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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내린 서오릉에서 마주한 금융의 초심]

by 윤석구

[눈 내린 서오릉에서 마주한 금융의 초심] <좌충우돌 인생이막 33호. 2025.2.20>


지난해 12월 3일 계엄 선포 이후 좌우로 나뉜 국내 정치환경, 트럼프 미 대통령 취임 이후 등 복잡 다난한 국내외 정세 속에서도 아파트 베란다의 '칼랑코에 브로스펠디아나'는 꿋꿋이 꽃을 피웠다. '너그러운 마음, 설렘, 당신을 지켜줄게요"라는 꽃말을 품은 노란 꽃잎이 한겨울 모진 풍상을 다 견디어 내고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그러나 친정 은행을 향한 마음은 그리 희망차지만은 않다. 세월의 흐름 속에서도 건전성과 수익성을 지키고, AI 인공지능이 판치는 극변한 을사년에도 지속 성장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네이버 검색창에 'W은행'을 입력하니, 마주한 것은 온통 꿀꿀한 뉴스뿐이다. 지주회장과 은행장을 역임한 S회장의 친인척 관련 대출로 기소 재판, 현역시절 1등 은행을 만든다는 자부심에서 현재 금융지주회사 순위 4위까지 추락한 모습에 마음이 쓰리다. 금융권 전체의 모습 또한 녹녹지 않다. 부동산 PF 시장은 엄동설한에 빠져있고, 지속적인 고환율 및 이자수익에 따른 순이익이 천문학적인 16조 이상이 된다는 소식 등에서 우리 금융권이 잃어가는 것은 단순한 신뢰를 넘어 그 존재의 이유인 듯하다.


이런저런 생각을 안고 막바지 겨울, 흰 눈이 내리던 지난 주초, 호젓한 눈길을 벗 삼아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고양시 용두동의 서오릉으로 향했다. 매년 새해가 되면 우리은행 임원진은 고종과 영친왕이 잠들고 있는 구리 홍유릉을 찾아 참배하며 정도경영을 다짐하곤 했는데, 아직도 친정의 풍습이 남아있어 마음은 홍유릉으로 향했으나, 발걸음은 가까이 있는 서오릉으로 옮겼다.


서오릉의 고요한 설경 속에서 조선의 역사가 펼쳐진다. 세조의 세자(추존 덕종)와 소혜왕후의 경릉, 덕종 아우인 예종과 안순왕후의 창릉, 숙종의 왕비 인경왕후의 익릉, 숙종과 인현왕후 및 제2계비 인원왕후 김 씨의 명릉, 영조 원비인 정성왕후의 홍릉과 특히 사극에 많이 등장했던 장희빈 대빈묘 등이 조선 왕조의 애환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이 유서 깊은 능침들 사이로 걸으며, 자연스레 126년 전 우리나라 최초의 민족은행 탄생으로 생각이 이어진다.


1899년 1월 30일, 고종황제는 '화폐융통(貨幣融通)은 상무흥왕(商務興旺)의 본(本)', 즉 "돈을 원활하게 융통하는 것이 국가발전의 근본"이라는 이념을 바탕으로 민족자본 육성을 통한 국가 경제발전을 목표로 삼았다. 황실 자금인 내탕금을 자본금으로 납입하고 정부관료와 조선상인이 주주로 참여해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의 민족자본으로 대한천일은행을 설립했고, 1902년에는 영친왕이 제2대 은행장으로 취임했다. 나라와 백성을 위한 금융의 시작이었고 그러한 연유로 1社1 문화재 자매결연 홍유릉에 참배를 드린다.

창립 그로부터 126년의 시간 동안 대한천일은행은 한국상업은행이 되고 한일은행과 합병의 우리은행은 서울시 공금예금 지정은행, 국내은행 중 최초 해외 동경지점 설립, 분단 전 60개 이상 있던 북녘땅에 최초 개성공단 지점 재오픈 등 국내 최고(最古)의 은행에서 최고(最高)의 은행으로 발전해 왔다. 그러한 은행의 일원으로서 녹을 먹으며 아이들을 성장시키고, 기업과 고객님들의 발전과 행복을 위해 웃음꽃 피우며 한 시절을 보냈건만...

오늘날의 현실은 어떠한가. 아픈 뉴스만 가득한 친정 소식 속에, 2024년도 금융권의 사상 최대 41.8조 이자수익 실현 뉴스조차 그리 반갑지 않다. 내 경험만 해도 Ka.뱅크의 모임통장 효용성에 매료되어 수시입출금 통장을 만들었지만, 마이너스 한도를 만든 대출통장에서 인출 투자한 주식은 10% 내외 손실 상태다. 매달 통지되는 기본금리 3%에 가산금리 3.3%는 도저히 납득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금통위의 기준금리 변동에서 금리인하 시 MMDA 및 CD 수신상품 등은 금통위 조정 즉시 반영하고 대출금리는 이자 납부하는 한 달 또는 대출 재약정시에 반영하는 등의 구조와 가맹점 카드수수료율 등 금융권의 이익은 결국 국민의 부담이 되어 돌아오고 있다.


서오릉을 걸으며 영조의 원비 정성왕후가 잠든 서오릉 홍릉에는 허석(虛石)이 있다. 왕후의 택조(宅兆)를 정하면서 장차 영조 본인도 함께 묻히고자 허석을 썼으나, 서거 후 가장 길지라는 서오릉에 오지 못하고 구리 동구릉에 자리 잡게 되어 현재 빈 채로 남아있다. 참고로 영조는 정성왕후 장례 후 66세 고령임에도 중전의 자리를 비울 수 없다는 이유로 15세의 정순왕후를 계비로 맞이했다. 정순왕후와 합장되었는데, 영조의 홍릉에 묻어달라는 유언에도 불구하고 정조는 영조가 사도세자를 죽인 것을 용서할 수 없었던지 홍릉 대신 동구릉 파묘자리로 향했다는 영조 릉의 비밀을 허석 사유를 공부하며 되새겨본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마치 홍릉의 허석처럼 곳곳에 빈 곳이 많아 보인다. 청년들이 집을 사기가 어려워 결혼이 늦어지는 현실은 주택 구입 대출 이자 경감이라는 과제를 안겨주며, 일부 야당의 획일적 25만 원 금전살포가 아닌 소상공인들의 어려움을 덜어주기 위한 포용적 금융 역시 시급하다. 정말 필요한 것은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상생 금융, 미래를 짊어질 청년들의 자립을 돕는 청년 발전 금융, 그리고 저출산 문제 해결에 기여할 수 있는 저출산 극복지원등의 시스템 구축이 더 필요하지 않을까!


물론 이러한 빈자리를 채우는 것은 쉽지 않겠지만, 이런 측면예서 금융권이 사회적 책임을 더욱 높여 국민들의 삶에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으로 눈발이 잦아드는 오후, 서오릉을 나서며 깊은 생각에 잠긴다. 마치 "칼랑코에 브로스펠디아나" 꽃처럼 모진 겨울을 이겨내고 봄을 맞이하듯, 금융권도 정직과 신뢰라는 기본으로 돌아가 고객의 신뢰를 회복하고 올바른 사회의 중책적 기관으로 거듭나기를 희망하는 마음으로 귀갓길에 오른다.


은행을 떠난 지 세 번째 맞이하는 해이지만, 우연히 카톡 속 혈기왕성할 때의 1등 은행 액자 속 사진을 바라보며 아직도 친정을 사랑하는 마음이 그 누구보다도 크게 간직된 '우행애심(友行愛心)'으로, 오늘의 묵언의 시간을 되새긴다. CEO가 지탄받는 부끄러움과 새로운 노란 꽃잎의 희망이 교차하는 이 겨울날, 고객을 더없이 사랑하는 은행으로 우뚝 서는 그날까지, 오늘 내린 첫눈처럼 고종과 영친왕 창립 당시의 '화폐융통은 상무흥왕의 본' 초심을 잃지 말길 기도하는 마음으로 믿음직한 후배들을 다시 믿고 응원하고 또 응원한다.칼랑코에 '설렘, 당신을 지켜줄게요" 꽃말처럼...


2025.2.12 서오릉 경내 눈길을 밟으며... from sky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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