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투리 글: 도시를 잠시 벗어나는 방법

by 채영

대부분의 나의 일상은 집과 학교, 일터 그리고 그 셋을 잇는 대중교통 사이에서 이루어진다. 새로운 장소를 여행하며 발견하는 것을 좋아하지만, 일상을 완전히 벗어나기란 쉽지 않다. 그래도 가끔 익숙한 동선을 약간 벗어나는 기회가 찾아오곤 하고 그런 순간에 종종 새로운 공간을 발견하게 된다. 대부분은 내 생활 영역의 어딘가에서다.


첫 번째로 이야기하고 싶은 공간은 한강 근처에 있다. 내가 다닌 학교는 한강과 매우 가까워서 마음만 먹으면 뚝섬한강공원까지 산책을 갈 수 있었다. 어느 주말 오후 학교에서 공부를 마친 후 시간이 조금 남아 산책을 하기로 했다. 공원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주말 저녁의 강변에는 묘한 분위기가 있다.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그 분위기에 끌려, 마치 빛에 이끌리는 곤충처럼 물가로 모여들고 서로 교류한다. 나는 혼자였기에 그 장면 속에 깊이 빠지는 대신 조용히 걸으며 바깥에서 관찰했다.


뚝섬한강공원을 지나 성수동 쪽으로 향할 무렵 하늘은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나는 강변북로의 소음 가득한 대형 도로와 조용하고 광활한 한강 사이에 위태롭게 놓인 보행자 길을 따라 걸었다.


그러다 길을 잘못 들었다. 하나는 넓고 사람들이 자주 다니는 길이었고, 다른 하나는 강에 더 가까우며 낮은 위치에 있고 좁았다. 나는 후자의 길이 제대로 된 보행로일 거라 생각하고 그쪽을 택했다. 그러나 걸으면 걸을수록 길은 더 좁아졌고, 사람들은 사라졌다. 아스팔트는 거친 콘크리트로 바뀌었고,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관리되지 않은 덤불과 나무들로 뒤덮인 강변 가장자리의 작은 땅 위에 있었다. 가로등도 없었다. 나무에 묶인 빨간 리본과 밧줄을 봤을 때 호러 영화의 도입부 주인공이 된듯한 은근한 두려움이 밀려왔다. (실제로는 아마 강 관리용 표식이었을 것이다.)


그 두려움 속에서도 나는 어떤 독특한 감각을 느꼈다. 길이 도로보다 한참 아래에 위치해 있어서 사람들과 차량의 소음은 멀리서 아득히 들려왔다. 대신, 흐르는 강물 소리와 다리 위로 지나가는 차량의 웅웅거림이 선명하게 들렸다. 나는 그 어느 때보다도 가까이서 한강의 본래 모습을 엿보는 기분을 느꼈다. 나는 늘 사물의 가장 본질적인 모습은 대낮의 밝음 속이 아니라 어둠이 깔리기 시작할 무렵에 드러난다고 주장해왔다.


그곳은 도시를 구성하는 거대한 인프라들이 맞물려 겹쳐지는 아주 작은 틈이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도 그 순간은 불편하지 않았다. 오히려 고요한 해방감, 혼자 있음에서 오는 안정감 같은 것이 느껴졌다. 주위에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온전히 나만 존재할 수 있는 드문 순간이었다. 도심에서 단절된 채, 오직 비인간적인 요소들만이 나를 둘러싸는 그곳에 서 있으니 마치 일상이 멀리 밀려난 듯한 감각이 들었다. 잠시나마 그 일상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만 같았다.


누구에게나 이런 장소 하나쯤은 있는 것 같다. 좀처럼 가지 않는 옥상, 동네 언덕의 조용한 전망대 같은 곳 말이다. 이 공간들은 도시와 자연의 경계에 있거나, 일상에서 아주 조금 비켜나 있는 곳들로, 생각을 정리하기에 좋은 여유를 제공한다. 사람의 발걸음이 닿지 않는 곳, 그 안에서 우리는 숨을 고를 수 있다. 수많은 익명의 발자국으로 가득 찬 도시 속에서 말이다.


한강처럼 모두가 개방되고 잘 관리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공간에서도, 이렇게 거칠고 기묘한 경로를 발견했다는 사실은 무척 흥미로웠다. 약간은 으스스했지만, 최근 몇 달 동안 내가 발견한 공간들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장소였다.


첫 번째 공간이 도시로부터의 고립과 고요를 제공했다면, 두 번째 공간은 미묘한 아늑함과 따뜻함을 느끼게 해준 작은 카페였다. 나는 매일 커피를 마시지만, 예쁜 카페를 찾아다니는 스타일은 아니다. 보통은 저렴한 체인점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테이크아웃한다. 얼마 전, 친구가 집중을 위해 카페에서 공부를 하자고 제안해서 기분 전환이 필요했던 차에 냉큼 노트북을 챙겨 따라갔다.


그 카페는 조용한 골목 안쪽에 숨어 있어 그냥 지나치기 쉬운 작은 공간이었다. 대부분의 감성카페라는 곳들이 그러하다. 마치 공간과 숨바꼭질을 하는 기분이다. 하지만 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 작지만 예상치 못한 세계에 들어선 느낌이 들었다. 따뜻한 나무 톤으로 가득 차 있었고, 아기자기하고 개성 있는 가구와 소품들로 꾸며져 있었다.


인상 깊었던 것은 인테리어 자체보다도, 각 테이블이 마치 각자의 작은 아지트를 구성하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테이블들은 모두 다르게 배치되어 있었고, 저마다 다른 시야와 거리감을 가지고 있었다. 마치 각자의 성격이 있는 것처럼, 조용히 자기 자리를 주장하고 있는 듯했다. 그럼에도 카페가 워낙 작아서 원한다면 언제든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눌 수 있을 만큼 가까운 거리감이었다.


마침 그날 친구의 지인이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어서 커튼으로 가려진 테이블에 앉아있던 나에게도 그들의 대화가 들려왔다. 이곳은 학생들에게 일종의 숨겨진 아지트 역할을 한다. 앉아 있으면서 나는 카페의 본래 개념을 떠올렸다. 오늘날 튀르키예로 알려진 지역에서 시작된 커피 문화는 유럽으로 퍼지며 ‘커피하우스’라는 개념을 만들었고, 그곳은 단순히 음료를 마시는 곳이 아니라 시민들이 모여 생각을 나누고 교류하는 장소였다. 이런 공간에서는 단골과 이웃들이 서로의 존재를 인지하며, 묘한 공동체감을 형성하게 된다. 예상치 못한 만남과 대화가 억지스럽지 않게 일어난다. 표준화된 프랜차이즈 카페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풍경이다.


이 작은 카페에서의 경험은 지역 공간의 중요성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다. 도시는 모두를 위한 넓고 열린 공간도 필요하지만, 일상 속에 스며든 작고 개성 있는 장소도 필요하다. 이런 곳들은 지역 사회에 소속감과 주체성을 심어주는 역할을 한다.


하나는 강변, 또 하나는 골목 속. 이 두 공간은 나에게 일상을 잠시 벗어나 도시를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계기를 주었다. 이런 경험들이 조각처럼 쌓여 얽히고, 나만의 도시에 관한 인상을 형성해 간다. 아마 그래서 겉으로 보기에는 비슷한 일상을 살고 있다 해도 같은 도시를 두고 각자가 품는 이미지와 감정은 모두 다른 것일지도 모른다.


작가의 이전글자투리 글: 장소와 정체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