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공단 1188일의 기억] 작은 호칭 하나가 70년 분단의 벽을 허물다 (15)
시선생(習先生)과 마선생(馬先生), 그리고 작은 배려의 힘
'김명옥 동무'라고 부를 때 느꼈던 그 따뜻함
'강 참사 선생'이라고 부를 때 보여준 그들의 환한 미소 지금도 생생
개성공단에서 '선생'이라는 호칭이 자연스럽게 정착되어 가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문득 떠오른 것이 있었다. 2015년 가을 어느 날 한국경제신문에서 읽은 천자칼럼이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마잉주 대만 총통의 역사적인 만남에서 두 사람이 서로를 '시선생(習先生)'과 '마선생(馬先生)'으로 호칭했던 그 순간 말이다.
얼마나 치밀한 계산이었을까.
중국은 '하나의 중국' 원칙으로 대만을 독립 국가로 인정하지 않았고, 대만은 '중화민국'으로서의 정통성을 주장했다. 서로를 '국가주석'이나 '총통'으로 부르는 것은 상대방의 주권을 인정하는 셈이었다. 그래서 이런 논쟁적인 직함을 피하고 중립적인 '선생'이라는 호칭을 선택한 것이다.
그럼에도 정상회담 후 이어진 만찬에서 시 주석과 마 총통은 중국 전통술 고량주로 건배했다. 만찬 테이블에 오른 고량주는 대만 총통실이 준비한 '진먼(金門)'과 '마쭈라오주(馬祖老酒)'였다.
두 술의 원산지인 진먼과 마쭈는 모두 분단 최전선인 대만 최북단 대만해협에 있다. 이 술을 준비한 배경에는 분단된 조국의 아픔을 상기하자는 의미가 담겨 있다는 해석이 나왔다.
아! 개성공단에서도 똑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었구나. 서로 다른 체제에서 온 사람들이 어떻게 부르는 것이 좋을지 고민하다가, 자연스럽게 '선생'이라는 호칭으로 수렴되어 간 것이다.
한편 우리나라에서는 글을 가르친다고 모두 선생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학문적으로 어떤 경지에 도달해야만 선생이라고 불렀다. 조선 시대는 대제학 위에 선생이 있었다고 하며, 최소한 율곡 이이나 퇴계 이황쯤은 되어야 선생이라고 할 수 있다고 하니 극도의 존경스러움이 담겨 있는 단어다.
개성공단 1188일의 근무시간 동안, 선생 호칭 한 번 더 불러주는 것이 돈 드는 것도 아니었다. 조금이나마 마음을 열고 다가서는 작은 배려였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는 말처럼, '동무' 또는 '참사 선생' 한 번 더 불러주는 것이 뭐 그리 어려운 일일까.
개성공단에서 보낸 기간 동안 가장 먼저 배운 것이 바로 이런 작은 배려였다. 호칭 하나가 이렇게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를 좁혀줄 수 있다는 것을 몸소 체험했다.
북측 동료들이 '김명옥 동무'라고 부를 때 느꼈던 그 따뜻함, '강 참사 선생'이라고 부를 때 보여준 그들의 환한 미소가 지금도 생생하다.
작은 호칭 하나가 70년 분단의 벽을 조금씩 허무는 힘이 있다는 것. 이것이 개성공단에서 배운 가장 소중한 교훈이었다.
하지만 격주로 서울에 와서 개성공단지점 발령 전 근무부서였고 너무나 예뻐해 주셨던 류동렬 부장님(당시)과 후배들의 저녁 식사 자리에서 들쭉술 한 잔 권하며 "류 부장 선생" 호칭을 썼더니 "북한 사람 다 되었네, 공산당원 다 되었네"라는 말씀의 덕담(?)을 주셨다.
격려의 말씀이셨지만 때와 장소를 구분해서 발언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도 개성공단에서 배운 것은 확실했다. 서로 다른 체제에서 온 사람들이 진정으로 소통하려면, 상대방이 편안해 하는 방식으로 다가가는 것이 첫걸음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