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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버 Jan 27. 2024

자전거 도난과 새옹지마

자전거 도난의 대서사시

2004년 가을 어느날이었다.

술자리에서 자전거를 탈 결심을 밝히자, 술이 만취한 친구가 말했다.

"야! 자전거 구석에 처 박아두고 다니지 마!"

이건 또 뭔 소리인가 싶었다. 타고 다닐 자전거를 구석에 왜 처박아 둬? 저 자식이 많이

취했나? 하고 흘려 들었다. 시큰둥한 내 반응에 친구는,

"자전거가 얼마나 많이 도난당하는 줄 알아? 사람들이 많이 왔다 갔다 하는 곳에 자전거

세워 두라고~ 병신 같이 골목길에 쳐 박아 두고 잃어버렸다면서 징징거리지 말라고~~ 알겠냐? 짜식아!"

친구의 말로는 사람의 시선이 닿는 곳에서는 웬만해서 자전거를 훔쳐가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튼튼한 자물쇠를 채우면 되지 않겠냐고 하니,

"자전거 자물쇠? 그거... 그거... 꾼들이 마음만 먹으면, 그거 잘라내는 거 일도 아니야.

사람 많이 다니는 곳에 세워두라니까! 이 자식이 사람 말을 믿지를 않아."

비슷하게 취한 다른 녀석들은 술에 취하니 녀석의 말이 논리적으로 들렸던 걸까?

"이 자식, 자전거 좀 타고 다니더니 아는 게 많네."

"자전거 박사야, 박사!."

취한 친구들이 근거 없는 칭찬을 하며, 녀석을 박사로 만들어 주자, 역시나 취해있던 나는

정말 중요한 조언을 해 준 녀석이 너무나 고마운 나머지,

"역시! 친구 밖에 없네. 고맙다! 친구야!"

술을 쳐 먹고 어느 한 곳에 꽂히면, 그게 세상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전 날 술 먹고 취해서 한 이야기는 주정일뿐이니, 없었던 일로 여겨야 한다.

하지만, 세상을 아직 몰랐던 난 녀석의 말을 가슴속으로 새기면서, 자물쇠의 견고함 따위는 무시했다.

자전거를 살 때,  서비스로 받은 시가 이 천 원 정도 하는 허약하기 짝이 없는 와이어자물쇠로 묶어놓고

아무 근심 없이 다녔다.  볼펜 굵기도 안 되는 호스 같은 재질로 만들어진 와이어자물쇠는 아마도 가정용 

니퍼로 몇 번 힘주면 쉽게 잘려 나갈 정도의 약했을 거다.

친구 말대로 꾼이 보기에는 일도 아니었겠지. 


흔하게 볼 수 있는 이런 모양의 자전거 자물쇠다.


자전거를 구입한 지, 오 개월도 되지 않아 아파트 단지 내 자전거 주차장에서 도둑맞았다. 

무턱대고 헤매고 다녀서 찾을 일이 아닌 듯싶어 경찰에 신고를 할까 고민하다가,

"얼마짜리 자전거입니까?"

"....... 6만 원이요."

"6만 원이요? 거.. 참.... 그렇지 않아도 바쁜데...."

이럴 리가 없겠지만, 행여나 이런 식으로 어이없어하며 귀찮은 표정을 짓는 다면,

자전거를 잃은 상실감에 빠져 있는 나는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받을 것 같아 신고를 포기했다.

게다가 어디선가 들은 말로는 자전거 도둑이 검거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고 들었다.

하긴, 경찰이 한가하게 6만 원짜리 자전거 찾으려고 수사를 벌일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살다 보면, 잊어야 할 때도 있다는 것을 여자가 아닌 자전거에서 느끼는 내 처지가 초라하지만,

이별을 속 깊이 되새기는 뜻깊은 계기였다고 하면 헛소리일까?

아직 어려서 감성적이었던 나는 자전거 타기 딱 좋은 그 가을날에 잃어버린 자전거에 슬픔에

젖어있었을 뿐, 시원치 않았던 자물쇠에 대한 반성 따위는 여전히 못하고 있었다.

모든 문제에는 원인이 있다. 그 원인을 간과했을 때, 불행은 막역한 친구처럼

어깨동무를 하며 머지않은 미래에 온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이건 외국인 거 같은데, 저렇게 훔쳐가는 나라도 있나 보다.


자전거를 도둑 맞고  5개월 뒤,  여전히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나는 새 자전거를 못 사고 있었다.

그 해 봄은 유난히 화창했다. 자전거를 타고 다니기 딱 좋을 날들이 이어지면, 분노와 함께

자전거 한 대쯤은 쉽게 도둑맞는 국가 치안을 욕하면서, 떠난 내 자전거를 잊으려 했다.

하지만, 날은 너무 화창하고, 라이딩하기 좋은 봄날의 유혹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다시 자전거를 샀다.

없는 살림에다가 행여나 다시 도둑맞을지 몰랐기에 다시 가장 저렴한 6만 원짜리 자전거를 선택했다.

그리고 이번에도 패키지처럼 이 천 원 정도 하는 와이어자물쇠가 서비스로 딸려왔다.

이번에는 사람들의 왕래가 좀 더 잦은 자전거 주차장을 찾아서 그 한심한 이 천 원짜리 

와이어자물쇠를 덜컥 채워놓고 안심했다. 

그러니, 결과는 뻔했다.


이번에는 한 달도 안 되어 다시 도둑맞았다. 환장할 노릇이었다.

자른 와이어자물쇠를 보란 듯이 훔쳐간 그 자리에 고스란히 놓고 간 모습을 보자, 더욱 울화통이

치밀었다. 죽은 자식 부랄 만지는 심정으로 분노와 슬픔을 억누르며, 끊어진 와이어자물쇠를

들어보니 너무 가볍고 가늘다는 느낌이 그제야 들었다. 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다시 자전거를 구입해서 안에 두고 다닐까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은 것도 아니지만, 아버지에게 

슬쩍 이런 생각을 밝혔더니,

"이 자식이 도둑 맞고 나더니 완전히 정신이 나갔네!"

안타깝지만, 라이더로서의 삶을 포기했다.


그 후로  난 트라우마 비슷한 것을 겪었다.  길을 걷다가 세워진 자전거를 보면, 자연스레 자전거 자물쇠에만 

시선이 갔다. 도둑맞은 내 자전거 와이어자물쇠와 비슷한 것을 채운 자전거를 보면 혀를 끌끌 차며, 다가올 

자전거 주인의 불행을 안타까워하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오토바이에 채워진 자물쇠를 발견했다. 오토바이에 채워진 자물쇠의 묵직함은 자전거

자물쇠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저거 다'라는 생각에 집에 오자마자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도끼로 찍어도 

부서지지 않을 것 같은 자물쇠는 차고 넘쳤다. 


지체 없이 자전거도 없는 나는 자전거 자물쇠를 구입하기 위해 철물점에 갔다.

오토바이용 자물쇠가 목적이었지만, 인터넷에서 본 그 가격이 어마무시해서 우선은 자전거용

자물쇠에서부터 답을 찾으려 했다. 철물점에서 파는 자물쇠는 뭔가 더 튼튼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있었으니까. 

"이 집에서 가장 비싸고 튼튼한 자전거 자물쇠가 어떤 겁니까?"

순댓국집에서 싸구려 순대에다가 서비스로 주는 곰탕국물을 먹으며 몇 시간을 죽 때리다가

이내 만취가 되어 이 집에서 가장 비싼 안주가 뭐냐고 헛소리를 하던 내 친구처럼 난

처음 보는 철물점 사장 앞에서 호기를 부렸다. 노회 한 철물점 사장은 내가 뭘 원하는지 

정확히 알았다.

"이건 말이야. 원래 오토바이에 사용하는 건데. 어지간한 연장으로는 잘라지지 않아.

게다가 이 겉면에 고무는 아주 질겨서 이것도 웬만해선 자르기 힘들지. 만져 봐!"

오토바이용이라는 말에 귀가 번쩍이며 눈이 뒤집힌 나는 철물점 주인이 건넨, 그 와이어자물쇠를

손으로 들어보며 그 묵직함에 감탄했다. 굵기도  내 엄지 손가락 만했기에 주저할 이유가 없었다.

"얼마예요?"

"만 이 천 원인데, 만 원만 내."

"네?"

자전거를 더 이상 도난 당하지 않을 수 있다면, 다소 비싼 가격도 감내할 각오로 갔던 나는

만 원이라는 가격 앞에서 잠시 주저했다. 철물점 주인이 보여준 와이어자물쇠는 사실 오토바이용으로

보기에는 좀 애매한 부분이 있었기에 아무리 비싸도 7천 원은 넘지 않을 거라고 예상했다. 

아무래도 철물점 주인이 바가지를 씌우는 듯한 싸한 기분이 들어 다른 철물점으로 갈까 하는 순간에

"이거 채우면 절대 도둑 안 맞아. 이걸 어떻게 잘라? 안 그래?"

내가 듣고 싶어 하는 말만 골라서 하는 철물점 주인의 노련한 상술에 바로 넘어간 나는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만 원을 지불했다. 비싸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다시 한번 손에 쥔 자물쇠의 묵직함은

나를 위로해 주고도 남았다.

'그래, 자물쇠가 이 정도는 돼야지.'

흡족한 마음으로 돌아서는 내게 철물점 주인은,

"자물쇠는 안 사나?"

"예? 자물쇠는 왜요?"

"이건 그냥 와이어지. 이 고리에 걸 자물쇠를 채워야 할 거 아니야."

그러고 보니, 여태껏 내가 썼던 와이어자물쇠는 그 끝 부분을 서로 이어 열쇠를 꽂아 잠그는

장치였는데, 방금 구입한 와이어자물쇠는 그 끝부분에 구멍만 나 있어, 문을 잠글 때 사용하는

일반 자물쇠를 채워야 했다. 거금 만 원에 오 천 원 추가라니 좀 망설였지만,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고 생각한 나는 어쩔 수 없이 오 천 원을 지불했다.

6만 원짜리 자전거를 살 계획이었기에 그 가격에 사분의 일에 해당하는 자물쇠를 사는

것이 맞나 싶었지만, 역시나 돌아올 수 없는 강을 두 번이나 건넜다는 생각으로 자전거를 

구입했다.


저기 걸려 있는 저 자물쇠다.


그로부터, 18년이 지난 2023년까지 난 2005년에 샀던 그 와이어자물쇠를 사용했었다.

이 말은, 18년 동안 한 번도 도난을 당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지난 18년 동안 4대의 자전거가 내게 왔다가 떠났지만, 2005년에 산 와이어자물쇠는 2023년까지

내 자전거들을 든든하게 지켜주었다.

작년에 다른 와이어자물쇠로 바꾼 것도, 아파트 관리사무실에서 단지 내 바닥 도색을 한다면서

멋대로 용접봉으로 내 와이어자물쇠를 끊고 자전거를 이동하는 과정에서 생긴 일이지, 수명이 다한 것은 

아니었다.

용접봉으로 자른 거, 사진으로 증거확보하고 관리사무실 가서 항의하고 보상받았다.


인생사 새옹지마라는 말이 있다. 볼행이 다가왔다고 그 불행이 지속되는 것도 아니고, 그 불행이

때로는 행운을 불러온다는 말이다. 아마도 내 자전거 도난의 역사가 그랬던 것 같다.

소심하고 수동적이면서 돈도 없는 나를 과감한 투자로 이끈 것은 두 번의 강력한 도난 사건으로 멘붕에 

빠진 내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불행이 나를 현명한 선택으로 이끌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니, 비싼 와이어자물쇠를 구매한 것은 내가 선택했지만, 내 스스로

판단한 것이 아니었다. 상황이 그렇게 만들었다. 다만, 나의 어줍지 않은 자전거에 대한 열정이라고

말하기는 좀 민망하지만, 그런 마음이 조금이나마 있었기에 자전거를 포기하지 않았고, 

그 결과 더 이상 도난 걱정 없는 자전거 자물쇠를 갖게 된 것은 아닐까?

그러고 보니, 인생사 새옹지마라는 말에 숨은 뜻은 어떠한 불행이 닥쳐도 포기하지 말고, 열심히

살라는 것은 아닐까? 포기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열정을 갖고 살다 보면 내게 다가왔던 불행이나 실패가

자양분이 되어 내게 행운과 보다 나은 미래를 주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내 든든한 와이어자물쇠를

바라보며 생각해 본다. 


지금 사용하고 있는 와이어자물쇠. 먼저 것보다는 굵기가 덜 하지만, 그래도 저렇게 채워두면 든든하다.
그동안 자전거 사면서 받은 저 허약한 와이어자물쇠는 바구니 잠금장치로 쓴다. 바구니도 도둑맞은 적이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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