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가재는 껍질을 벗을 때 가장 취약하다

성장을 위해 기꺼이 취약해지기로 결심했다.

by 고도

인생의 모드를 전환하기 위해서는 ‘멈춤’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미 가속이 붙어버린 삶의 방향을 틀려면 일단 멈춰 세워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멈춘다는 건 마치 죽음처럼 두렵게 다가왔다.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서 나만 도태될지 모른다는 공포, 그리고 현실적인 경제적 압박이 나를 짓눌렀다.


멈춘다고 해서 지출이 멈추지는 않는다. 오히려 돈은 더 들 것이다. 내게는 아직 어린 두 자녀가 있다. 지금까지는 아이들이 어려서 양육비가 비교적 적게 들었고, 부모 급여 같은 복지 혜택도 있었다. 하지만 아이들이 자랄수록 들어갈 돈은 늘어나고, 들어올 돈은 줄어들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일을 쉬고 잠시 멈춘다는 건 계산기를 아무리 두드려봐도 비합리적인 결정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나마 안전하게 쉴 방법’을 찾았다. 만약 내 선택이 틀렸을 때 다시 돌아갈 수 있는 안전장치, 바로 ‘육아휴직’이었다. 처음에는 1년을 생각했지만, 회사의 사정을 고려해 6개월로 협의를 보았다. 나는 이 6개월을 나의 ‘안식년’으로 정의하기로 했다.


물론 내가 안식년의 전문가인 것은 아니다. 다만 나는 안식년에 대해 꽤 긍정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다. 아이작 뉴턴의 일화가 대표적이다. 그는 흑사병으로 케임브리지 대학이 문을 닫자 고향으로 돌아가 18개월을 보냈는데, 미적분학의 토대와 만유인력의 법칙, 광학 이론의 핵심이 바로 이 시기, ‘기적의 해(Annus Mirabilis)’에 탄생했다. 기존의 업무를 멈추고 몰입한 시간이 인류의 지성을 바꾼 셈이다.


성경에 나오는 안식년의 유래도 흥미롭다. 6년 동안 밭을 경작했다면 7년째에는 콩 같은 지력을 돋우는 작물을 심거나 아예 땅을 쉬게 한다. 비료가 없던 시절, 매년 쉼 없이 작물을 심으면 땅의 힘이 다해 결국 소출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1년을 쉬는 건 당장은 손해 같지만, 길게 보면 지속가능한 생산을 위한 필수적인 투자다.


자연에서도 이런 지혜를 엿볼 수 있다. 바닷가재는 성장하기 위해 반드시 단단한 껍질을 벗는 ‘탈피’의 과정을 겪는다. 껍질을 벗어버린 직후의 가재는 속살이 그대로 드러나 매우 부드럽고 취약하다. 이때 포식자의 공격을 받으면 치명적일 수 있기에, 그들은 새로운 껍질이 단단해질 때까지 바위 틈에 숨어 숨을 죽인다. 스스로를 가장 위험하고 취약한 상태로 내모는 일이지만, 그 과정 없이는 더 크게 성장할 수 없다. 위험을 감수하고 멈추는 것, 그것이 곧 생존과 성장의 조건인 셈이다.


바닷가재의 탈피 과정은 겉보기에 바위 틈에 숨어 웅크리고 있는 정적인 모습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이면은 치열하고 역동적이다. 몸을 보호하던 단단한 껍질을 벗어내고, 새로운 갑옷을 재생하는 일에는 엄청난 에너지가 소모되기 때문이다. 나는 내 안식년 또한 이러한 과정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찰리 멍거는 문제를 해결할 때 항상 '거꾸로 생각하라(Invert, always invert)'고 조언했다. 성공적인 안식년을 설계하기 막막하다면, 반대로 ‘안식년을 완벽하게 망치는 방법’을 정의해 보면 된다. 적어도 바보 같은 실수만 피한다면 절반은 성공한 셈이기 때문이다. 내가 정의한 ‘안식년을 망치는 지름길’은 다음과 같다.

첫째, 무작정 집을 떠나 타지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특별한 목적 없는 이동은 불필요한 적응 스트레스를 유발한다. 그것은 마치 갓 탈피해 물렁해진 가재가 보호막도 없이 먼 여행을 떠나는 것과 같다. 게다가 여행은 필연적으로 지출을 동반한다. 수입이 멈춘 시기에 경제적 압박감까지 더해진다면, 그것만큼 최악의 상황도 없을 것이다. 현실적인 이유도 있다. 아이들이 평소와 다름없이 학교와 학원을 오가는 익숙한 환경 속에 있어야, 부모인 나 역시 온전한 나만의 시간을 확보할 수 있다.

둘째, 불안함을 못 이겨 또다시 ‘돈 되는 일’을 찾아 나서는 것이다. 가재는 탈피 직후, 바위 틈에 숨어있는 동안 외부의 먹이를 사냥하지 않는다고 한다. 대신 자신이 방금 벗어놓은 껍질을 먹으며 부족한 칼슘을 보충하고, 물을 한껏 들이켜 몸을 부풀린다. 그래야 새로 돋아날 껍질 안에 자신이 성장할 충분한 ‘여유 공간’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기존 방식의 한계에 부딪혀 멈춤을 택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지금은 당장의 먹이를 쫓을 때가 아니다. 낡은 사고의 껍질을 깨부수고, 그 안에서 새로운 삶의 모델을 연구하며 내 생각의 지경(地境)을 넓혀야 할 시간이다.


하지 말아야 할 금기 사항을 정하고 나니,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은 명쾌해졌다. 이 또한 찰리 멍거의 말에서 길을 찾았다.

“살다 보니 알게 된 것이 있다. 끊임없이 생각하고 끊임없이 독서하면 굳이 일하지 않아도 된다.”

해야 할 일은 이렇게 단순하고 명료하게 정리되었다.

끊임없이 읽고, 끊임없이 생각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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