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찾아온 낯선 고요

by 하린

오늘은 오랜만에 상담치료가 거의 없는 날이었다.

학교 축제 때문이라며 내담자들이 하나둘 연락을 주었고, 나는 그 말들 사이에서 스르르 비워진 시간표를 바라보았다.

한 명의 내담자만 만나고 돌아온 오후.

나는 하루를 다 채우지 못한 마음처럼 어딘가 비어 있었다. 상담이 없다는 건 분명 쉬어도 된다는 뜻인데, 나는 왜 이렇게 마음이 불편할까.

한없이 고요한 상담실에 앉아 있으니, 나 자신이 너무 조용해져서 어쩐지 투명해지는 기분이었다. 쉴 수 있어서 좋은데, 쉰다는 것이 이렇게 낯선 일이었나 싶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여러 사례를 연달아 만나며 정신없이 하루를 달렸는데 오늘은 텅 빈 시간 속에 나 혼자 멈춰 선 듯한 기분.

내가 해야 할 일을 잃어버린 것 같고,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 아닌 것 같고, 마치 나라는 존재도 잠깐 잊혀진 것 같은 착각.

일을 하지 않으면 나도 없는 걸까, 라는 문장이 마음 한 구석에서 조용히 피어올랐다.

그러면서도 나는 안다. 이런 시간도 필요하다는 걸.

누군가를 위해 하루를 다 채워 넣기만 하다 보면 나는 점점 나를 비워내게 된다는 걸.

오늘 하루의 이 낯선 고요는 내가 나를 다시 채워 넣을 수 있는 귀한 여백이었다.

아무도 찾지 않는 치료실의 오후. 책상 위에 놓인 따뜻한 차 한 잔과, 조금 늦게 도착한 햇살 속에서 나는 조용히 나를 다독였다.

"오늘처럼 쉼이 오는 날, 그것도 너답게 살아가는 길이야."


매거진의 이전글월,화,수,목,금,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