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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의투영 Oct 01. 2024

나에 삶의 조각들

52.  진안 나들이

 비닐하우스 천장을 뚫고 나갈 기세로 자라 버린 나무들을 바라보며 게을렀던 나를 반성한다.

여름의 열기에 두 손을 들어 버린 나. 식물도 사람처럼 잘 돌봐 주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지만 반쯤 포기해 버린 상태가 맞다. 스위치만 올리면 물은 자동으로 들어간다. 열대 나무들은 성장세가 무섭다.

1년에 4번 정도 톱과 전정가위를 들고 키를 낮추어 주어야 한다. 도장지도 얼마나 잘 자라는지 본 가지를 능가한다. 전동 가위로 손을 한번 잘리고 나니 가위를 들 때마다 등줄기가 서늘한 느낌이 난다.

나의 주무대였던 곳이지만 이제 남편이 주도해 간다.

나의 눈치를 봐가면 "이건 얼마나 자를까?" 질문을 하기도 하고 나름 유튜브나 책을 보고 공부를 했다며 어깨에 힘이 들어가있다.

200평 빼곡히 채워진 나의 하우스정원. 두 줄로 심어진 나무들. 씨앗 발아부터 시작해서 인지 잎만 봐도 어떤 나무인지 알 수 있다. 비슷해 보이지만 각자의 특색이 있다. 목대의 무늬와 나무에서 나는 향기 잎의 두께와 크기 등등. 남편은 그런 내가 신기한 것 같다.

취미에서 시작해서 이제는 일이 되어 버렸지만 키워서 먹어 보고 싶었던 나의 욕심이다.


 5 연동 하우스 안에 기생하고 있는 셈이다. 주 작물이라고 할 수 없으니 병충해 방제를 할 때 남편의 눈치가 보인다. 이 나무들이 잘 자라서 좋은 결과를 안겨 주면 좋겠다.

남편과 나는 50살이 되면 하고 싶은 것이  생겼다. 그래서 이 나무들은 준비된 30%라고 볼 수 있다.

이미 시작은 했지만 차차 완성이 되어가는 프로젝트 같은 것이다.

전정을 해야 다음 작기가 준비가 될 것 같아서 방제도 할 겸 정리가 필요했다.

두 줄로 심어진 나무들을 기점으로 반으로 나누어 전정을 시작했다. 나무의 목대가 더 굻어지고 제법 많이 자라서 가위로 자를 수가 없게 되었다.  톱질을 해야 하는 나무가 태반이었지만 무신경했던 3개월 동안 나름 잘 자라 주웠다. 반을 정리했는데 하루가 지나가고 있었다. 잘린 나무 가지들로 길도 없어졌다.

오늘은 여기까지라고 외치며 다음 날을 기약했다.

나무 파쇄기를 농기구 임대 사업소에서 빌려 와야 다음 작업이 진행된다. 하나 살까 고민도 잠깐 해봤다.

1년에 고작 4번 쓰자고 사기는 가격이 사악하다. 기계는 관리를 잘해야 하기 때문에  빌려 쓰는 것으로도 충분하다는 결론이다. 임대 사업소도  걸어서 2분밖에 안 걸린다.


일이 끝날 무렵 엄마께 전화가 왔다.

"딸 내일 많이 바빠?"

"그리 바쁜 건 없어요. 어디 가시게요?"

"안과에 가보려고 하는데 같이 가줄 거야?"

"예약은 했어요? 어느 병원인데요?"

"좀 멀어."

"좀 있다가 작은 아이 학원 태워주고 집으로 갈게요."

전화 통화를 끝내고 먼지와 땀범벅이 되어 버린 몰골에 웃음이 나왔다.  많은 비가 내려 더위는 한 풀 꺾였지만 하우스 안에서 움직이면 머리에서 비가 오는 것 같다.

샤워를 마치고 나니 한결 개운한 기분이 들었다. 침대가 보인다. 눕고 싶지만 때 마침 울리는 알람.

작은 아이 하교 마중 갈 시간이다.

아이를 학원에 보내 놓고 엄마 댁에 가면 1시간 반정도는 쉴 수 있다.


친척 언니 소개로 진안에 있는 안과에 다녀왔던 엄마는 효과가 좋았던 모양이다. 3번만 치료하면 안경 벗을 수 있다며 가야겠다고 하신다. 뭘 얼마나 잘할까 싶어. 검색을 했다.

생각보다 꽤 유명한 병원이었다. 전국 팔도에서 온단다. 눈청소로 유명한 안과.

예약도 받지 않고 사람도 많아서 대기시간이 길다고 했다. 2시간 가까이 운전해서 가야 했다.

아마 가까웠으면 엄마께서 운전해서 가셨을 것 같다. 아버지도 함께 가신다고 하니 운전기사 당첨이다.

남편에게 아이들 등교를 맡겼다. 일찍 출발해야 오전 중에 진료를 볼 수 있을 것 같아서.


5시에 일어나서 아이들이 먹을 아침을 준비했다. 미역국을 끓여 놓고 등교 준비도 해두었다.

엄마집에 6시 10분에 도착했다. 아직 잠 옷 차람의 두 분.  아침 먹고 가자며 늦장을 부리시는 바람에

7시가 넘어서 출발을 했다. 초행길이라서 긴장이 되긴 했다.

9시에 겨우 도착해서 접수를 했다. 11시 반에 진료를 받을 수 있다고 했다.  8시부터 진료를 시작하는데 6시 반부터 줄을 선다고 했다. 끊임없이 밀려 들어오는 사람들에 유명세를 실감할 수 있었다.

작은 병원은 환자들로 넘쳐 났다. 다리가 불편한 아버지는 대기 실에서 사람 구경하면 기다리시고 엄마와 나는 근처를 돌아다니면 구경해 보려고 길을 나섰다.

진안에는 마이산이 유명하지만 시내는  내가 사는 곳과 별반 다른지 않았다.

병원 때문에 상권이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카페가 특히 많았다. 엄마는 따뜻한 사과유자차를 나는 딸기우유를 주문했다.  시장도 있고 낮은 산에 정자가 보여서 가보기로 했다.

딱히 갈 곳에 없어서 정자에 앉아서 시간을 보냈다. 선선해진 날씨에 따뜻한 차가 어울렸다.

오랜만에 여유롭게 엄마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10시 반쯤 다시 병원으로 돌아왔다. 아버지의 하얀 중절모가 눈에 들어온다. 많이 지루해 보이는 아버지 TV도 재미가 없다고 하신다.

안에 자리가 없어  복도에서 기다리며 진안 맛집을 검색했다. 진료를 마치고 나오면 12시가 넘을 것 같아서

기왕 멀리 온 김에 마이산도 가보고 싶었다. 차 타고 15분만 가면 된다.


11시 45분에 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 엄마는 눈이 개운하다고 하고 아버지는 눈이 더 아픈 거 같다고 하셨다.

눈물샘 분비물을 짜냈다고 한다.  

연두부 정식이 맛집으로 유명한 것 같아 먹으러 갔는데 주차장에 차가 없다.

이상해서 확인해 보니 쉬는 날이었다. 수요일에 쉬는 가게가 있다니..  다시 검색해 마이산 근처에 흑대지 주물럭을 먹으러 갔다. 묘하게 친절한 듯 불 친절한 사장님.  사람이 셋인데 호박죽을 달랑 한 그릇을 준다. 더 줄 수 있냐고 물어봤더니 안 먹으면 버리니까 말을 하면 준다고 투명스럽게 말을 했다.

나만 그런가 했는데 오시는 손님 모두 똑같다.

밑반찬은 나쁘지 않았지만 뭔가 심심하다. 주물럭은 먹을만했다.

가까이 온 김에 마이산 탑사까지 가보자고 했다.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걸어가는 동안 음식점들이 많이 보였는다. 여기가 더 맛있어 보였다. 여기서 먹을 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갓 만든 뻥튀기도 나누어 줘서 먹으면서 걸었다. 굽이 굽이 돌아가는 길은 포장이 잘 되어 있어 위험하지는 않았지만 가까울 거라고 생각했던 나의 기대는 무너졌다. 날씨가 선선해져 걷기가 좋다고 하지만  풍경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가도 가도 보이지 않는 탑사.  매일 하루에 2번 한 시간씩 걷는 운동을 하시는 아버지지만 많이 힘들어 보였다. 등산 스틱을 짚어가며 걸으시는데 걸음걸이는 엄청 빨라서 쫓아가는 내내 숨이 차는 같았다. 쉬었다 걷고 쉬었다 걷고를 반복하다. 천천히 가자고 해도 운동하면서 든 버릇이 안 고쳐진다고 했다. 한 시간 만에 탑사에 도착했다.

돌탑이 많은 작은 절. 달력에서 나올 법한 풍경이었다. 마이산은 멀리서 볼 때와 다른 느낌이었다.

TV에서 많이 봤다면 아버지의 설명을 들으면서 구경하니까 더 좋았다.

고생은 했지만 셋이서  외출한 건 오랜만이 여서 기념으로 사진도 남겼다.

아버지께서 아이크림을 사주셔서 맛있게 먹었다. 돌아오는 길은 더 빨리 도착한 기분이 든다.

기력이 많이 세약해진 아버지의 뒷모습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소녀 같은 엄마는 꽃을 보고 감상에 빠져 계셨다. 오래간만에 이런 시간도 괜찮은 거 같다.

얼마나 더 함께 이런 시간을 보 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지금 이 순간이 너무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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