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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금 Oct 22. 2023

1 영혼을 달래는 바나나푸딩

[폭식일기]

내 폭식의 역사는 몇 년쯤 되었을까. 언젠가부터 나는 먹는 것에 집착했다. 외로워도, 화가 나도, 우울해도, 불안해도. 먹는 것으로 해결했다. 먹는 동안에는 뇌가 맛에 절여진 것처럼 멍해지기 때문이다. 폭식 중인 내 뇌를 잘라보면 찐득한 잼이 흘러나올 것만 같다.


얼마 전 인터넷에서 본 글에서, 폭식은 불면과 단짝이라고 말했다. 수면이 부족하면 코르티솔이라고 하는 스트레스 호르몬과 그렐린이라고 하는 허기를 유발하는 호르몬이 상승한다는 게 주 내용이었다.


잠이 안 온다 - 못 잔다 - 잠이 부족하다 - 스트레스를 받는다 - 허기가 진다 - 폭식한다


맞다.

나는 대부분 잠이 오지 않으면 먹었고, 많이 먹었다. 늦은 밤이나 새벽에 일어난 폭식은 다시 패턴을 망가뜨린다. 속이 더부룩하니 잘 수도 없고... 그럼 다시 충분한 수면을 하지 못해 온갖 호르몬이 쏟아져 내리고... 의 무한 반복이다. 잠 못 자는 것 말고도 스트레스 받을 일은 너무 많다. 그러니까 나 같은 환자에게 먹을 핑계를 만들어 줄 일이, 세상에는 너무 많은 것이다.


오늘도 나는 폭식했다. 어플만 깔아 두고 한 번도 쓴 적 없는 여기에 이런 글을 적는 것도 다 폭식 때문이다. 너저분한 배달음식 쓰레기를 치우고 나니 마음이,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가난하고 처참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기를 쓸까 하다가 기록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폭식이 끝날 때마다 매번 배달 어플과 각종 온라인 결제 어플, 쇼핑 어플 등 “뭘 사 먹을 수 있는 수단”이 되는 것은 모조리 삭제한다. 다시는 이러지 말아야지... 말아야지... 하다가 정신을 차리고 나면 다시 실수를 반복하고 있다. 말아야지... 말아... 그래, 얼큰하게 한 그릇 ‘말아야지!’ 정도로 사고가 흐르는 게 아닌가 싶다. 나는 나를 제어할 수 없게 된 지 오래다.


불과 두 시간 전에 나는 누워서 울고 있었다. 정신건강 이슈와 가족관계에 대한 억울함, 슬픔 같은 것에 휩싸여서... 울다가, 놀랍게도 배가 고파졌다. 정확히는... 그냥 뭐든 입에 넣고 싶어진 것이다. 정말 괴로운 부분은, 마지막 식사가 끝난 지 불과 한 시간이 지났을 무렵이었다는 거다. 이미 2인분은 족히 넘는 음식을 와구와구 먹었음에도, 나는 또 음식을 원하고 있었다.

울다가 음식을 찾는다니? 이 대목을 읽고 누군가는 내가 미쳤다고 하거나 어이없을 것이다. 하지만 한 번이라도 폭식해 본 적이 있는 이라면, 혹은 식이장애를 겪는 당신이라면 공감할 것이다. 대개 감정적으로 취약해질 때, 폭식증 환자들은 무언갈 먹고 싶어 한다. 무엇이든 먹고 싶어 한다. 스트레스를 도피하는 방법을 모두 음식 섭취에서 찾기 때문이다.

괴로울 때마다 음식을 먹는다.

그럼 값싸고, 빠르고, 자극적인 도파민이 뇌를 지배한다. 그 순간만은(먹는 순간만은) 모든 것이 괜찮아진다. 그 맛과 자극에 길들여진 뇌는,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음식을 요구한다. 도박이나 마약 같은 중독의 메커니즘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나는 울다가 눈물을 그치고 아주 침착하게 음식을 주문했다. 그 순간에는 눈물이 그쳤다. 빠르게 화면을 스크롤하는 손가락과 퀭한 눈알이 도록도록 굴러갔다. 주문이 끝나고 접수가 되면 다시 울면서 배달이 오기를 기다린다. 이런 감정상태로 뭘 먹는다는 것도, 매번 후회할 짓을 반복하는 것도. 모든 것이 비참하게 느껴지는 타이밍이다. 그러나 문 앞에 음식이 놓인 순간, 눈물은 일단 수습된다. 빨리 먹어야겠다는 생각만 든다.


여전히 축축한 코를 닦으며 내가 뜯은 음식은

샤인머스캣 주스와 바나나 푸딩이었다.


샤인머스캣 주스에는 케일이 들어가 있었다. 이건 아주 우스운 양심 챙기기 같은 거였는데... 그러니까, 폭식을 하면서 조금이라도 건강을 챙기겠다는, 혹은 칼로리를 깎아보겠다는 얄팍한 수다. 오백미리쯤 될 듯한 컵에 가득 든 음료수를 숨도 쉬지 않고 1/3쯤 마셨다. 골이 울리게 차갑고 달콤했다. 살짝 느껴지는 쌉싸래한 풀 맛이 좋다고 생각했다. 곧바로 푸딩을 뜯었다. 커스터드 크림 사이에 생 바나나 조각이 들어있고, 푸딩 꼭대기에는 부드러운 쿠키가 조각조각 흩뿌려져 있었다. 종이컵 정도의 사이즈였지만 내가 느끼는 쾌감은 거대한 고무다라이 정도의 분량이었다. 작았지만, 황홀한 맛이었다. 미친 듯이 입에 스푼을 쑤셔 넣었다. 달콤하게 녹아내리는 바나나와 크림 맛에 뇌도 함께 뭉개지는 것 같았다.


주스를 다 마시고, 푸딩을 끝내고 주섬주섬 분리수거를 하면서 곧바로 (이전보다 훨씬) 비참한 기분이 찾아왔다. 음식이 주는 위안은 너무 순간이었다. 식사가 끝나면 나에게 남는 것은 너무 초라한 흔적들 뿐이었다.

더부룩한 속과 빵빵하게 부은 위(주스랑 푸딩으로 무슨? 싶겠지만 이건 두 번째 폭식이었다), 부어오른 침샘, 탁자에 남은 배달음식 쓰레기들, 가벼워진 통장, 잠잘 시간을 놓친 새벽, 후회, 자괴, 체중 증가......


이 외에도 나를 죽고 싶게 만드는 모든 감정이 몰아친다. 제목에는 영혼을 달래는 바나나 푸딩이라고 썼지만, 사실 폭식은 영혼을 좀먹는다. 황홀한 안식이 찾아오는 건 순간이다.


첫 글을 쓰고 보니 내가 왜 이 글을 쓰려고 마음먹었는지 알 것만 같다. 기록한다는 것은 나의 행동을 반추할 수 있게 된다는 의미이다. 앞으로는 나의 폭식들을 가능한 낱낱이 고하면서 반성하고 싶다. 너무 오래 이렇게 살아온 삶을, 더 이상은 내버려 두고 싶지 않다. 삶을 포기하는 것을 포기한다. 습관은 바꾸기 쉽지 않고, 나쁜 습관은 더더욱 그렇겠지만... 그래도 차근차근 돌아보는 사람이 되고 싶다.


혹시라도 폭식의 키워드로 이 글을 읽게 된 사람이 있다면, 더도 말고 딱 한마디 해주고 싶다.


괜찮다. 당신은 최악도 아니고, 당신의 몸과 마음은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까 스스로를 역겨워하지 말고... 달래주길 바란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짧고 달콤한 자극이 아니라 지속적인 위로이다. 계속 스스로를 다독여주고 껴안아주고, 보살피는 단단한 마음이다. 그러니까 괜찮다. 서서히 괜찮아질 것이다. 지금 당장은 괜찮지 않더라도 믿어 보자.




안녕하세요. 소금입니다.

에세이라고 하기에는 초라한 이 글 조각을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처음이라 더 어설프고 장황한 것 같네요.

10편 정도를 연재할 생각이고, 폭식증과 배달음식중독에 대해 주로 다룰 생각입니다.


다음 제목은(예정) ‘맥모닝을 먹는 자, 누구인가’입니다. (여러분은 일찍 일어나기 vs 밤샘 중에 어느 쪽이신가요?


아무튼... 다음 글에서 뵙겠습니다.

푹 주무시길 바랍니다. 배고픔 없이, 배앓이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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