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일상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리버 May 25. 2024

프랑스 화장실과 한국의 신축 아파트

화장실 제대로 못 갖춘 프랑스와 매번 부수고 새로 짓는 한국

다니던 도서관을 바꾸면서 새로운 길로 종종 걸어 다닌다.

사실, 처음 걷는 길은 아니고, 예전에 매일 걸어 다녔던 중학교 등하교 

길이기에 익숙한 곳이다. 하지만, 세월이 많이 흘러 이제는 길의 풍경이 예전과

많이 달라져 낯선 느낌이 더 강하다. 예전에 매일 다니는 이 길은 끔찍했다.

발전이 거의 안 된 동네라 우범지대 같은 분위기를 물씬 풍기던 곳이었고,

초등학생 얼굴에 키만 멀대처럼 크면서 빼빼 마른 나는 깡패나 양아치의 

손쉬운 타깃이 되어 소위 말하는 ‘삥’을 뜯겼는데, 작게는 100원, 버스표,

나중에는 점퍼, 시계도 뺏겼던 불쾌하고 초라한 기억이 가득한 길이다.    

삥 뜯긴 경험이 많아서인지, 처음 보는 곳인데도 낯설지 않다.

 

길을 걷다 보면 드문드문 옛 모습이 미세하게 남아있지만, 우리나라 어디를

가든 다 그렇듯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고, 그에 딸려서 잘 포장된

인도와 도로가 깔려서 전체적으로 깔끔해져, 예전의 우범지대 모습은 모두 사라졌다.

설령 깡패를 만나도 데려갈만한 으슥한 골목이나 구석도 거의 없다.

후배들이 깡패에게 삥 뜯기지 않고, 안심하게 다니게 되어 선배로서 뿌듯하다고

하면, 고마워할까? 아니면, 저런 머저리가 우리 선배라니? 라면서 창피해할까?

 

평소에 우리나라 어디를 가든, 다 똑같은 브랜드의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는 모습이 못 마땅했다. 이사를 가고 난 뒤, 어릴 적 살던 곳의 향수가

떠올라 가보면, 추억을 더듬을 수 없게 완전히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몇 십 층

짜리 아파트 건물이 들어선 것을 보면, 괜히 딱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프랑스처럼 유럽은 대부분 옛 도심의 흔적과 건물이 잘 보존되어 있다. 

그게 과거와 현재를 잇게 하고 정서적인 유대감도 갖게 하는 풍부한 자산이라고

평소에 생각했다.


그런데,  얼마 전, 고약한 프랑스 화장실 기반시설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화장실 인심이 사나운 모양인데, 사람 많이 다니는 지하철역에도 공중화장실이 없다고 한다.

프랑스인들은 얼마나 방광이 크길래? 밖에서는 그냥 참고 다닐 수 있는 건가?

지하철뿐만 아니라 공중화장실이 대체적으로 매우 적다고 한다.

서양인들의 타고난 신체조건이 동양인보다 우월하다고 하지만, 방광까지 그런 걸까?

라는 엉뚱한 방향으로 생각이 빠질 뻔했지만, 프랑스 지하철역에는 지린내가 진동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역시, 방광이 커 봤자 하루종일 참을 수는 없을 테지.

그나마 있는 공중화장실도 절대 이용할 곳이 못 되어 정말 최악의 상황이 아니면,

이용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프랑스를 다녀온 사람들에 의해 전해진다.


프랑스는 제국주의 시대부터 현대에도 선진국의 지위가 공고하다. 과거의 찬란한

역사의 가치관과 영광이  옛 도시와 건물에 스며있어, 그렇게 보존하려는 것인지 모르겠다.

쉽게 기존 건물과 도심을 변형시키기 어려우니 공중화장실 짓는 것도 또한 만만치 않을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자료를 찾아보니, 하이힐과 긴 드레스가 프랑스가 원조인 이유는 화장실 문화가 발달하지

않아, 길거리에 오물이 넘치니 그걸 피하기 위해서 하이힐을, 화장실이 없으니, 노상방뇨를

위해 드레스가 발전했다고 한다. 게다가 화장실 이용은 이용자가 전적으로 부담을 져야 하니

돈을 내고 용번을 보는 게 맞다는 사고방식이 자리 잡았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불과 몇십 년 전만 해도 공중화장실은 정말 이용하기 끔찍했다.

하지만, 그야말로 전국토를 갈아엎는 수준의 개발이 진행되면서 화장실을 같이 짓는 

것이 뭐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그리고, 인간적으로 급하게 볼 일 보는 데, 돈 받는

것은 좀 그렇잖아?라는 우리나라 특유의 공동체 의식도 한몫했을 거다.


이쯤 되니, 개발과 보존에 대한 내 가치관이 흔들린다.

옛 시대의 가치관을 지키겠다고, 용변도 제대로 못 보게 만들어 수치심을 자극하는

프랑스의 보존에 대한 가치는 그야말로 얼마나 가치가 있는 걸까?


살아온 세월과 흔적이 다르니 사는 방식이 다를 수밖에 없고, 그에 따라 가치관도 

다 다르다. 하지만, 그 가치관도 현재를 사는 우리들을 위한 것이어야 설득력이 있고,

후대에도 계승될 것이다. 당장 오줌도 못 싸고 바지에 지리고 개망신당했는데,

그런 망신을 당하고 난 뒤, 역사적 가치를 지키고 싶은 생각이 들까?

 

그렇다고, 개발 논리에만 너무 빠져 과거와 현재를 잇는 정서마저 파괴하는 것은

정서적 단절로 우리를 분열시킨다. 이제는 거의 사라진 피맛골이 잘 보존되었을 때,

조선시대 일반 백성의 고달픔을 이해하고, 그 고단함을 계승하면서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었다. 그런 의미 있는 것들마저 개발논리에 잠식되어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그나마 남아 있는 과거의 흔적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이제 우리나라도 선진국이 되었는데, 마구 과거의 흔적을 지우면서 새로 짓는 

대규모 아파트 단지를 올려다보면서 영화 속 한 대사를 속으로 삼킨다.

"꼭! 그랬어야만 속이 후련했냐? 이 씨발새끼들아!"

라며 2006년 개봉했던 영화 해바라기의 대사가 생각나기도 한다.


개발이냐? 보존이냐? 어느 것이 더 중요한 지는 역사, 시대, 상황에 따라 다르다.

어느 것이 우월한 논리 일 수 없다. 단 , 그곳에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놓치지 않을 때, 개발이든 보존이든 그 가치가 빛이 나고 그곳에서 사는 사람들이

행복해하며, 자신의 가치에 자부심을 느끼고 후대에도 계승할 마음이 생길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오작동 화재경보 무시만 할 거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