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도, 아이도, 함께 자라는 삶 (3)
워킹맘의 삶에서 가장 힘든 현실은 하루 24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사실이다. 회사에서도, 가정에서도 충분하고 싶었지만 몸도 마음도 늘 시간 앞에서 막혔다. 두 가지 모두 완벽하게 잘하고 싶었지만 현실은 자주 나를 좌절하게 했다.
아이와 보내는 시간이 줄어들면 엄마로서 부족한 것 같았고, 업무에 몰입할 시간이 부족하면 내 커리어가 멀어지는 것 같아 불안했다. 가정에서는 육아에 더 많은 시간을 쓸 수 있는 엄마들에 비해 충분히 해주지 못한다는 자책이 들었고, 회사에서는 오직 일에만 집중하는 동료들을 보며 뒤처진다는 아쉬움이 남았다. 가끔은 스스로가 초라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질문했다.
"모든 걸 완벽히 할 수 없다면, 내게 정말 소중한 것은 무엇일까?"
"그것을 지키기 위해서 지금 내려놓을 수 있는 것은 또 무엇일까?"
이 질문에 답을 찾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분명한 건 모든 걸 완벽히 해낼 순 없다는 사실이었다. 어느 하나를 선택하면 다른 하나가 희생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중요한 건 무엇을 지킬 것이고 무엇을 포기할지 분명히 선택하고 인정하는 일이었다.
나는 긴 고민 끝에 ‘지속 가능한 삶’을 선택하기로 했다. 완벽하게 두 가지를 모두 해내는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의 타협을 통해 두 가지를 모두 지켜나갈 수 있는 삶 말이다. 그러기 위해 내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나 자신에게 관대해지는 것이었다. 현실적으로 할 수 있는 범위를 받아들이고, 스스로에게 조금 더 여유를 허락해야 했다. 이렇게 마음을 다잡고 나자, 비로소 내 삶에서 시간을 새롭게 설계할 용기가 생겼다.
가장 먼저 시도한 건 오전 7시 출근이었다. 덕분에 오후 4시에 퇴근해 아이와 더 많은 저녁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하루 중 따뜻한 빛이 남은 시간에 아이와 함께 놀이터에 가고, 여유롭게 저녁을 먹을 수도 있었다. 특히 코로나로 인해 아이들이 어린이집에 갈 수 없었던 시기에는 아침 일찍 출근하고 점심시간쯤 퇴근하는 방식으로 업무 시간을 유연하게 조율했다. 업무를 소홀히 하지 않겠다는 약속과 그동안 쌓아온 신뢰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나는 조직 내 최초로 1년의 육아휴직을 사용했다. 모두가 어렵다고 했지만 미리 이야기하고 계획을 공유하니 현실적인 합의점을 찾을 수 있었다. 결국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 아무도 시도하지 않아 보이지 않던 길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이후 내가 다니던 회사가 다른 지역으로 이전하면서 주말부부를 해야 할 상황이 생겼다. 그 회사에서의 일은 정말 좋아했고, 내 전공과 기술이 의미 있게 쓰이는 곳이었다. 하지만 나는 주말부부를 하지 않겠다는 가족적 우선순위가 있었기에 과감히 이직을 결정했다. 이왕 이직하는 김에 육아를 병행하기 좋도록 유연한 근무조건을 제공하는 회사를 찾았고, 재택근무를 시작했다.
이 과정을 겪으며 나는 절실히 고민하면 결국 답을 찾을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중요한 건 ‘하고자 하는 의지’였다. 직장인으로서의 책임감과 엄마로서의 책임감이 결국 같은 뿌리에서 나온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일을 책임 있게 해내는 사람이 육아도 책임 있게 해낸다.
지금의 나는 여전히 완벽하지 않다. 하지만 흔들리지 않을 나만의 리듬을 만들어냈다. 나는 오늘도 시간을 통해 나 자신과 아이들의 삶을 책임지고 있다.
여러분도 혹시 지키고 싶은 삶의 리듬이 있나요?
그 리듬을 지키기 위해 작게 시도해 볼 수 있는 일은 없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