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공간을 만들고 공간은 사람을 만든다는 유명한 어구를 좋아한다. 이 말은 건축가와 도시 설계자의 임무를 낙관적인 시선으로 요약하는 동시에 사회 불평등과 그 구조적 원인을 하드웨어 즉 공간적 관점에서 파악하도록 돕는다. 사회적 관계, 정체성, 불평등은 우리가 삶을 영위하는 거시적인 공간의 조직 방식과 깊이 연관되어 있다. 우리는 자각하지 못한 채 매일 출근하는 길의 풍경, 지하철의 혼잡도, 특정 행동양식을 넌지시 암시하는 광장 디자인에 영향을 받는다. 더 넓게는 우리가 태어나고 머무는 도시, 국가, 대륙의 공간 구조 속 질서에 따라 살아간다.
여행을 떠나 일시적으로 이방인이 되는 경험은 평소 살고 있는 주변 세계를 새롭게 바라보게 하는 힘이 있다. 매일 보는 도시는 당연히 존재하는 일상의 배경일 뿐 내게 특별한 인상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그러나 타국에서는 평범한 거리의 모습조차 하나하나 새롭고 놀랍게 다가온다. 경험의 빈 칸에 도시와 건물, 사람에 관한 데이터를 채워가며 점차 낯설었던 길거리의 풍경에 의미를 부여해간다. 낯섦에 익숙해질 때쯤 한국으로 돌아오면 일상의 풍경이 조금씩 다르게 느껴진다. 내가 발붙이고 살아가는 도시에 대한 애착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더불어 여행지는 내 안에 또 다른 장소로 남는다. 이전까지 아무런 의미가 없었던 지구 반대편의 한 좌표는 노을과 바다가 인상적이었던 특별한 장소로 기억된다.
여행은 타국의 사람들을 관찰하며 익숙해진 사고방식과 관점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기회이자 내 자아를 구성하는 공간적 지평을 넓히는 행위이다. 이러한 행위는 공간이 장소성을 가지게 되는 과정, 즉 장소감 형성 개념과 연결된다. 카누를 젓는 원주민이 바다를 보이지 않는 특별한 요소로 가득 찬 장소로 인식하고 그 경로를 따라 항해를 했던 것처럼 한번 경험하고 의미를 부여한 공간에서 우리는 기억이
지속되는 한 유의미한 정보를 읽어낼 수 있다.
이방인이 되는 경험의 또 다른 특별한 점은 낯선 공간에서 사회적 시선, 위치를 고려하지 않아도 된다는 해방감에 있다. 독일에서 지내는 내 친구는 아무도 자신을 모르는 도시에서는 축제가 열렸을 때 마음껏 소리지르고 춤추고 노래할 수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 아무도 나를 모르는 나라에서는 길거리에서 백덤블링을 해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을 것 같은 해방감에 휩싸인다. 사회적 관계와 위치가 무의미해지는 낯선 장소에서는 ‘나’ 자신에 대한 리셋이 가능하다. 나를 아는 이들의 시선을 의식할 필요가 없기에 가장 원초적인 행위부터 내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는 자유가 생긴다.
타국은 한국에서는 드러내기 어려웠던 소수자 정체성을 보다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공간이 되기도 한다. 이는 이방인으로서 누릴 수 있는 하나의 이점이자 젠더 정체성에 더 열린 태도를 가진 문화적 배경 덕분이기도 하다.
유학을 떠난 친구 중 한 명은 성적 지향성을 자유롭게 드러내고 표현하는 외국 친구들이 신기하고 부럽다고 말한다. 동성을 좋아한다고 밝혀도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이 생경했다는 거다. 한국에서는 어 레즈비언인가? 싶으면 높은 확률로 아니거나 개인적으로 가까워지지 않는 이상 알 수 없지만 외국에서는 그 감이 대부분 맞다는 우스개소리도 한다. 우리나라와 달리 퀴어 정체성을 드러내고 표현하는 일에 거리낌이 없다는 뜻일 것이다. 반면 소수자성이 억압되는 공간에서 소수자들은 안전한 표식이나 언어로 은밀하게 서로를 알아보고 신호를 주고받는다.
고등학생 때 청년 주거에 관한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한 적이 있다. 실험적인 청년 주거 공동체에 관심이 많아 여러 곳에 찾아가 인터뷰를 요청했다.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해방촌의 ‘빈집’이었다. 빈집은 기존 주거 구성원들이 집을 운영하며, 홈페이지 댓글로 투숙을 요청하면 누구나 받아주는 방식으로 운영되는 공동체였다. 나는 인터뷰 목적으로 방문했지만 당시 빈집은 가출 청소년과 오갈 데 없는 청년들이 주거와 정서적 지지가 필요할 때 찾는 일종의 도피처이자 쉼터였다. 자연스럽게 소수자적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청년들이 모였고, 다양성을 존중하는 문화가 자리 잡혔다. 특히 당시 나에게 인상 깊었던 점은 성중립 화장실을 운영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또한 다수가 생활하는 공간이라는 이유로 개개인의 성향과 요구를 묵살하지 않고 일주일에 한번, 몇 시간에 이어지는 회의로 모두가 받아들일 만한 타협점을 찾아 나가는 분위기가 인상 깊었다. 당시 그들은 다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으로서 존재할 수 있는 공간을 원하고 실현하려 했던 것 같다.
서로 다른 정체성과 관점을 포용하는 장면을 목격했던 또 다른 기억은 탄핵 집회에서의 풍경이다. 2016년 겨울 이후, 다시 광장에 사람들이 모였다. 집회 현장에는 노래를 부르고 중간중간 짧은 연설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정치인부터 학생, 주부, 장애인, 퀴어, 페미니스트, 노동자 등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탄핵뿐만 아니라 자신이 살아온 세상, 자신이 원하는 사회에 대해 이야기한다. 대다수 군중들은 박수와 환호로 응답한다. 요즘 같은 사회에 퀴어 페미니스트가 이렇게 많은 인원에게 환호받을 수 있는 공간이 또 있나 하는 실없는 생각을 했다.
광장이라는 공간의 특수성에 대해 생각했다. 공통된 목적을 가지고 결집했을때 그 안에서 다양성이 억압되지 않고 존중받는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당장 해결해야 할 대의를 중심으로 모였기 때문일까? 정체성과 사회적 계급의 차이에 상관없이 자신을 드러내고 주장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평소 도시에서 목소리를 발산하기 어려운 이들이 광장이라는 공간의 특수성과 집회의 한시성을 기반으로 마음껏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일시적인 이벤트가 끝났을때, 그들의 목소리는 어디로 가는가? 광장의 목소리가 일상적인 사회적 공론의 장으로 이어지는가?
수업시간에 등장했던 어구 중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라는 말을 떠올린다. 친밀하고 일상적인 공간과 시간에서 발생하는 개인의 경험은 보다 거대한 정치적, 사회적 문제를 반영한다. 바꿔 생각하면 정치는 사람 대 사람의 관계가 형성되는 가장 미시적인 단위의 사회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정치 권력이 하향식으로 흐른다는 믿음, 이성을 우월하게 여기는 태도를 반성하고 감정을 동일한 위상으로 끌어올릴 필요가 있다.
내가 일상을 살아가면서 느끼는 불편함, 이질감, 혐오감이 무엇인지 성찰하는 일은 개인의 심리적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사회적 의제로 발전할 수 있으며 더 나아가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의 구조를 다시 바라보게 만드는 계기가 된다.
학창시철 다양한 장소로 답사 내지는 소풍을 다녔다. 그중 종교공간도 많았는데 템플스테이는 물론이고 가톨릭 수도원, 이슬람 사원에 방문하기도 했다. 이태원 이슬람 사원에서 친구들과 히잡을 사서 신기한 마음에 길거리에서 쓰고 다녔던 기억이 난다.
이태원은 외국인들이 모여 각자의 고유한 종교와 문화를 중심으로 결집한 공간으로, 서울의 도시 공간 중 무슬림 문화에 가장 수용적인 지역일 것이다. 이태원, 차이나타운, 도쿄의 신오쿠보 등 이민자 커뮤니티가 도심 내에 결집된 형태로 형성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같은 생활양식을 공유하는 이웃을 근거리에 두면서 얻는 생활의 이점과 사회적 안전망 등의 이유도 있겠지만 도시에서 수용되지 않는 문화를 가진 이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인정해주는 집단을 찾아 자연스럽게 모이게 되지 않나 생각한다.
로마에 오면 로마법을 따르라는 말이 있다. 최근에 차별과 혐오를 정당화하는 목적으로 이 말이 인용되는 모습을 자주 보는 것 같다. 이방인 주제에 감히 남의 국가에서 종교 정체성과 문화를 드러내는 일은 바람직하지 않은 짓이다. 이방인이 고유의 정체성을 억압하고 이곳의 질서, 규범을 따를 때 그 모습은 주류 사회에 받아들여질 만 하다고 인정된다. 그는 비로소 한국인이 될 자격이 있다. 그런데 그 자격은 누가 주는 것일까? 한국과 문화적으로 동화되어 한국인으로 정체화 하는 것을 축복하고 환영하는 장면을 볼 때마다 이상한 역함이 느껴진다. 이들이 ‘한국인’으로 마땅히 지켜야 할 기준에서 벗어났을 때 받게 될 사회적 질타와 배제의 케이스를 익히 보아왔기 때문이다. 이런 태도는 유독 동남아, 중동 등 비 백인 국가에서 온 이방인들에게 적용된다. 우리는 무의식 중에 서양 국가와 비 서양국가 사이에 우리의 위치를 두고 시혜 혹은 동경의 태도를 저울질하고 있지 않나?
초등학생 때 역사 공부를 좋아했다. 꿈은 고고학자였고 취미는 학교 도서관에서 위인전과 한국사 책 읽기였다. 5학년 때 엄마가 나를 역사 답사 프로그램에 데려갔다. 국내 박물관과 유적을 답사하면서 해설해주는 프로그램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 역사에 대한 관심에는 크게 두가지 감정이 혼재되어 있었던 것 같다. 옛날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흔적을 느끼면서 상상에 빠지는 순수한 즐거움과 한민족의 정체성에 대한 자부심과 일체감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3학년짜리가 무슨 그런 감정을 느꼈나 싶다) 고조선부터 대한민국에 이르기까지 한국사는 단일 민족적 정체성을 바탕으로 짜인 강한 내러티브를 가지고 있다. 나는 당연하게도 단군의 후손이며 3.1운동의 정신을 계승한 민주 국가의 시민이다. 크고 나서 문득 ‘정말 그런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내 조상의 뿌리가 어디인지를 떠나서 내 민족 정체성이 이렇게 단단하고 물 샐 틈 없이 구축되어 있다는 사실에 새삼스럽게 신기함과 동시에 이질감을 느꼈다.
그것은 누가 만들어준 것인가? 내가 스스로 발견한 것인가, 학교와 국가가 내게 주입한 것인가? 그리고 그 일체감은 무엇을 위한 감정이었나? 나에게 민족은 무엇인가?
다문화 민족주의 개념을 설명한 학자 윌 킴리카가 말하듯이 민족주의의 장점은 분명하다. 국민에게 일체감을 제공하고 사회에 결집과 안정을 가져다준다. 그러나 이러한 민족주의 복지국가의 부작용 또한 뚜렷하다. 21세기 민주국가 국민으로서의 정체성이 조상의 핏줄과 피부색으로 결정되는 것은 너무 빈약하지 않은가? 민족 정체성에 동화되지 못하고 갈등과 차별을 겪는 사회 구성원들을 포용할 수 있는 대안적인 시민 정체성을 상상할 필요가 있다고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