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 귀향길 10일차 6편 — 청풍호(淸風湖), 물 위의 길
이한방 박사님의 주옥 같은 이야기 속에 버스는 어느덧 청풍 선착장에 닿았다. 어제 한벽루 아래에서 바라보던 그 푸른 물결이었다. 봄바람이 콧등을 스쳤다. 차갑지만 시원했다. 가슴까지 훤히 뚫리는 듯했다.
선착장 뒤로 대형 사장교가 산을 배경으로 우뚝 서 있었다. 산 여기저기 벚꽃이 듬성듬성 피어 있고, 그 사이사이 푸른 옷으로 갈아입는 나무들이 오늘따라 유별나게 아름다웠다.
선착장 앞에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제6회 퇴계선생 마지막 귀향길 재현행사, 4월 8일 수요일, 청풍나루 출발(11:00), 장회나루 도착, 12.5km. 숫자로 적히니 새삼 실감이 났다.
도포 자락을 여미며 선착장 계단을 내려갔다. 청풍호크루즈 청풍수상나루, 청풍에서 장회나루까지, 붉은 화살표 하나가 오늘의 길을 가리키고 있었다. 갓을 쓰고 도포를 입은 재현단 일행이 하나둘 배에 오르는 모습은 어느 시대의 풍경인지 알 수 없었다. 조선인지 현대인지, 청풍호의 봄 햇살 아래 그 경계가 흐릿해졌다.
배 안은 재현단으로 가득 찼다. 80대 어르신부터 초등생까지, 그토록 아스팔트 길을 걸을 때의 고통스런 모습은 온데간데 없었다. 여중생들은 미래 PD인 양 인터뷰를 하고, 손잡고 노래를 부르고, 이재명이를 비롯한 남학생들은 카드놀이를 했다. 그 사이 어르신들의 갓 위로 봄 햇살이 내려앉고, 도포 자락이 서로 엉켰다. 나는 맥심 T.O.P 한 병을 손에 들고 갑판으로 나섰다.
청풍호의 바람이 도포 자락을 흔들었다. 갓 쓴 선비가 캔커피를 손에 들고 호수 위에 서 있었다. 퇴계 선생께서 이 모습을 보셨다면 웃으셨을까, 혀를 차셨을까. 어느 쪽이든 선생 또한 그 먼 길, 아마도 식혜로 갈증을 해소하지 않으셨을까. 캔커피의 달콤함 속에 한벽루를 향해 다음에 만나기로 손짓을 하며 배가 천천히 선착장을 떠났다.
퇴계 선생은 말을 타고 가셨다. 유감스럽게도 댐으로 수몰된 덕분에, 재현단 일행은 배를 타며 강 좌우의 기암절벽과 그 유래를 더 알차게 공부하는 시간을 얻었다. 화가 복이 된 셈이다.
퇴계 선생께서 1569년 이 물길을 지나셨을 때, 호수는 없었다. 강이 흘렀고, 마을이 있었고, 사람들이 살았다. 충주댐이 그 모든 것을 수몰시킨 뒤 지금 우리는 그 위를 배로 지나고 있다. 선생의 길을 따른다 하지만, 선생이 보셨던 풍경은 이미 물 아래 잠겨 있다.
장회나루가 가까워졌다. 구담봉이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