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줄 서는데, 나도?
동네시장에 가면 족발 1팩을 단 돈 만원에 파는 가게가 있다.
가격이 저렴하니, 오픈 초기에는 많은 사람들이 줄을 길게 서서 구입하는 모습을
늘 볼 수 있었다. 거의 20명 이상을 항상 줄 세우니, 당연히 시장을 오고 가는 사람들의
주목을 끌었다. 시장에서 유동 인구가 가장 많은 곳이 자리했기에 소문은 금세 삽시간에
퍼졌고 유튜브에도 소개가 될 정도였다. 가게에서 일하는 종업원들의 모습도 꽤 인상적이었다.
포장만 팔기에 가게 안에서 앉아 먹을 수 있는 식탁은 없고, 가게 안 전체가 족발 삶는 일종의
주방이다.
그 주방이 사방에서 볼 수 있게 트여 있고, 끊임없이 줄을 선 손님들에게 제공할 족발을
만들기 위해 네 명의 직원이 분주히 움직인다. 삶아진 족발은 가게 앞 가판대로
뜨거운 김을 모락모락 내면서 내어진다. 뜨거운 족발을 받은 가판대 맨 왼쪽에 자리한
직원이 수동으로 작동하는 기계를 이용해 순식간에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낸다.
썰어진 족발을 그 옆의 직원에게 넘기면, 스티로폼 용기에 담아 랩으로 감싸고, 그 옆의 직원으로
옮겨진다. 랩으로 포장된 용기를
작업줄의 끝에 있는 직원이 담아서 손님에게 건네고, 계산까지 마친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직원 한 명이 줄을 선 손님들 사이를 오가며, 얼마나 구매할지를 체크하고, 주방에 줄이 어느 정도
서 있는 지를 알려주어 족발을 만들어 내는 속도를 조절한다. 재료가 모두 소진되는
오후 5시경에 이 직원의 가치는 더욱 유용해진다. 줄을 선 손님이 허탕 치지 않게, 주방 안에
족발의 남은 양과 줄을 선 손님의 숫자를 대조해 적당한 선에서 손님에게 양해를 구하고
줄을 잘라낸다. 생기 넘치는 이런 장면 덕분에 가게는 더욱 활력 넘쳐 보였다. 그런 분위기가
손님들의 줄을 더욱 길게 만든 듯싶었다.
하지만, 어느 날부터 길게 섰던 줄이 사라지고, 가판대에는 팔리지 않은 족발이 가득한 모습이
발견되었다. 하루 종일 죽치고 않아서 확인한 것은 아니고, 지나가는 길에 목격한 것이기에
가끔 줄이 끊기는 일이 있구나 정도로 생각했다. 하지만, 그날만 그랬던 것이 아니었다. 이후로 줄을
서는 모습은 보기 힘들어졌고, 만 원짜리 족발은 가판대에 가득 채워진 채 손님을 기다리는
날들이 늘어갔다.
나는 아무리 맛집이어도, 줄 따위는 절대 서지 않겠다는 사람들 중의 하나다.
시장을 자주 가는 나도 딱 한 번 그 긴 줄이 주는 마법에 걸려 줄을 서서 산 적이 있다.
맛이 없었다. 맛이 이상하거나 양념이 신통치 않은 게 아니라 맛이 무(無)라고 하는 게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곁들여 파는 소스를 찍어서 먹어도 별다른 감흥이 느껴지지 않았고, 족발 특유의
고소함도 없었다. 만 원이지만, 다시 사 먹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만 원 족발집의 줄은 점점 보기 힘들어져 갔다.
만 원 족발 집 옆에도 또 다른 족발집이 있다. 이 집은 만 원보다 약간 더 받는다. 오천 원 정도.
하지만, 맛은 훨씬 훌륭하다. 만 원 족발집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의 역사도 갖고 있다고 한다.
적어도 십 년은 된 듯. 족발 한 팩에 만 오천 원인데, 맛도 괜찮으니 이젠 그 집에 손님이
훨씬 더 많다. 다만, 희한하게도 이 집 앞에는 줄이 서 있는 경우가 거의 없다.
저렴한 가격과 맛을 잡은 그 족발집이 이제는 훨씬 잘 되고, 요즘에는 이 집도
만 원짜리 족발을 만들어 판다. 그러니, 경쟁이 안 되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그때부터 참 기이한 현상이 나타났다. 만 원 족발은 평소에 가판대에 안 팔린 족발이
많아 직원 수도 줄어든 듯싶은데, 가끔씩 열명 안팎의 손님이 줄을 서서 구매하는 모습이
종종 눈에 띈 것이었다. 시장을 한 바퀴 돌고 와서 줄이 사라지면, 다시 파리를 날리는 듯싶었다.
그 이후로도 종종 사람들이 줄을 서서 사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생각해 보니, 일 년여 운영했던 만 원 족발집은 줄 세우는 노하우가 나름 쌓인 듯싶었다.
만 원 족발 집 앞은 늘 소란스럽다고 할까? 직원들이 항상 '족발이 만 원!'이라고 목소리를
높여 호객행위를 했고, 시장을 처음 찾은 사람들은 그 가격에 놀라서 일단 달려가다 보니
줄이 작게 생기고, 군중심리에 따라 사람들이 줄을 서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남들이 다 하는 거나, 남들이 다 이익을 보는 데, 나만 빠지는 것을
못 견뎌한다. 급속한 성장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은 조금이라도 뒤처지는 것에 예민하고,
불안감에 빠지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젊은 세대는 좀 다를까 싶다가도 여전히, 그다지
재미없는 영화를 남들이 보니까, 일단 보자는 마음에 천만 영화를 만드는 세태를 보면
젊은 세대도 기성세대와 별로 다른 것 같지 않다.
이런 불안한 심리를 잘 이용하면, 떼돈을 벌 수 있는 사업이나 장사가 있지 않을까?
만 원 족발집 앞에 길게 늘어선 줄을 보면서, 얼른 나도 저런 장사를 해야 하는데,
하는 초조감이 드는 것은 또 다른 줄에 서고 싶어 하는 불안감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