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단톡방을 둘러싼 싸움

여의도에서만 파벌 싸움이 벌어지는게 아니다.

by 고도

아파트에서 최근 일어난 갈등을, 기억이 흐릿해지기 전에 한 번 정리해 두려 한다. 여기 언급된 아이디는 실제 아이디는 아닌 가명으로 사용했음을 알려둔다. 나는 원래 이런 종류의 ‘동네 분쟁’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 사람이다. 그런데도 이번 일은 이상할 만큼 마음에 걸렸다. 단톡방 하나를 두고, 사람들이 순식간에 편을 갈랐고, 절차와 권한과 감정이 뒤엉켜 결국 입대위가 와해되는 데까지 갔다. 소란은 사소해 보였지만, 구조는 결코 사소하지 않았다.


1. 갈등의 씨앗은 ‘입주 전’에 있었다

시작은 입주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우리 아파트에는 ‘입주자 소통방’이 있었다. 최초로 만들어진 카카오톡방이었다. 내가 어떻게 들어갔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오픈카톡에서 검색해 들어갔고, 카페 가입 후 비밀번호를 받는 방식이었던 것 같다.

당시 사람들은 거의 모두 그 방으로 모였다. 편의상 이 방을 '1단지 카톡방'이라 부르겠다. 방장은 '미유'라는 아이디를 가진 사람이었고, 훗날 초대 입대위 회장이 된다.

입주가 가까워지자 공지성 글이 필요해졌다. 대출 같은 일정이 촘촘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입주를 앞둔 설렘 때문에 잡담이 넘쳐났고, 중요한 정보가 계속 밀려 올라갔다. 자연스럽게 “잡담을 자제해 달라”는 분위기가 생겼던 것으로 기억한다.

여기서 욕구가 갈라졌다.

“그래도 입주민끼리 친하게 지내야지”라는 쪽

“지금은 공지가 우선이고, 1단지 방은 1단지 중심으로 가야 한다”는 쪽

그리고 이 의견 충돌이 결국 파벌을 만들었다. 불만을 품은 사람들은 1단지 카톡방을 탈퇴하고, 1·2단지 통합방인 '친목방'을 만들었다. 두 방에 동시에 속한 사람도 많았지만, 친목방의 방장과 주요 인물들은 1단지 카톡방을 나갔다.

나는 이 부분이 중요하다고 본다. 지금 벌어진 일의 많은 부분이, 이미 그때 만들어진 감정의 골 위에서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입주 전의 설렘과, 대출 등 현실 문제의 스트레스가 공존하던 시기였다. 두 욕구가 서로를 밀어냈고, 그때 생긴 균열이 그대로 남았다.


2. 1기에서 2기로 넘어가며 판이 뒤집혔다

입주가 끝난 후 1기 입대위 선거에서 '미유'를 비롯한 1단지 카톡방 주요 인물들이 회장과 동대표가 되었다. 미유는 입주 정보를 빠르게 공유했고, 대출 관련 고민에도 도움을 많이 줬다. 신망이 두터웠고 특별히 문제 될 것이 없었다. 모두가 인정하는 분위기였다.

문제는 2기 입대위 선거에서 발생했다.

친목방 사람들이 대거 동대표로 당선되었고, 회장 선거에서는 친목방 방장 '비주얼'과 1단지 카톡방의 다음 방장이었던 '카리스마'가 맞붙었다. 근소한 차이로 비주얼이 회장이 되었고, 카리스마는 동대표로 남았다.

이때부터 갈등은 ‘과거의 균열’이 아니라 ‘현재의 전선’이 된다.


3. “폐쇄”라는 단어가 불씨가 되었다

2기 입대위는 출범 직후 1단지 카톡방 및 카페 폐쇄를 추진했다. 1단지 카톡방이 오픈카톡방으로 시작되었기에, 실제 입주민이 아닌 사람들의 유입을 막아야 한다는 명분이 있었다.

카페를 통해 입주민 인증을 요구했고, 개인정보를 적어야 했다. 당시 입주민인지 의심받는 사람이 몇몇 있었고, 특히 '연못뷰'라는 아이디가 기억에 남는다. "분탕질하러 온 사람이 있다"는 의견도 많았다. 분위기상 개인정보 요구는 나름 정당성을 얻었다.

그리고 여기엔 또 다른 맥락이 있다. 지금은 사퇴 의사를 밝힌 2기 동대표 '커뮤'의 말에 따르면, 1기에서 2기로 인수인계되는 과정에서 '미유'와 '관리소장님'이 개인정보 관리 부담 때문에 1단지 카톡방 폭파 및 카페 폐쇄를 원했다고 한다. 그 요청을 2기가 떠안았다는 이야기다.

이 설명대로라면 2기 입대위가 폐쇄를 추진한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다만 이제 와서 아쉬운 점이 있다. 이 일은 2기가 추진하기엔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 반대로 미유라면 훨씬 자연스럽게 처리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 '어려운 일을 2기에 넘긴 순간' 갈등은 크게 촉발되었다.


4. 절차는 있었지만, 권한은 없었다

입대위 결의는 이렇게 내려졌다. (카리스마의 설명에 따르면) 동대표 6명 중 찬성 4, 반대 1로 폐쇄가 통과되었다.

하지만 1단지 카톡방 초기부터 주요 역할을 했던 카리스마는 동의할 수 없었다. 친목방 출신 동대표들이 많아졌다는 사실 자체를, 카리스마는 일종의 '폭정'으로 받아들였던 것처럼 보인다. 결국 카리스마는 동대표를 사임했다.

동대표를 그만두고 개인이 되었으니, 입대위 결정을 따르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고 현실적으로는 맞는 면이 있었다. 실제 방장 권한을 가진 사람이 반대하면, 결의는 종이에 적힌 글자로 남을 뿐이다.

2기 입대위는 카리스마와 협의할 수밖에 없었고, 카리스마가 제안한 2가지 안과 입대위 입장 1안을 더해 총 3안이 제시되었다.

1안) 1단지 카톡방 및 2기방 모두 유지 (카리스마 제안)

2안) 1단지 카톡방 및 2기방 모두 폭파 후 신설 (카리스마 제안)

3안) 1단지 카톡방 폐쇄 및 입장자 전원을 2기방으로 이동 (2기 입대위 안)

여기서 시점이 헷갈리는 부분이 있다. 카리스마가 사임한 직후, 몇몇 동대표들이 사임을 시간차이를 두고 사임을 하였고, 그 이후 회장인 비주얼 역시 자진사임을 하게된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회장의 독단적인 의사결정 방식에 불만을 품은 동대표들이 자진 사임하였고, 이러한 어려움에 비주얼까지 사임을 한것이라 한다. 어쨌든 그 후, 공석을 채우기 위한 선거가 다시 열렸고, 여기서 공교롭게도 카리스마가 회장에 당선되었다. 어쨌든 3개 안이 구체화 된 시점이 언제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아마 '자연인'일 때였을 것 같다.

어쨌든 카리스마는 3안에 대해 "입대위가 강제할 권한이 없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나는 이 지적이 합리적이라고 본다.

1단지 카톡방은 590명이다. 2기방은 200명 남짓이 옮겨온 상태였다. 나머지 390명은 아마 별 관심이 없는 사람들일 것이다. 입주 시기를 제외하면 아파트 대소사에 관심이 없는 것이 당연하다. 이런 사람들을 ‘옮겨라’라고 해서 옮길 수 있는가? 현실적으로 어렵다.

반면 2기 입대위는 “이미 다수결로 결정된 사항이니 1·2안은 의미 없고 3안을 따르라”는 입장을 고수한 것으로 보인다. 절차적 정당성을 주장하는 측에서는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1안은 결의를 무효화하는 제안이고, 2안은 같은 일을 두 번 하는 번거로움이기 때문이다.

결국 교착은 여기서 생겼다.

강제할 권한이 없는 일을 결의해 버렸고

실제 권한을 가진 사람이 반대했고

그 사이에는 이미 오래된 파벌 감정이 있었다


5. 단톡방 공지 한 장이, 불을 붙였다

본격적으로 입주민들 사이에서 이 일이 화제가 된 건 2026년 1월 8일 오후 3시 24분이다. 카리스마가 1단지 카톡방 전체 공지로 '폭파'를 공지하면서부터다.

그 공지 이후 반응은 대체로 이랬다.

“여기 정보가 얼마나 많은데 대체 왜?”

“입대위가 카톡방 폐쇄를 결정할 권한이 있나?”

“다른 신경 쓸 일도 많은데 왜 이런 데 힘을 쓰지?”

특히 2기방은 인원도 적고 활성도 떨어졌다. 반면 카리스마는 1단지 카톡방에서 여전히 열심히 활동하고 있었고, 그만큼 지지하는 사람도 많았다.

여론은 빠르게 나빠졌고, 결국 카리스마를 제외한 나머지 동대표들은 모두 사퇴했다. 오늘의 상황까지 이렇게 왔다.


6. 악당은 없었다. 다만 착각이 있었다

이번 일을 정리하면서, 나는 양쪽 입장을 모두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되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듯 ‘악당’은 존재하지 않는다.

1기 회장 미유와 관리자의 부탁을, 최근 개인정보보호 이슈가 커지는 상황에서 거절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2기 입대위도 좋은 취지로 진행했을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절차적 정당성도 갖추었다.

다만 착각이 하나 있었다.

입대위가 결의한다고 해서, 카톡방 폐쇄를 강제할 실질적 권한이 생기는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또 하나.

새로운 카톡방을 만든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충분히 계산하지 못했다. 입주 초기처럼 큰 방을 다시 만드는 건 불가능하다. 참여자가 가장 많은 기존 카톡방을 유지하면서, 개인정보 문제만 따로 처리하는 방안이 오히려 현실적이었다.

한발짝 떨어져서 보면 이런 생각도 든다. “그냥 1단지 카톡방을 유지한 채로, 개인정보 관련 문제만 처리하면 되는 것 아닌가?” 카페에 개인정보를 올리는 건 이해가 되지만, 1단지 카톡방 자체에 어떤 개인정보가 얽혀 있는지는 아직도 잘 이해되지 않는다.

결국 이 문제가 이렇게까지 꼬인 건, 애초에 1단지 카톡방과 헬로방이 갈라지던 시점에 이미 파벌이 생겼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때 생긴 감정의 골이, 시간이 지나도 메워지지 않은 채 남아 있었다.

국회에서 볼 수 있는 여러 현상들과 비슷한 것들이, 아파트 안에서도 그대로 벌어졌다. 규모만 작을 뿐, 구조는 같았다.


7. 내가 얻은 교훈

이 일을 통해 나는 몇 가지를 배웠다.

첫째, 계획 단계에서 절차적 정당성만 보면 안 된다. 실제로 이를 진행할 권한이 있는가,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한가를 먼저 봐야 한다. 아무리 모든 절차를 거쳐도 권한이 없는 일이라면, 그 결의는 결국 의미 없는 선언이 된다.

둘째, 사소한 감정의 골이라도 어떤 계기를 만나면 해결의 실마리가 없어지는 순간이 온다. 애초에 감정의 골을 안 만드는 게 상책인 듯하지만, 인간사를 살아가면서 그게 가능할까 싶기도 하다. 웬만한 일에는 그러려니 하는 게, 결국 가장 비용이 적은 선택일지도 모른다.

셋째, 2기 회장인 비주얼은 성격상 입대위 회장에 맞지 않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 2기 입대위가 출발부터 삐그덕댄 것은 동대표 2인의 사퇴로 미루어 볼 때 사실일 가능성이 높다. 그 역시 회장의 권한이 얼마나 제한적인지 잘 이해하지 못한 듯하다. 내가 알기로 그는 꽤 성공한 사업가다. 자신의 의사결정이 최종 결정인 상황이 많았을 것이다. 권위 있는 위치에 있었다는 뜻이다. 반면 입대위 회장에게는 권위가 없다. 철저히 입주민 의견을 대리하는 자리다. 자신의 의견을 주장하기보다는 대리인에 가깝다. 자리에 맞는 성격이 따로 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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