇지 않다가 내려올 때,
나 같은 사람에겐 공포를, 놀이기구를 즐기는 사람들에게는 즐거움을 준다.
처음엔 정신이 없다가 세 번 정도 왕복을 하고 나자 바이킹의 생리를 파악했다.
대략 네 번째부터는 올라갈 때는 심호흡을 가다듬고 내려갈 때 있는 힘껏 앞에
손잡이를 꽉 잡고 이를 악물었는데, 그래도 견디기 힘들었다.
여전히 입에서는 계속 비명이 꾸준히 나오고 있었다.
여섯 번 정도 왕복을 했는데도 그 시간은 너무 길게 느껴졌고, 이제 거의 끝이구나 라는
착각이 들었다.
그런데, 다시 너무나 힘차게 박차 오르는 것이 아닌가?
손잡이를 잡은 손에 힘도 점점 떨어지는 게 느껴지면서 난 절망감에 빠져들었다.
하지만, 바이킹의 항해는 단지 절반만 왔을 뿐이다.
일곱 번째 순간이 오자 난 모든 것을 부정하고 싶었고 아예 눈을 감아버렸다.
그런데, 눈을 감으니 내려가는 순간을 정확히 파악 못하게 되어 오히려 더 놀라게 되었다.
여덟 번째 내리막 순간이 오자 난 모든 것을 포기했다.
게다가 짧은 시간이지만 그동안 힘을 모두 다 썼다.
온몸에 힘이 모두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냥 바이킹에 몸을 맡겼다.
그 순간 희한하게 그 공포감이 절반 정도로 확 줄어드는 것이었다.
다음 순간부터 나름 요령을 터득한 난 몸에 힘을 빼기 시작했다.
하지만, 몸에 힘을 뺀다는 것이 그리 쉬운 것은 아니다.
야구선수들도 힘 빼고 공을 치려고 그렇게 훈련을 하지만, 실전에서는 안 된다고 하지 않는가?
하물며 바이킹의 그 급박한 순간에 나의 생각대로 몸에 힘을 뺀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이었다.
몸을 축 늘어진 오징어와 같은 자세로 힘을 빼고 아홉 번째 내려가는 길을 기다렸다.
아홉 번째 내리막 순간을 위해서 바이킹이 다시 힘껏 솟구쳤다.
바이킹이 정점에서 아주 잠깐 멈춘 사이에 내 시야와 바닥이 거의 일직선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그동안은 정신없어서 정점에서는 손잡이만 보고 있었는데, 힘을 조금 빼니 여유가
생겨서 눈을 들어서 정면을 본 것이다.
그 순간을 보지 말았어야 했는데....
순간적으로 몸에 힘이 쭉 들어가고 손잡이도 다시 힘껏 잡았다.
그리고 바이킹의 힘찬 내리막 돌진.....
“아이고~, 나 죽네!”
“하하하하 하하하”
친구들과 사람들이 즐겁게 웃는다.
난 정말 죽을 것 같은데....
다시 열 번째 순간을 위해서 바이킹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이 순간 난 이미 이성을 잃었다.
옆에 있던 친구에게
“야, 아저씨한테 내려달라고 해!”
“그래, 재밌지? 정말 신난다”
이 자식은 정말 죽을 것 같은데, 동문서답을 한다.
열 번 정도 왕복을 했는데도 도대체 끝이 날 것 같지 않았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두세 번 정도를 다시 왕복했다.
이미 몸에 힘은 빠지고 땀은 나고, 소리만 고래고래 질러대면서
목의 악력으로만 버틴 것 같았다.
열세 번째부터는 바이킹이 멈추기 위해서 서서히 작아지기 시작했고,
작아지는 움직임만큼 안도감이 들어서 남은 바이킹의 시간은 그럭저럭 참을 만했다.
지금 기억으로는 이렇게 총 열다섯 번 정도 왕복을 한 것 같다.
"생각보다 재미있네. 탈만 하네!"
바이킹이 멈춘 후 친구들이 눈치를 챘을까 봐 먼저 쿨하게 말하며 걸어 나왔다.
다행히 다른 사람들도 소리를 많이 질러서 내가 겁먹고 소리를 고래고래 지른 것을 전혀 눈치를 못 챈
것 같았다. 하지만, 녀석들은 정말 재미가 있었는지,
“보기보다 정말 죽이는데..”
“그렇게 말이야... 정말 재밌다”
“한 번 더 탈까?”
순간 난 얼굴이 핼쑥해졌지만, 설마 탔던 것을 또 타겠냐는 생각에 녀석들의
대화에 신경을 쓰지 않고, 아직 정신없는 몸과 마음을 아무도 모르게 추스르고 있었다.
그런데, 우리 일행 중에서 두 놈이 매표소 쪽에서 표를 들고 오는 모습이 보였다.
바이킹에서 내린 후 정신이 없어서 두 녀석이 매표소로 가는 것을 못 봤는데,
설마......
“야 표 여기 사 왔어!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서 내가 후다닥 사 왔어. 돈은 나중에 줘 “
순간 친구들은 환호를 질렀고, 난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다.
“왜? 재미없어?”
“아니, 재미있어”
그리고 그 바이킹을 다시 탔다.
처음 탄 바이킹은 그 강렬한 첫인상 때문에 기억이 생생하지만, 두 번째 탄 바이킹은
정말 지옥 같았고, 기억도 안 나고 기억하고 싶지도 않다.
다만, 바이킹이 내리막을 위해서 정점에서 바닥을 바라보는 아찔한 순간이 가끔 생각났는데, 그 생각만
하면 지금도 손발에 땀난다.
이때부터 녀석들은 놀이기구에 환장을 하기 시작했고, 난 그런 녀석들의 모습이 두려웠다.
몰래 녀석들 사이를 빠져나와서 다른 곳으로 도망갔다.
나중에 들은 얘기로는 무척 미안하게도 나를 약 30분 동안 찾았다고 한다.
녀석들은 바이킹을 다시 한번, 그러니까 총 세 번을 타고 있는 돈을 모두 다 털어서 다른 놀이기구도
탔다고 한다. 역시 빠져나오길 잘했던 것 같다.
그 후로 난 달리는 모든 종류인 버스, 기차, 오토바이... 심지어는 자전거를 타고 고가도로
같은 곳에서 내리막길을 만나면 바이킹에서 느낀 공포가 고스란히 전해졌다.
그 후유증은 20대 초반까지 이어졌다.
그래서 난 놀이기구를 절대 타지 않는다.
아니 솔직히 못 탄다.
가끔 tv오락 프로그램에서 아찔한 놀이기구를 소개할 때가 있는데, 그런 것을 보면
내 남은 인생에서 제발 저런 것을 타지 않기를 기원한다.
가끔씩은 저런 것을 탈 순간이 오면 어떻게 피할 것인가도 진지하게 고민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