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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버 Aug 05. 2023

후유증을 위한 바이킹 1


나는 놀이동산에 웬만해선 가지 않는다.

설령 가더라도 놀이기구는 절대 타지 않는다.

더 솔직히 말하면 못 탄다.

놀이기구를 마지막으로 탄 것이 중학교 3학년 때였는데, 그때의 강렬한

기억이 내 인생에서 놀이기구를 스스로 지워버렸다.

 

그렇다고 내가 놀이기구를 처음부터 못 탄 것은 아니다. 

인천에는 수봉공원이라는 오래된 공원이 있는데, 과거엔 다양한 놀이기구가 있어 어린이날이면 인천에

있는 어린이들이 이곳에 다 모여드는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북새통을 이루던 인기가 많은 공원이었다.

그곳에서 있는 놀이기구를 난 상당히 좋아했었다. 

내가 좋아한 놀이기구이면서 수봉공원을 대표하는 회전목마, 범퍼카를 즐겨 탔고, 가끔은 용기를 내서 

대관람차를 타고 그 높은 곳에서 인천 시내를 내려다보며, 내 나름의 호연지기를 키우기도 했다. 

뭐, 이 정도면 과거 수봉공원의 놀이기구 수준이 어떤지는 대강 짐작이 될 것이다. 대체적으로 작고 

아기자기한 놀이기구로 구성된 곳이었다. 뭔가 약간 부족함이 느껴지기는 했지만, 나름 때 되면

즐겁게 종종 가서 놀이기구를 즐기곤 했다.


 중학교에 들어간 뒤, 첫 소풍행선지가 자연농원으로 정해졌다. 지금은 에버랜드라고 불리는.

초등학교까지는 매번 동네 뒷산이나 가다가 관광버스를 대절해서 한 번도 가 본 적 없는 용인이라는

그 먼 곳까지 간다고 하니 반 아이들은 소풍 며칠 전부터 쉬는 시간에 모이면, 온통 자연농원에

대한 이야기뿐이었고, 나 또한 흥분되어 밤잠을 설치기까지 했다.

80년대 중반이었던 당시에는 레저라는 단어 자체는 생소했고, 자연농원 같은 곳에 놀러 간다는

것은 부유층이 누리는 호사라고 생각하던 시절이었다. 돈이 있어도, 차가 있는 집이 거의

없던 그 시절에 인천에서 용인까지 놀이기구 타러 가겠다는 것 자체가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렇기에 60명이 넘는 우리 반 아이들 중 자연농원에 가 본 적이 있는 아이는 극소수였다.

"거기에 가면, 롤러코스터라고 있어. 들어는 봤냐?"

"그게 뭔데?"

자연농원에 가 본 적이 있는 녀석은 쓸데없이 실실 쪼개면서 아이들을 주욱 둘러보며 말했다.

"우리나라에선 청룡열차라고 하는 건데, 공중에 레일을 깔아서 마치 하늘을 나는 것 같이

 달리는 거야."

그제야 롤러코스터라는 것을 tv에서 언뜻 본 기억이 났다. 공중에 설치된 레일을 빙글빙글

돌기도 하고, 수직 낙하 하는 보기만 해도 아찔한 놀이기구. 다른 녀석들도 생각이 났는지, 다들 

한 마디씩 했다.

"야, 그거 졸라 무섭지 않냐? tv에서 보니까 무지무지 무서워 보이던데."

"당연히 무섭지. 그런데, 이제 중학생이 되었는데, 남자가 되어서 그런 것도 못 타는 게 말이 되냐?

 그거 타고 죽는 것도 아닌데?"

아이들 사이에 침묵이 잠깐 흘렀다.

"이런 촌놈들. 그게 좀 무섭기는 하지만, 재미있게 타라고 만들어 놓은 건데, 무섭기만 하겠냐? 

 재미있어. 엄청나게."

"무섭다매?"

"아이 씨, 진짜 촌놈들 같으니라고, 그런 걸 타면서 느끼는 재미를 짜릿하다는 거야. 무서우면서도

 엄청나게 재미있는..."

우린 정말 촌놈들이라 그냥 무섭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던 것 같다. 침만 꿀꺽 삼키는 소리만 들렸다.

"그게 타기 무서우면 바이킹이라는 거 타면 돼."

수봉공원의 놀이기구가 세상의 전부라고 알고 살아왔던 우리들이 '바이킹'이라는 놀이기구를 알리가 있나?

"그건 앞 뒤로 오르락내리락하는 건데, 일종의 커다란 그네 같은 건데, 그것도 짜릿하면서 나름 재미있어.

  롤러코스터 보다 못하지만."

"그래?...."

"커다란 그네라니, 좀 싱거운 거 아니야?"

내 말에 아이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소풍날이 코 앞으로 다가오자 아이들의 기대감은 거의 흥분상태로 바뀌었고, 아이들이 모여서 나누는 대화는

온통 자연농원이야기뿐이었다. 인터넷이 없던 시절이라, 수소문으로 롤러코스터와

바이킹에 대한 정보를 얻은 아이들은 정말 재미있다는 말을 어디선가 주워듣고는 호기롭게 롤러코스터를

타겠다는 녀석들이 하나둘씩 생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난 솔직히 놀이기구가 좋기는 하지만, 통이 뱅글뱅글

돌면서 그 통을 달고 있는 놀이기구가 또 뱅글뱅글 돌아서 이중으로 빙빙 도는 '다람쥐통'이라는 놀이기구를

타지 못할 정도고 간이 작았다. 그런 내게 롤러코스터는 두려웠고, 난 '바이킹 ' 정도에서 타협을 보며

적당히 즐기기로 마음먹었다.


드디어 소풍날이 다가왔다. 

그날의 일정은 이랬다.

학교가 아닌 많은 버스를 댈 수 있고, 교통이 좋은 곳으로 정한 집합 장소에 아이들이 오전 8시 이전에

일찍 모인다. 인원체크를 하고 버스를 기다렸다가, 버스를 타고난 뒤 다시 인원체크.

몇 백 명이 움직이니 인원체크에 꽤 많은 시간이 걸렸다. 당시에는 한 반 인원이 60명이 넘으니, 한 버스에

다 타지 못하고 다른 버스에도 탄다. 그래서 또다시 인원체크. 이러다 보니 집합시간인 8시에서 두 시간이

 훌쩍 넘은 10시쯤에야 비로소 출발한 뒤, 약 두 시간 뒤에 자연농원에 도착한다. 그러나, 흥분한

열세 살 아이들의 기대감은 좀처럼 꺾이지 않았고, 들뜬 기분은 도착할 때까지 이어졌다.


12시를 조금 넘겨서 자연농원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린 뒤에 역시나 인원체크와 공지사항을 전달하는데,

거의 30분이 지났다. 점심시간은 1시까지. 식사는 군인들의 위수지역처럼 갈 수 있는 지역을 제한했다.

그거 지키지 않으면 원정 가서 선생한테 두들겨 맞을 수 있기에 우리는 제한된 지역을 벗어나지 않았다.

 30분의 시간 밖에 없기에 우리는 벤치가 보이면 바로 앉고, 아무것도 없으면 바닥에 주저앉아서 먹기도 

했다. 자연농원이 워낙 크니까, 선생들이 놀 시간을 최대한 확보하려 한 것인 줄 알았다. 서둘러 점심을

먹고 모인 아이들에게 담임이 한 말에 아이들의 흥분된 기대감은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장기자랑!'

맙소사! 그 먼 곳까지 가서 장기자랑을 시작한다는 것이었다.

일정은 그곳에서 장기자랑을 약 세 시간 가까이 한 뒤, 4시에서 5시 사이에 버스를 타고 집에 

돌아간다는 계획이었다. 그날 소풍에 놀이기구를 타는 계획은 전혀 없었던 것이다.

점심시간을 빡빡하게 준 것도, 조금이라도 시간을 여유 있게 주면 아이들이 놀이기구를 타러 갔다가

사방으로 흩어져 통제가 안 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었다. 그러고 보니, 우리가 도착해 모여있던

곳은 놀이기구와 정반대의 장소였고, 놀이기구는 저 멀리 환상처럼 보일 뿐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오락시간은 불만이 가득한 상태에서 시작되었다. 불만이 가득한 아이들이

즐겁게 장기자랑을 할 리가 없었다. 게디가 사전에 장기자랑에 대한 공지도 없었다.

각 반 마다 장기자랑 할 인간 한 명씩을 반장에게 즉석에서 할당했다.

반장 놈들은 그런 곳에서도 선생의 지시에 충실히 따르는 것을 천직이라고 여기는 듯, 반에서

가장 끼가 많은 아이들을 붙잡고 설득하기 시작했다.

"야! 네가 올라가..."

"야! 이게 말이 되냐? 여기까지 와서 누가 저 병신들 노래 듣고 싶다고!"

"에휴~ 그렇게 말이야. 그래도 어쩌냐?"

반장도 실망감이 컸는지, 장기자랑을 할 아이를 붙들고 같이 긴 한숨을 쉬면서도 무대 위로 아이를

올리기 위해 여념이 없었다. 다른 반의 사정도 다르지 않았고, 여기저기서 한숨과 함께 가끔은

'씨발'이라는 욕도 간간이 들렸다. 

장기자랑을 진행하는 체육선생이 그 모습을 보고 있다가, 아이들이 말을 듣지 않자, 이윽고 마이크를 

끄고 악을 썼다.

"야이 씨발새끼들아! 똑바로 안 해! 지금부터 각 반 마다 한 명씩 10초 안에 무대 위로 튀어 올라와!

 안 올라오는 반은 체육시간 때 두고 보자고. 그리고 제대로 놀아! 이 씨발놈들아! 제대로 안 놀면 알지!"

평소에 욕설과 몽둥이를 서슴지 않은 체육 선생의 말에 각 반마다 아이들은 사색이 되어 난리가 났다.

나가네 마네. 하며 옥신각신 하던 모습은 싹 사라지고, 반 아이들이 힘을 합해 모두 한 녀석씩을 강제로

끌고 와서 무대 위로 올려 보냈다. 드디어 반 마다 장기자랑할 아이들이 모이자, 체육선생은 마이크를 

켜고 상냥하게 말한다.

"얘들아, 우리 학교가 얼마나 잘 노는지 한 번 제대로 보여주자!"

놀이기구를 두고 웃기지도 않는 장기자랑 하는 게 무슨 자랑이라고.

신고 있던 양말을 주둥이에 쳐 넣고 싶은 게 심정이 든 것은 나만은 아니었을 거다.


짜증이 머리끝까지 올라와 있는 상태에서 어쩔 수 없이 약 세 시간 가까이 장기자랑을 했다.

하다 보면 재미있을 때도 있지만, 그 재미가 놀이기구를 타고 싶은 마음을 달래줄 수는 없었다.

우리의 지루한 장기자랑이 이어지는 내내 저 멀리 롤러코스터와 바이킹은 마치 우리를 희롱하 듯,

넘실넘실 달리기도 하고, 좌우로 왔다 갔다 하며 보였다 안 보였다 하며 우리의 화를 돋웠다.

그리고 허무하게 장기자랑이 끝나자마자 바로 버스 타고 돌아왔다.

이런 와중에도 몰래 빠져나가 놀이기구를 타고 오는 놈들도 있었지만, 그것은 굉장한

배짱을 요구되는 아주 극소수의 경우였다. 실제로 장기자랑에서 이탈해 놀다가 다시 돌아오는 길에

걸린 한 녀석은 체육선생이 본보기를 보여주려는 듯, 뺨따귀와 함께 어디서 구했는지 모를 몽둥이로

엉덩이 찜질을 가했다.


이런 소풍이 중학교 내내 지속되었다. 물론, 매번 장기자랑만 한 것은 아니다. 송도유원지처럼

같은 인천이면서 공원이 그리 크지 않은 곳에서는 놀 수 있게 해 주었다. 하지만, 자연농원이나

서울랜드처럼 멀고 큰 곳에 갔을 때는 인원통제 문제 때문인지 그런 곳에 가면 자유롭게 풀어주지

않고, 장기자랑을 빙자해 아이들을 묶어두었다. 정작 놀고 싶은 곳에서는 통제하고, 시내버스 타고

언제든 갈 수 있는 곳에 갔을 때만 자유롭게 풀어주니, 소풍에 대한 기대는 시간이 갈수록 대체적으로

낮아질 수밖에 없었다. 이제 소풍이라고 하면 그저 하루 수업 안 하고 바람을 쐬고 오는 정도의 의미만 

남은 것이다.


그러다가 중학교 3학년 때, 소풍 코스가 다시 자연농원으로 정해졌다. 

아이들은 다시 한숨을 쉬었다. 왜 자꾸 장기자랑 하러 그 먼 곳에 버스까지 대절해서 가는 것인지...

이번에는 아이들이 수업시간마다 교과목 선생님들에게 여태껏 소풍 가서 제대로 놀이기구

한 번 탄 적이 없다고 간절하게 하소연을 했었다. 그 점을 정말 감안했는지 이번 소풍에는 

놀이기구를 탈 수 있게 해 준다고 선생들은 약속했다. 아이들은 반신반의했다.

어떤 녀석은

"그 인간들이? 설마?"

"그렇게 말이야."

라고 불신하는 분위기도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소풍날 또다시 지루한 인원체크와 함께 자연농원에 

도착한 뒤, 아이들은 자기 반 담임을 간절한 마음으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담임이 충분히 놀다가 출발하기 전에 약속된 장소에 모이라고 말했다. 

아직 철이 없는 중학교 3학년 아이들을 믿지 못하는지 협박도 잊지 않았다.

"제시간에 안 오는 새끼는 맞을 줄 알아. 내가 여기라고 못 때릴 것 같아?"

라며 괜히 화를 냈지만, 

"야호!"

"와아아아~"

드디어 자연농원의 놀이기구를 탈 수 있게 된 아이들은 환호를 지르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드디어 3년 만에 제대로 놀 수 있는 기회를 얻은 자연농원은 정말이지 너무나 아름답고 꿈과 낭만이

있는 디즈니랜드 못지않은 곳이었다. 충분한 시간을 갖고 잘 가꿔진 꽃과 나무가 가득한 경치를 

바라보며 씹어 먹는 김밥의 맛에 향기가 날 듯 우리는 자연농원의 매력에 서서히 빠져들기 시작했다.

드디어 점심을 먹은 후 놀이기구를 탈 시간이 왔다.

2년 전, 중학교 1학년에 입학 한 뒤, 첫 소풍행선지로 자연농원이 도착한 뒤, 느꼈던 흥분된 감정이

다시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놀이기구 중 최고 인기는 역시 롤러코스터였다. 

대부분 아이들은 롤러코스터에 몰려들었고, 다른 학교에서 소풍을 와서 줄은 순식간에 길게 늘어났다.

괜히 덩달아서 아이들을 따라 간 나와 친구들은 망연자실하게 그 줄을 바라보다가 의견을 나누기 시작했다.

길게 늘어선 줄을 바라보며,

"저거 언제 다 기다리냐?"

"그렇게. 저 줄 다 기다리다가는 롤러코스터 밖에 못 타겠네."

"아니야. 줄이 길어 보여도 저 롤러코스트 봐! 사람이 얼마나 많이 타는데. 금방 줄어들 거야."

"그럴까?"

의견은 기다리자는 쪽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롤러코스터가 공중에 빠른 속도로 빙빙 돌다가

90도 각도로 수직낙하 하면서 들리는 탑승객들의 비명소리에 나는 잔뜩 주눅이 들었다.

뒤를 돌아 바이킹 쪽을 바라보니  꽤 한산했고, 바이킹은 한가하게 오르락내리락거리고 있었다.

"일단 바이킹을 먼저 타고, 롤러코스터는 나중에 줄이 줄어들면 타자. 어차피 저기 줄 서 있는 사람들이

하루 종일 롤러코스터만 탈 것도 아니고, 줄은 나중에 줄어들 거야."

다행히도 내 말에 아이들은 동의했고, 우리는 바이킹으로 향했다. 그리고, 난 우리 일행 중에 적어도 

두 녀석은 안도하는 모습을 순간적이지만,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 두 녀석은 내 말에 빠르게 동의했기에

우리의 첫 놀이기구는 바이킹이 될 수 있었다. 멀리서 볼 때는 몰랐는데, 자연농원의 놀이기구는 인천의

수봉공원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하고 현란한 움직임을 보여주었기에 난 적응과정이 필요했다.

그런 점에서 바이킹은 내게 적합하다고 난 착각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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