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가 있는 글쓰기

6. 외로움에 관하여.

by 빛의투영

안개가 자욱한 아침. 가을 끝자락에 와있는 것 같다. 출근길 안개가 끼면 시야가 흐리긴 하지만 노란 은행나무 길을 지나가니 몽한적인 기분이 든다.

길게 늘어선 차들을 따라 앞으로 앞으로 교통체증마저도 이 풍경을 오래 볼 수 있어서 좋다.

버스가 지나가고 은행 잎이 우수수 떨어진다. 바람에 여기저기 날리는 모습이 영화의 한 장면 같다.

새벽에 일어나 사진을 찍어야지 생각만 하다가 이제 나뭇잎이 몇 장 남지 않았다.

이제 가을도 지나간다. 오이맛고추 물량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바빠지는 시기가 왔다.

몸은 고달프더라도 행복한 비명을 내지르고 싶다.


11월도 이제 한주가 남았다. 무슨 시간이 이리도 빨리 지나가는 건지.

넷째 주 토요일도 금방 다가왔다. 요즘 일하고 자투리 시간에는 그림을 그리다 보니 글을 쓰지 못했다.

미루고 미루다 보니 숙제가 되어 버렸다.

이 번 달의 주제는 외로움에 관련된 어떤 것도 좋다고 했다.

외로움이라.. 어느 날 문득 찾아오는 친구 같은 것일까?


주제: 누구나 외로움은 있다.


뜨겁고 무더웠던 여름을 잊은 지 오래다. 떨어지는 낙엽들을 보면서 올 해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느낀다.

쉼 없이 달려왔던 2024년 나는 목표한 바에 도달하지 못했다.

열심히 달렸는데 제자리걸음 같았다. 하반기를 시작하면서 이대로 무너지면 안 된다는 생각뿐이었다.

하고 싶은 것은 많고 욕심은 크고 호주머니는 비었다.


농사라는 것은 하면 할수록 더 어려워지는 것 같다.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병충해도 내성이 생기는 건지 더 진화했다. 친환경약은 잘 듣지도 않는다. 소비자들은 무농약에 깨끗한 농산물을 원한다. 여름에 노지에서 생산되는 농산물들은 약을 안치면 내가 먹을 것도 없다는 말이 있다.

끝없는 병충해와의 전쟁. 날씨의 변덕. 소비자들의 요구 점점 지쳐가는 것 같다.

작년에는 피해규모가 많아서 지원을 해준다며 신청을 하라는데 기껏해야 약값 정도다.

제출해야 하는 서류는 산더미고 피해 사실을 증명해야 했다.

비가 많이 내려서 성장이 더디고 열매의 수정은 불량했다. 잎은 습해서 생긴 균들로 점무늬가 생겼다.

보고만 있어도 땅이 꺼지도록 한숨이 나왔다.

우울한 기분이 스멀스멀 뿜어져 나온다. 포기를 해야 하나 좀 더 기다려봐야 하나 기로에 서 선택을 망설였다.


남편과 나는 많은 고심 끝에 무농약 농사를 포기하기로 했다.

8년간의 노력이 물거품이 되는 것 같아서 참 씁쓸하고 눈물이 났지만 완전히 포기하는 것은 아니라는 전제를 달아 두었다. 요즘은 농약도 분해가 잘되고 예전만큼 독하지 않다. 저 농약으로 방향을 잡기는 했지만 아직 버릇이 안 버려진다. 기한을 잘 지켜야 해서 꼼꼼히 농약이 분해되는 기간을 잘 지켜서 농작물을 수확했다.

한 종류만 쓰면 내성이 생기기 때문에 친환경 약도 가끔 쓴다. 비용차이가 많이 난다.

수확이 즐거워야 하는데 특상품에 비해 B품들이 많이 나와서 서글펐다.

계약된 업체에서는 특상품만 가져갔다. 650평에서 겨우 건진 10박스 이내의 농산물만..

B 품은 경매로 보내면 바닥을 기고 있다. 헛웃음만 나온다. 수급하는 사람 경매사 비용을 제외하면 박스 값만 겨우 건진 셈이다. 내 인건비는 바랄 수도 없었다.


갈아엎어버리고 땅관리 후 다시 시작된 농사.

출발부터 삐그덕 하는 느낌이었다. 육묘장에서 온 모종들은 볼품이 없었다. 뜨거운 여름을 겨우 버텨내서

살아남은 녀석들 같은. 대부분 다 그렇다고 하는데 화를 낼 수도 반품할 수도 없다.

절망의 액셀을 밟을 준비를 하는 기분이 들어서 마음이 착잡했지만 계획의 오차를 줄이기 위해서 눈을 질끈 감아야 했다. 토경 재배라서 땅관리만 잘하면 어느 정도의 오차는 무마할 수도 있다.

작기가 끝나고 품종을 선택할 때 늘 도박하는 기분이 든다. 계속하던걸 할지 새로운 도전을 해볼지.

올해는 어떤 품종이 많이 심길지.. 품질로 경재을 해야 하는 나의 농산물.


해가 갈수록 더 많은 데이터들이 쌓여 변수에 미리 대응책을 준비해도 시련은 있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순조롭게 가고 있는 것 같다. 모종의 첫인상을 잊을 만큼 성장해 열매를 주렁주렁 달고

있다. 합리적이고 안정적인 가격으로 소비자와 만났으면 좋겠다.


농사지으면 아무 걱정 없어서 좋겠다는 누군가의 말이 생각났다.

직장 상사가 잔소리를 하나 눈치를 안 봐도 되고 너는 정말 좋겠다고.

네가 해봐라 농사가 그리 만만한지.. 쓴웃음만 나온다.


세상은 그리 만만하지가 않다.



컴퓨터 고장으로 쓰던 도중에 날아가서 이제야 11월 글을 완성했다.




매거진의 이전글주제가 있는 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