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화 시대 노동자 계층의 주거 문제 해결을 위하여
산업화는 도시를 비약적으로 성장시켰지만 동시에 과밀한 도시에서 어떻게 삶의 질을 유지할 것인지는 해결되지 못한 숙제로 남았다. 도시계획가들은 새롭게 재편된 사회를 효과적으로 담기 위한 제안들을 쏟아냈다. 영국의 이상도시 사례인 포트 선라이트(Port Sunlight)는 이 시대적 과제에 대한 한 자본가의 대답이었다.
이상도시 (ideal city)란, 현실적인 입지 조건을 떠나 이상적인 환경, 형태를 상정한 공상 도시를 말한다. 인류는 다양한 방식으로 완벽한 세계를 꿈꾸고 실현하기 위해 시도해왔다. 유토피아(Utopia)는 그리스어의 'nowhere'을 의미하는 "ou"와 장소를 의미하는 "topas"이 합쳐진 단어로 이상향의 본질적인 속성인 실현 불가능한 성질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 이상을 실현하고자 하는 희망을 동시에 내포하고 있다.
르네상스 이전의 이상도시들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추상적이고 상징적인 유토피아(Utopia)적 도시계획을 추구했다면, 산업혁명 이후 나타난 이상도시 안들은 주로 기존 도시의 과밀화, 산업화, 이로 인한 위생과 환경 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한 보다 현실적인 대안으로 제시되고 발전되기 시작했다. 계몽주의 이후 이상도시는 유토피아적 성격을 가진 중세의 ‘Ideal City’에서 현실적이고 기능주의적인 접근을 바탕으로 한 ‘new town’의 성격으로 변해가는 양상을 보인다. 이 시기의 도시계획에서 나타나는 두드러진 변화 중 하나는 도시 경계의 해체이다. 대부분의 이상도시들은 확장을 염두에 두고 지어졌으며 방어가 아닌 주거와 산업의 목적으로 용도의 전환이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위럴 (Wirral) 반도에 위치한 포트 선라이트 (port sunlight)는 19세기 말 세탁 비누 제조로 큰 부를 얻고 ‘비누왕’이라고 불렸던 윌리엄 헤스케스 레버(William Hesketh Lever, 1851-1925)가 자신의 비누 공장에 노동자들을 수용하기 위해 제안하고 설립한 마을이다. 이 마을은 1888년도부터 계획안이 제시되 었으며 오랜 시간에 걸쳐 이상적 주거 형태로서 계획 및 건설되었다.
공장 고용주가 노동자들을 위해 공장 근처에 집단 주거를 마련하는 계획에 있어 포트 선라이트가 그 최초의 사례인 것은 아니다. 로버트 오웬(Robert Owen)은 1800년 스코트랜드의 New Lanark에 공장과 주거를 결합한 협동마을을 세운 바 있고 솔트 경(Sir Titus Salt)의 면직공장을 중심으로 한 영국의 실험 도시인 솔테어(Saltaire)는 1851년부터 개발되었다. 포트 선라이트와 함께 영국에 잘 알려진 또 하나의 사례는 초콜릿 제조업자인 조지 캐더베리(George Cadbury)에 의해 세워진 버밍햄 외곽의 본빌 (Bournville, 1879년~1895년) 이 있다. 이외에도 이러한 도시 계획은 1800년대를 전후로 영국 전역에서 활발하게 적용되었다.
윌리엄 레버(William Lever)의 비전은 노동자 계급 사람들의 삶을 개혁하는 것이었다. 그는 자사 직원들이 ‘살기 좋고 건강한’ 환경에서 살기를 원했다. 그러나 그는 이것이 자선적인 목적이라기보다는 자신이 ‘번영 공유(prosperity-sharing)라고 부르는 비즈니스 모델의 일부라고 주장했다. 레버는 당시 영국 에 만연한 주거 빈민 문제를 자선으로 해결하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보았다. 그는 ‘번영 공유’와 ‘이익 공유’는 확연히 다른 모델임을 강조하며 전자는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 모두에게 이익이 될 수 있지만 후자는 둘 다 해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르클레르의 이익 공유의 정의를 인용하여 그는 번영 공유를 ‘노동을 위한 그 번영의 공유를 제공하여 또한 자본과 경영의 번영을 확대하기에 충분한 공동의 노력으로 번영을 증가시키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레버는 산업화의 단순한 임금 계약이 아닌 자본, 경영, 노동 간의 더욱 긴밀한 유대 관계가 필요하며, 비즈니스 관계를 사회화·기독교화하여 손 노동(Hand labour)의 시절에 존재했던 긴밀한 가족·형제애로 회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러한 신념에 따라 회사의 이익을 직원들과 직접 공유하는 대신, 그들의 안전하고 평화로운 삶을 보장하기 위한 취지로 적절한 가격의 주택, 편의시설 및 복지를 제공했다. 그의 노동자들은 포트 선라이트에서 생활하며 엄격한 규칙을 따라야 했다. 그는 이러한 접근방식이 미래 세대를 위한 더 나은 건강과 기업을 위한 생산성, 그리고 노동자들의 충성 심과 헌신을 이끌어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레버는 당시 급격한 산업화로 인한 인구 과밀 문제와 그에 따른 노동자들의 열악한 주거 환경에 주목했다. 그에 의하면 당시 리버풀의 가장 밀도 높은 지역에는 1에이커의 공간에 1,000명의 사람들이 모여 사는 경우까지 있었다. 레버는 이러한 주거 문제는 자선으로 해결될 수 없으며 인구 과밀의 근본적인 원인을 알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레버가 주장한 인구 과밀 문제의 주된 원인은 노동자 계층이 거주 가능한 주택을 지을 땅을 얻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그는 해당 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 거주 가능한 집을 지을 수 있는 땅을 임대하여 제공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또한 노동자 계층이 중심부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생활함으로써 중심부의 인구 과밀 문제를 줄이고 임대료 부담을 낮출 수 있다고 주장했다. 더 나아가 그는 지방자치단체가 교외의 토지를 합리적인 가격에 대량으로 취득하고, 이를 가난한 사람들이 주택을 지을 수 있도록 무료로 제공하는 방안까지 제시하기도 했다.
포트 선라이트가 위치한 ‘위럴(Wirral)’은 리버풀(Liverpool) 지역의 일부로, 리버풀은 당시 맨체스터와 더불어 빅토리아 왕조에 들어 급격한 산업화가 이루어졌던 지역이다. 레버는 그의 새로운 공장과 마을을 위해 해당 부지를 선택했는데, 그 이유는 그 부지가 비컨헤드(Birkenhead)의 잠재적인 노동력 공급원과 가까웠고 도로, 철도 및 해상 운송 시설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포트 선라이트 부지는 본래 조수의 유입구가 교차하는 늪지대였다. 이와 더불어 대지 자체가 가지고 있었던 경사도는 해당 부지의 산업적 잠재력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개발을 어렵게 한 요인 중 하나였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레버의 토목 엔지니어링 팀은 현재 Wharf Street에 있는 가장 큰 조수 개울을 댐으로 막고, 도로 아래에 배수로를 건설 하여 고지대에서 물의 방향을 전환시켰다. 이 물은 마을을 통과하여 브롬보로 풀 (Bromborough Pool) 로 흘러 나갔다.
Port sunlight의 배치 계획 또한 초기 안은 윌리엄 레버에 의해 세워졌지만 세부적인 마을 계획은 건축가 윌리엄 오엔(1849-1909)에 의해 다듬어졌다. 윌리엄 오웬은 1889년, 마을의 첫번째 부지 계획을 그렸다. 이 계획은 당시 부지 상태를 보여주고 있는데, 볼턴 로드(Bolton Road)에 표시된 초기 주택과 조수만이 교차하고 있다.
왼쪽 지도는 1902년도의 마을 계획안으로, 부지와 dell 주변으로 슈퍼블록 패턴으로 배열된 주택의 계획 및 개발 방식을 보이고 있다. 최초의 마을 학교이자 교회였던 Lyceum, 강당, 마을 상점, 글래드스톤 홀 등의 다양한 공공건물을 중심으로 계획적으로 디자인된 마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오른쪽에는 공장들과 초기 주택들이 세워져 있으며 이후 점점 주거 단지가 왼쪽으로 확장되어 나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오른쪽 지도는 1914년도의 계획으로, 초기와 비교해서 주거지역이 확장되었으며 마을 중심부에 십자 형태의 축이 형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위 지도는 Ernest Prestwich의 1910년도 계획안으로, 포트 선라이트를 위해 레버가 의뢰한 리버풀 대학교 건축학교가 주최한 디자인 대회에서 우승했다. 이 계획은 보자르 양식(École des Beaux Arts)과 전원 도시(Garden City) 디자인 원칙을 마을에 도입했다. 여기에는 다이아몬드(the diamond)와 코즈웨이(The Causeway)로 불리는 주요 축 계획이 포함되어 있었다. Prestwich는 이러한 디자인 컨셉을 도입하기 위해 기존의 다이아몬드(The Diamond)를 재구성했다.
포트 선라이트 주거단지에서 나타나는 주요한 특징점은 레버와 오웬이 고안한 슈퍼블록(Super Blocks) 형태의 주거 배치이다. 포트 선라이트의 집들이 공공적인 면과 사적인 면을 모두 확실히 가지길 원했다. 이를 위해 공공 정면은 바깥쪽을 향하고 뒤에는 평범한 정면이 밀폐된 마당과 공동 구역 의 내부 안뜰을 향하는 주거 배치 형태를 고안했다. 내부 안뜰은 대부분 사적 공간으로 취급되어, 지나가는 방문객들은 공공의 입면만을 볼 수 있다. 이는 현재 그 크기로 인해 슈퍼블록(Super Blocks)으로 알려진 배치로, 거주자에게 격리감과 밀폐감을 줌으로써 사생활 보호 효과를 높여준다.
포트 선라이트의 또 다른 특징점 중 하나는 넓은 여가 공간과 정원 재배 공간이다. 각 주거용 블록은 앞 마당과 뒷마당을 가지며, 주택으로 둘러싸인 대지를 주말 농장(allotments)으로 두어 적은 임대료로 식 량을 재배할 수 있도록 했다. 이러한 주말 농장은 주거용 블록을 중심으로 총 10개가 계획되었다. 이러한 녹지 공간은 지역사회 구성원들, 특히 아이들에게 친화적인 특성을 드러낸다. 정원은 레버가 커뮤니티 개회 연설에서 아래와 같이 밝혔듯 그의 계획안에서 핵심적인 부분을 차지한다.
“…Semi-detached houses, with gardens back and front, in which they will be able to know more about the science of life than they can in a back slum, and in which they will learn that there is more enjoyment in life than in the mere going to and returning from work, and looking forward to Saturday night to draw their wages.” (Lever quoted in Edwards 1888, pp. 28-29)
레버는 자연환경과 강력한 공동체, 그리고 자본주의 사회의 건강 사이의 강한 연관성을 믿었기 때문에 녹지 공간에 많은 공을 기울였다. 여가 공간은 주거 커뮤니티에서 분리되지 않고 밀접하게 엮여 있다. 오락을 위한 공간으로는 축구장과 크리켓 경기장, 테니스 잔디, 볼링장, 체육관과 야외 수영장 등이 포함되었다. 특히 사회적 통합을 위해 모든 수준의 직원들이 만나고 어울릴 수 있는 클럽도 있었다. 다이아몬드와 코즈웨이는 서로 교차하는 대규모 대로 축으로, 그 중앙에 전쟁기념관과 갤러리가 위치하고 있다. 이 대칭축이 형성하는 인상적인 풍경은 또다른 마을의 대표적인 이미지인 델(the dell)의 비 대칭성과 대비되는 시각적 특성을 드러내고 있다.
“Art and the Beautiful unconsciously create an atmosphere in which happiness and the virtues grow and flourish.” (Lever, Art and beauty and the city, 1915, p. 6)
위의 인용문에서 알 수 있듯 레버는 예술과 미학이 유덕한 삶을 위한 환경을 조성하는 데 있어 매우 중 요한 역할을 한다고 믿었다. 그는 디자인 측면에서 모든 집과 공간이 똑같아 보이기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30여명의 다른 건축가를 고용하여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포트선라이트에서 공공 및 주거용 건축 공간은 독특한 영국 지역 토착 양식으로 정의된다. 건물에 참여한 건축가들은 새로운 교외 지역 사회를 위해 시대를 초월한 현지 마을 감성을 만들어냈다. 16 레버는 예술과 공예의 현지 스타일과 그림 같은 풍경을 통해 사람들이 행복하고 도덕적이며 자본주의의 가치를 이해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할 것이라고 믿었다. 포트 선라이트의 건물들은 서로 다른 디자인과 재료를 적용했는데, 이는 서서히 자연적으로 발전한 마을의 인상을 주기 위해서였다. 마을의 건축물에서는 조지아 스타일을 제외한 영국에서 부흥한 모든 건 축 스타일을 볼 수 있다. 레버는 이러한 전략을 통해 마을이 공장 옆에 단시간에 세워진 인공적인 주거지 라는 느낌을 피하고자 했다. 특히 포트 선라이트의 건축물들은 전통 공예를 강조하는 예술과 공예 운동 의 좋은 예이다.
포트선라이트의 비주거용 건물 중 대표적인 건축물 중 하나인 레이디 레버 기념관(Lady Lever Memorial, 1914)은 고전주의 양식으로 지어졌다. 이 갤러리는 마을 중앙의 대규모 대로와 이어지며 다이아몬드 축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다. 전통적인 현지 재료로 지어진 마을의 다른 공간과 달리 석회암으로 덮여있는 갤러리 건물은 과감한 느낌을 준다. 레버는 예술과 좋은 디자인이 일상생활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으며, 마을 곳 곳의 건물뿐만 아니라 조경, 조각품 등에도 공을 들였다.
포트 선라이트는 영국 초기 도시 계획의 훌륭한 보존 사례 중 하나이며, 1888년 윌리엄 레버에 의해 설립된 이래로 대부분 초기 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는 점에서 도시계획의 사례로서의 주목 가치가 있다. 포트 선라이트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개방된 상태로 기업 유니레버(Unilever)의 본거지 역할을 수행하며 주민과 관광객을 수용하고 있다. 2000년대 들어서도 주민들을 수용하기 위한 주거 단지가 새롭게 지어졌다.
포트 선라이트는 고용주가 공장 노동자들을 위한 집단 주거 형태를 제공한다는 다소 계몽주의와 사회주의적 이념이 혼합된 도시 계획 사례로 여겨진다. 이와 더불어 마을 곳곳에 반영된 교외의 아름답고 이상적인 주택에 대한 동경은 빅토리아 시대의 도시계획의 두 가지 측면을 흥미롭게 보여준다. 포트 선라이트가 현재까지 유명한 이유 중 하나는 효율성과 생산성만을 중요시했던 당시의 공장도시들과 달리 주택을 포함한 마을의 모든 건축물들이 미적으로 섬세하게 고려되어 지어졌다는 것이다. 포트 선라이트가 수용한 예술공예운동은 산업화로부터 어느 정도 완화되는 시각적 이데올로기를 제공하는 한편, 1910년대 이후 도입된 보자르 미학은 기업 자본주의와 자유주의와의 포용을 제시하고 있다.
포트 선라이트의 사례는 동시대 공장 도시들 중에서 실질적인 성공을 거둔 사례로 평가받았으며 이후 전원도시 운동에 주요한 영향을 미쳤다. 전원도시 이론을 주창한 에베네저 하워드(Sir Ebenezer Howard)는 포트 선라이트를 ‘특출한 발전’으로 여겼다. 그의 전원 도시는 레버의 온정주의적인 경영 형 태를 따르지는 않았지만, 그 이상화된 계획과 디자인에 영향을 받았다. 직원들에게 좋은 생활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 기업의 미래 성장을 위한 건전한 투자라는 점에 냉소적으로 생각하기 쉽고 레버의 온정주의적 태도를 비판할 수도 있지만 그의 계획에는 분명 이상주의적인 요소가 존재했다. 포트 선라이트는 빅토리아 왕조의 기업가들이 공유하고 있던 사회적 책임감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로 손꼽힌다.
그러나 한편, 포트 선라이트를 계획한 레버 가문이 미친 사회적 영향력을 논할 때, 레버의 사회적 책임감은 자국민에 한정되어 있었음을 간과하고 넘어갈 수 없다. 1900년대에 접어들 면서부터, 윌리엄 레버는 비누 제조 사업을 위한 재료들을 값싸게 조달하기 위해 솔로몬 제도와 옛 벨기 에령 콩고를 포함하는 장소들에 농장을 경영하기 시작했다. 해당 농장들에서는 콩고 인을 상대로 강제 노 동과 인종 폭력이 행해졌다. 콩고 선교사들과 의사, 정치인들의 반대 농성에도 불구하고 레버 농장은 1960년대까지 운영되었다. 노동자들의 삶을 향상시키고자 했던 그의 노력과 식민지 국가에서 자행된 만행 사이의 아이러니는 레버의 경우뿐만 아니라 당시 제국주의의 수혜를 누렸던 기업들 모두 공유하는 과거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