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 살게 될 줄 몰랐다 <2>

중국 살이, 특별하고도 평범한 이야기

by 뚜에

공항에서

"여보~"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 우리를 향해 손을 흔드는 사람, 남편이다. 고작 보름 정도 떨어져 있었을 뿐인데 이산가족 상봉하듯 달려가는 아이들. 나는 남편을 보는 순간 긴장이 풀렸는지, 몸이 종이인형처럼 흐물흐물해진 기분이 들었다. 아마도 보안검색대에서 성경책과 건어물을 뺏길까 봐 신경을 쓴 탓일 게다. 그런데 현실은 이 많은 짐을 끌고 집에 도착하기 전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


다시 정신을 가다듬고 제멋대로 굴러가는 이민가방끈을 고쳐 잡았다. 이민가방은 누가 만들었나 싶을 만큼 기발한 물건이다. 지퍼를 펼치면 세배로 높이가 높아지고 어마어마한 수납이 가능하다. 평소에 보관할 때는 납작하게 접어서 보관하면 부피가 아주 작아진다. 단점이라면 높이가 높다 보니 중심을 잃고 넘어지기 일쑤이고, 바퀴가 제멋대로 돌아가서 내가 끌고 가는 방향으로 따라오지 않는다. 나름 꼼꼼하게 후기를 비교해보고 좋은 제품을 샀다고 생각했는데 이민가방이라는 물건에 큰 기대를 하면 안 될 것 같다.



말 안 듣는 힘센 강아지 끌고 가듯 어르고 달래 가며 택시 승강장으로 갔다. 짐이 많아서 차 두대를 불렀는데 그나마도 한 대에는 트렁크와 승객 앞뒤 좌석 모두 짐을 태워 간신히 출발할 수 있었다.


흠... 그런데 택시 안의 냄새가 정말 고약하다. 이것이 말로만 듣던 그 냄새인가? 중국인들이 잘 안 씻어서 냄새가 난다던데, 택시 기사의 몸에서 나는 냄새는 담배냄새와 최소 일주일 이상 숙성된 것 같은 체취였다. 항상 승차감 좋던 차만 타다가 심하게 흔들리는 차를 타고 냄새의 공격이 더해지니 평생 없던 멀미가 느껴졌다. 살려줘!


드디어 공항 톨게이트에 진입한다. 도저히 냄새를 참을 수 없어서 창문을 열었는데 세차게 몰아치는 바람에 숨을 쉴 수가 없어 바로 닫아버렸다. 내가 냄새를 불평하면 아이들도 인지하지 못하던 냄새를 인지하고 불편해할 수 있으니, 애써 침착한 척 눈을 감고 기도를 시작했다. 하느님, 저 여기서 잘 살 수 있게 도와주세요...


다시 아이들에게 시선을 돌린다. 예상대로 차 안에서도 동영상을 보느라 여념이 없다. 사실 기내에서 약간의 난기류를 만난 적이 있었는데, 무서워서 덜덜 떠는 나와는 대조적으로 태연하게 동영상을 보던 녀석들이다. 그때도 엄마가 무서워하면 아이들도 새삼스럽게 두려움을 느낄까 봐 나는 참았다. 예민하고 겁쟁이 같은 나를 닮지 않아서 참 다행이다. 아니면 동영상의 순기능인 것일까?




중국에 어쩌다 왔을까

이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덧 남편의 집에 도착했다. 시안은 북경이나 상해 같은 대도시가 아니라서 시골 같은 곳일 줄 알았는데, 웬걸. 30층은 족히 넘어 보이는 아파트가 빼곡하고, 바로 옆에는 대형 쇼핑몰이 있었다. 사람은 또 어찌나 많은지... 내가 상상하던 모습보다 더 나은 현실에 안도가 되었다. 남편이 우리 가족을 중국에 못 오게 하려고 안 좋은 부분만 과장해서 말한 것이 틀림없다.

사실 그랬다.


6개월 전에 중국 항공사에 취직한 남편은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내가 호주나 캐나다 같은 영어권 나라에 가기를 원했다. 한국보다 두배 높은 연봉을 받고 중국 항공사로 이직을 했기 때문에 경제적인 여유가 생겼고, 남편의 동료들 대부분이 강남, 목동 같은 학군지에서 아이들을 교육하거나, 유학을 보냈기 때문이다. 그동안 우리 아이들은 경기도 외곽지역에서 공부 스트레스 없이 즐겁게 학교 생활을 했으니 남들보다 뒤처지는 것 같고 아이들의 미래가 불안했었나 보다. 현실적으로 서울의 학군지로 이사 가는 것은 어렵고, 이사를 가더라도 아이들이 그곳의 공부를 일정 수준 따라가기 어려울 것 같으니, 차라리 유학을 가서 외국어에 집중하자고 나를 설득했다. 나는 한국에서 사업을 하고 있었고, 작게나마 봉사활동을 하면서 만족스러운 삶을 살고 있었기 때문에, 벌려놓은 일을 정리하고 외국으로 떠나는 것이 썩 내키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고민 끝에 유학을 가기로 했다.


첫 번째 후보지는 뉴질랜드. 이유는 지인들이 뉴질랜드에 많이 유학하고 있으니 빠르게 적응하고 정착할 수 있을 것 같아서이다. 그래서 나는 여러 유학원을 알아봤고, 살 집과 학교를 구체화하고 예산을 뽑아봤다. 그런데 남편이 시안에서 뉴질랜드를 오려면 직항이 없는 관계로 비행기만 만 하루의 시간이 걸렸다. 남편의 근무 조건은 매달 7일의 휴가 기간이 있었는데, 왕복 이틀을 제외하면 5일 동안 같이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생활비와 학비도 만만치 않은 금액인데 매달 항공료까지 추가한다면 과연 남편과 자주 만날 수 있을까? 나는 상관이 없지만 아이들이 자랄 때 아빠와 자주 만나지 못한다면 결국 아빠는 돈 벌어주는 사람 이상의 의미가 안 될 수 있어서 나는 떨어져 사는 것에 회의적이었다.


두 번째 후보지는 캐나다였다. 캐나다는 영주권 취득이 가능한 퀘벡을 알아봤다. 부끄럽지만 나는 아들 둘의 엄마로서 아이들의 군입대가 너무 두려웠다. 기왕 유학을 가는 김에 이민을 가볼까? 하는 발칙한 아이디어가 떠오른 것이다. 지금은 아니지만 적어도 그때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서 영주권을 비교적 잘 받을 수 있는 나라를 조사하고, 그중 퀘벡이 가장 만만해 보였다. 큰 맘먹고 불어 책과 IELTS 영어시험 수험서를 사서 공부를 하다가 일주일 만에 포기했다. 구차한 변명이지만, 추위에 약한 내가 영하 19도의 혹한을 감당하기 어렵고, 남편이 있는 중국과 시차가 너무 많이 나서 전화 통화가 어렵고, 직항이 없어서 왕복 3일을 허비하며 만나지 못하여 일 년에 한두 번도 못 만날 것 같아서, 등등. 이유를 찾자면 매우 많았다.


결국 나는 아이들과 중국에 가기로 마음먹었다. 남편이 한국보다 까다로운 규정 때문에 너무 스트레스받아했고, 매달 한국으로 오는 경비도 우리가 중국으로 가면 절약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 앞으로 중국이라는 나라가 성장할 잠재력과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아이들이 중국을 잘 알고, 중국어를 원어민처럼 하면 좋을 것 같았다. 시안이 대도시에 비해 물가가 싸고(실제로 서울보다 저렴하다), 표준어인 보통화를 쓰는 도시라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일부러 유학을 가는 사람도 있는데 남편이 시안에서 일을 하고, 생활을 하니 이보다 좋은 기회가 또 있겠는가?



중국 괴담

그런데 남편은 내가 중국에 오는 것을 강하게 반대했다. 이유는 중국은 위험하고, 시안은 발전이 안돼서 살기 불편하고, 공산권이라 늘 조심해야 하고, 사람들 의식 수준이 낮고, 음식도 입에 안 맞고, 우리처럼 초고속 인터넷과 첨단 기술에 익숙해진 사람은 살기 힘들다는 것이다.


일례를 들어, 길거리에서 사람들이 훌훌 바지를 내리고 소변을 보고, 실내 흡연은 기본이요 심지어 엘리베이터에서도 담배를 피운다고 했다. 아직도 인신매매가 버젓이 자행되며, 사람들은 씻지 않아서 고약한 냄새가 나고, 미세먼지가 심해서 햇빛을 보는 날이 손꼽을 만큼 적어서 우울증에 걸릴 것 같다나?


이런 말만 들으면 사람이 사는 곳이 아니라 야만족이 사는 곳 같다. 물론 지금은 이런 말들이 남편이 내가 중국에 오지 못하도록 겁주려고 과장을 보태서 지어낸 말이라는 것을 안다. 어쨌든 당시에도 나는 이런 말이 설령 진짜일지라도, 가족이 함께 사는 것이 중요하고 덤으로 생활비 절약과 아이들 중국어 교육을 얻을 수 있는 중국행을 강행했는데, 지금 생각해도 잘 한 결정이었다.

작가의 이전글중국에서 살게 될 줄 몰랐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