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 귀향길 10일차 7편 — 구담봉(龜潭峰), 물 위의 절벽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호젓한 호수를 배가 가로질렀다. 유유히, 구담봉을 향해.
너무도 아름다웠다. 푸른 물결이 넘실대고, 은빛 햇살이 수면 위에서 찰랑거렸다. 퇴계 선생 귀향길 재현단의 배 위에서 이런 시간을 누릴 수 있다니, 퇴계 선생께 고마운 마음뿐이었다.
장회나루가 가까워질수록 풍경은 점점 겸재선생이 다녀가신 내 고향 백마강 임천고암 절벽처럼 깊어지며 탄성이 저절로 커졌다. 청풍호 양쪽으로 웅장한 암벽들이 차례로 모습을 드러냈다. 주상절리처럼 세로로 갈라진 절벽, 물가까지 완만하게 흘러내린 너른 암반, 억만 년 세월이 빚어낸 형상들이었다. 수위가 낮아진 자리에 하얗게 드러난 암석층이 이 호수의 깊이를 짐작케 했다.
배 안에서 방송이 흘러나왔다. 충청도 사람 특유의 구수한 말투가 섞였지만 빠르고 또렷한 어투로 지역 지명 유래를 설명하는 목소리였다. 금수산(錦繡山), 비단에 수를 놓은 듯 아름답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했다. 퇴계 선생이 그 암벽의 모습을 보고 직접 명명했다 전한다. 금수산 안쪽 한영지 골짜기에는 삼복더위에 얼음이 언다는 신비로운 얼음골이 있다 했다. 갑판 위 사람들이 일제히 난간으로 몰려들었다. 카메라와 핸드폰이 산을 향했다.
퇴계 선생 귀향길 재현단으로 참가하여 이 풍광을 눈에 담는다. 모저럼 불황의 주식판도 봐야 하고, 풍광도 봐야 하고 눈이 두 개라도 모자랐다. "퇴계 선생 귀향길에 땡땡이치고 주식판이나 들락날락하니 마이너스가 나지" 선생의 불호령이 떨어지는 것 같았다. 그래도 오늘은 많이 복구했으니 선생께서 봐주시지 않을까. 유지경성(有志竟成), 뜻이 있으면 마침내 이룬다 했으니, 주식도 언젠가는...
그리고 드디어 옥순봉(玉筍峰)이 모습을 드러냈다. 대나무 순처럼 뾰족뾰족 솟아오른 암봉들, 이름이 빈말이 아니었다. 절벽 틈마다 소나무가 뿌리를 박고 있었다. 제천시에서 만든 옥순봉 출렁다리 "길이 222미터 "가 암벽 옆에 걸려 있었다.
구담봉(龜潭峰)이 바로 옆으로 다가왔다. 남한강 줄기를 따라 깎아지르는 듯한 장엄한 기암절벽 하늘을 찌를 듯 솟아오른 봉우리 아래 물가까지 층층이 쌓인 암반이 펼쳐졌다. 구담(龜潭) 물속에 거북 목을 닮은 바위가 잠겨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이 구담봉 어딘가에 단구동문(丹丘洞門) 네 글자가 새겨져 있다. 퇴계 선생께서 단양 군수 시절 직접 새기신 글씨, 한양과의 경계를 표시한 유서 깊은 자취다. 배 위에서 눈으로 찾아보았지만 끝내 찾지 못했다. 그래도 괜찮았다. 선생의 손길이 이 바위 어딘가에 남아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배가 구담봉 바로 아래를 지나는 순간 고개를 한껏 젖혀야 했다. 암봉들이 겹겹이 하늘을 향해 솟아 있었다. 절벽 틈마다 소나무가 뿌리를 박고 있었다. 바위도, 소나무도, 세월도 모두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구담봉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셀카도 찍고, 두손가락 V도 했다. 갓 쓰고 도포 입고 구담봉 앞에서 V, 퇴계 선생께서 보셨다면 혀를 차셨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좋았다. 열흘째 걷기만 하다가 배 타고 이 자리에 있다는 것이, 이 풍경 앞에 서 있다는 것이.
드디어 장회(長淮) 선착장에 닿았다. 태극기를 단 배가 선착장에 부드럽게 멈추었다. 양쪽 산이 V자로 품어주는 그 안에 배가 조용히 접안했다. 발목 통증 생긱하면 단양향교까지 계속 배를 타고 이 물길을 따라가고 싶었다. 그러나 일정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장회 선착장에서 하선하여 이제 점심을 먹고 다시 두 발로 걷는 길이 시작될 것이다.
물 위의 길이 끝났다. 청풍에서 장회까지 퇴계 선생께서 가셨던 그 물 옆길을, 우리는 물길로 눈호강하며 지나왔다. 수몰된 고향집을 그리는 그분들의 마음을 어찌 알까 마음을 갖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