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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반맨 Dec 30. 2022

근자감

49금 유머 인문학 08.

"근거 있는 자신감은 언제든 무너질 수 있지만, 근거가 없는 자신감은 유연성을 길러준다. 
행복하고 의미 있게 사는 주변 사람들을 보면 근거 없는 자신감이 강하다.”
‘수학계 노벨상’이라 불리는 필즈상을 수상한 허준이(39) 교수의 이야기다. 
흔히  ‘근자감’(근거 없는 자신감)은 ‘무식해서 용감한 사람’들의 허세 정도로 알고 있는데 오히려 근자감을 꼭 가지라고 조언한다. 

사실 무식하면 용감해지는 현상은 과학적으로도 설명되고 있다.
‘더닝 크루거 효과’ (Dunning-Kruger effect)라고 해서 ‘잘못된 결론에 도달을 하거나, 실수를 하더라도 능력이 없어서 이를 알아차리지 못하는 현상’을 가리킨다.
이와 유사하게 자신의 경험이나 지적 능력을 과대평가하여 합리적인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기만적 우월감 효과’ (Illusory Superiority)도 있다. 
두 가지 모두 스스로 지닌 능력을 실제 능력보다 높게 평가해서 잘못된 의사결정을 하게 된다는 공통점을 가진다. 
당연히 이런 현상들은 주위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거나 심지어 두렵게 만드는 민폐를 끼치기 십상이다. 

그런데 한편에서는 근자감을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시각도 적지 않다. 
허준이 교수처럼 봉준호 감독도 “본인에게 재능이 있다고 생각하고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무장하라"라고 역설한다.
근거라는 게 늘 확신할 순 없으며 때때로 뒤바뀌기는 경우도 있기에, 근거의 유무를 떠나 우선 자신감부터 장착할 것을 권하는 것이다. 
자신감은 미래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할 수 있는 동력을 만들기 때문이다.  
게다가 일부러 센 척해 보이는 허세와는 달리 고의가 없기 때문에 자신의 무지와 새로운 지식을 유연하게 소화할 수 있는 것도 근자감의 장점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아폴로 신전에 새겨져 있다는 3가지 명언이 새롭게 읽히는듯하다.
"과하지 않으면서 유연한 근자감은 가져도 좋다”라고 말이다. 







ΓΝΩΘΙ ΣΕΑΥΤΟΝ (그노티 세아우톤) 너 자신을 알라.
ΜΗΔΕΝ ΑΓΑΝ (메덴 아간) 지나치지 말라.
ΕΓΓΥΑ ΠΑΡΑ ΔΑΤΗ (엥기아 빠라다떼) 뭐든지 확실하다고 생각하면 파멸이 온다.

울창한  야자수 밑에서 코끼리 한 마리가 몹시 신경질을 내고 있었다.
코끼리의 엉덩이 주위를 커다란 쇠파리가 이리저리 핥고 다니기 때문이다. 
마침 그곳을 날아가던 참새가 이를 보고 단숨에 쇠파리를 쪼아 죽였다. 
말할 수없이 시원해진 코끼리는 몹시 고마워하며 참새에게 보답을 하고 싶다고 하였다. 
“참새씨, 너무 고맙습니다. 무엇이라도 원하시는 걸 해 드리고 싶은데요?"
“어려운 처지에 있는 이웃을 돕는 건 당연한 거지요. 괜찮습니다.” 
참새가 사양을 해도 코끼리는 꼭 고마운 마음을 갚게 해달라고 했다. 
한참을 생각하던 참새가 문득 얼굴을 붉히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저는 여태껏 제 마누라와만 해봤지 코끼리 하고는 같이 해보지 못했거든요." 
“아휴! 겨우 그걸 가지고 그렇게 어려워하셨군요."
“지금 당장이라도 괜찮아요. 어서요." 
참새는 마침내 코끼리의 엉덩이께로 날아가 앉아 일을 벌이기 시작했다. 
그때 야자 수위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원숭이가 흥분하는 바람에 커다란 야자열매가 코끼리 머리 위에 정통으로 떨어졌다. 
“어이쿠! 아야“ 하고 코끼리가 신음 소리를 지르자 코끼리 엉덩이에서 일에 몰두하던 참새가 고개를 쑥 내밀며 제법 근심스러운 듯이 말했다.
“자기 많이 아파?”


말 나온 김에 한마디 더 하자면, 
대체로 코끼리는 큰 덩치에 선한 눈빛을 가진 온순한 동물로 그려진다. 
특히 동양권에서는 위엄, 재복, 행운을 상징하는 신성한 이미지를 가진다.
석가모니의 잉태 과정에도, 석가모니의 오른팔 격인 보현보살의 그림 속에도 보이듯이  불교를 대표하는 동물이었다.
또한 제갈량의 남만 정벌에 등장했던 전투 코끼리처럼 '압도'의 이미지도 가진다. 
이 밖에 코끼리 귀와 코의 모습이 남근의 상징으로 남아있기도 하다. 
“하늘에서 내려온 하얀 코끼리가 흰 연꽃을 코로 감아쥐고 그녀의 자궁 속으로 들어왔다"라는 마야부인의 석가모니 태몽에서 유래되지 않았을까 싶다.  

반면에 오늘날 서양에서의 코끼리 이미지는 좀 사정이 다르다.
술에 취해서 보이는 환각 혹은 환각에 빠진 사람을 '분홍 코끼리'라고 부른다.  
'검은 코끼리'는 너무 중대한 사안을 모두가 모른 척하고 해결하려 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또한 '하얀 코끼리'는 비용만 많이 들고 처치 곤란한 애물단지를 비유하는 표현으로 쓰인다.
몸집은 큰데 딱히 쓸모를 찾기 힘든 미련한 동물 정도로 여기는 듯하다.
‘방 안의 코끼리 (Elephant in the room)라는 영어 표현도 있다.
몸집이 너무 커서 모른 척할 수도 없고, 밖으로 빼려고 하니 방법이 없어 막막한 상황을 빗대서 쓴다.
계속 듣고 보니 집안에 눌러앉아있는 은퇴 남들의 처지와 겹쳐지며 괜한 자괴감이 든다. 
한때는 왕년의 코끼리처럼 남자로서의 권위와 부, 우직함에 더해 왕성함(?)의 영예를 누렸었는데, 이젠 치우기 힘든 덩치가 된 듯한 느낌말이다.   

주먹에 힘이 들어가고 자신감이 차오르는 베르디의 오페라 ‘아이다’ 중 개선행진곡을 들으며 근자감이라도 회복해 봐야겠다.  


베르디의 오페라 ‘아이다’ 중 개선행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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