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가 있는 글쓰기

7. 겨울

by 빛의투영

세상이 멈춰 버린 것 같았던 날들이 얼마 지나지 않았다. 정상 회복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의 덕에 다시 연말 분위기로 돌아왔다. 뉴스에서 들려오는 소식에 속이 시끄럽지만 묵묵히 제자리를 지키는 사람들.

이 평화가 계속되기를 바란다.


너무 오랜만에 컴퓨터 앞에 앉은 기분이 든다. 벌써 겨울이 되었다. 크리스마스도 코 앞으로 다가왔다.

일과 그림에 몰두하다 보니 글 쓰기 모임에 제출할 과제를 하기 위해서 컴퓨터를 켠 꼴이 되었다.

잘 쓰지는 못해도 내가 좋아하는 글쓰기가 뒷전으로 밀려났다.

늦게 배운 도둑질이 날 세는 줄 모른다 더니 그림이 내게 그랬다. 복잡한 심경을 잊게 해 주고 잠시 여유가 생기면 그림을 그렸다.

일이 끝나면 학원서 아이들을 픽업해서 집으로 출근을 한다. 세탁기 돌리고 아침에 급하게 나가느라 하지 못한 설거지하고 밥을 한다. 요즘은 큰 아이가 청소기를 돌려줘서 조금 편해졌다.

작은 아이는 식탁 차리는 것을 도와준다. 혼자 동동 거리면서 했던 일이었는데 기특하다.

자투리 시간에는 스케치를 하고 일이 일찍 끝나는 날에는 채색을 했다.

요즘 즐거운 나의 취미가 되어 주고 있다.

벌써 12월이다. 올해도 얼마 남지 않았다. 잘 마무리하면 좋겠다.

12월의 주제는 겨울이다. 겨울에 관련된 이야기.


주제: 이런 나라도 도움이 될까?


추워진 날씨만큼 사람을 움츠러들게 하는 것이 있다. 겉으로 보면 알 수 없는 것 들.

아이와 재활치료를 다닌 지 10년 차다. 여기 센터에 터줏대감이라고 할 수 있다.

대기실에서 아이의 수업이 끝나기를 기다리면서 치료사 선생님들의 수업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텐션이 좋은 선생님, 차근차근 아이를 어르고 달래는 선생님, 아이의 말을 잘 들어주는 선생님등 다양하다.

선생님들이 몇 년에 한 번씩 바뀌곤 했다.

대기실에서 앉아 있다 보면 비교 아닌 비교를 하게 된다.

저 선생님은 초보 시구나 저 선생님은 베테랑. 뭐 이런 식으로 말이다.

작은 아이는 미술재활 선생님과 6년 수업했고 언어재활 선생님과는 3년 수업을 했다.

일주일에 한 번 간다. 피드백 시간엔 일주일 동안의 안부도 묻고 이런저런 이야기도 하고 친구 같은 느낌이 든다. 때로는 공동 양육자 중 한 사람 같은 느낌이다.

아이들과 가본 곳 중 괜찮았던 곳을 추천해주기도 하고 생활의 일부를 공유한다.

언어 재활 선생님의 남편은 직업 군인이었는데 다른 곳으로 발령을 받아서 서산으로 가게 되었다.

정들자 이별이라 더니.. 이별의 말도 전하지 못했다. 열심히 연습해서 그림을 하나 선물 해줘야겠다.


이번에 새로 아이를 맡게 된 언어재활 선생님은 대기실에서 들었을 때 텐션이 젤 좋았던 분이었다.

소리에 민감한 작은 아이와 잘 맞을까? 걱정을 했었다.

생각과 달리 아이의 성향에 맞게 잘 맞춰주셔서 작은 아이는 편안해 보였다. 피드백 시간에 마스크를 하고 계셔서 얼굴을 잘 보지는 못했지만 아이가 사랑 많이 받고 자란 티가나서 사랑스럽다고 말을 했다.

그게 보이는 구나. 잠시 울컥 해졌었다. 본의 아니게 내 아이 자랑 시간이 되었다.

그래 사람은 겪어 봐야 아는 거다. 내가 너무 성급했구나 하는 생각에 미안해졌다.


두 번째 수업을 하고 피드백을 하다가 내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많은 식물을 키우고 있고 그 시작이 내 우울증이었고 극복에 도움이 되었다는 이야기.

사연 없는 사람은 없다. 사실은 우울증을 앓아서 2년 동안 약을 복용했고 약을 안 먹은 지 한 달이 되었단다.

다시 불안해지고 있다고 했다. 나는 눈물이 날 것 같아서 선생님을 똑바로 보지 못했다.

텐션을 내려고 애썼던 선생님을 감싸고 있는 시린 겨울이 보였다. 나도 우울증을 앓았다. 벗어나는데 5년이나

걸렸다. 이건 완치라는 것이 없다. 또다시 찾아올 수 있다는 거.

그래도 멘털이 강한 건지 이를 악물고 버터 냈다. 약에 의지하다 보면 나약해질까 봐 먹지 않았다.

시댁에서 이상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것도 싫었다. 작은 아이가 장애판정을 받았을 때.

시아버님이 내게 하신 말씀은 가슴 깊이 비수로 남아서 꽂혀있다. 나쁜 사람은 아니지만 술이 문제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내가 싫었던 순간, 사람이 싫어지던 순간, 내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느꼈던 순간들, 꼭꼭 숨어 버리고 싶은 순간들이 있었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힘들어 무너져 내리던 순간까지도..

나는 과거가 없는 사람처럼 앞만 보고 달렸다. 바로 코 앞만. 바로 내일도 어찌 될지 모르는데 미래까지 걱정하지 말자 생각했었다. 노력하는 만큼 결과도 좋았다. 주식처럼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도 있다.

이제는 그 시기가 왔구나 하게 되었다.


내 이야기에 선생님은 눈물을 보이셨다. 나는 그 마음을 아니까.. 아프게 느껴졌다.

아들을 키운다고 했다. 짐작이지만 그 아이도 손길이 많이 필요하다는 것을..

시간이 약이다라는 말은 믿지 않는다. 노력하지 않으면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다.

선생님도 힘든 시간을 버티고 있었다. 일주일에 2번 출근을 하신다고 했다.

그것마저도 쉴까 하는 생각이 드신다고.. 나는 선생님을 도와주고 싶었다. 무엇을 해 줄 수 있을까?

갑자기 훅 다가가도 될까?

피드백 시간이 길어졌다고 사과를 하셨다. 괜찮다고 말씀을 드리며

"자기 자신보다 소중한 건 세상에 없어요. "

"힘들면 잠시 귀를 닫아도 돼요."라는 말을 했다. 꼭 잊지 말라는 말도 덧 붙였다.

"식물을 키우면 괜찮아 지나요?"라는 질문을 하셨다.

"자기가 좋아하는 걸 찾아요. 그걸 하면 도움이 되긴 해요."

"제가 비용을 드려야 할 것 같네요."라고 하셔서 둘이서 웃었다.


운전을 해서 돌아오는 길에 지나간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내가 잘 살아 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목요일 언어재활 피드백 시간. 내가 선생님께 어떤 도움을 드릴 수 있을까? 고민을 해봐야 할 것 같다.

북카페에서 1인 강연자를 모집할 때 신청을 했다가 보류했다.

세상에 나보다 잘란 사람들이 넘쳐 나는데 내 이야기를 듣고 싶을까? 싶어서.

그때는 장애 아이 엄마로서의 나와 사춘기 없이 사춘기가 지나가고 있는 아이 이야기를 해보려고 했다.


지금은 우울증을 앓았고 이겨 내고 있는 내 이야기를 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다시 도전을 해볼까? 모인 사람들과 소통하며 한바탕 울어 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해서.

선생님도 초대해 같이 울자고 말이다.


그래서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몰라서 책을 사서 읽기 시작했다. 우울증 증상과 주위 사람이 어떻게 해주면

되는지 등에 관해서 그리고 우울증 극복 사례들까지도.


내가 잘해 낼지 자신은 없지만 그래도 용기를 내보면 시린 겨울도 따뜻해지지 않을까 해서..

이런 나라도 도움이 될 수만 있다면 좋겠다.


선생님께.. 선물하고 싶어서 그림도 그리고 글도 써보려고 그림 노트 작은 걸 샀다.

해 줄 수 있는 게 없어서..


올 겨울 모두가 따뜻하게 보냈으면 좋겠다.


매거진의 이전글주제가 있는 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