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친구들과 떠난 홍콩, 나를 위한 일탈

지켜봐준다는 것만으로도 회복되는 순간이 있다

by 이레

함께 늙어간다는 건, 지쳐가도 된다는 뜻이었다.

말하지 않아도 위로가 되는 친구들과의 여행. 그 며칠이 내 마음을 다시 일으켜줬다.


병동에서 함께 울던 동기들, 여행자가 되다

우리는 대학 동기였다. 간호학과라는 이름 아래, 실습과 과제로 눈물 쏟으며 서로를 끌어안던 시절부터였다.
그렇게 20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그 사이 우리는 각자의 병원에서 신규시절을 버티고 야간근무를 버티고, 결혼, 임신, 출산, 육아의 시간을 거쳐 가족을 돌보고, 인생의 몇 번의 굴곡을 넘겼다.
어느 날 누군가 말했다. "올해는 진짜 같이 여행 가자."
그 말은 그냥 나온 말 같았지만, 우리 모두의 마음 깊은 곳에서 필요했던 약속이었다.

6명의 근무표를 맞추는 일은 쉽지 않았다.
연차를 조정하고,같이 일하는 동료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아이들을 돌봐줄 신랑의 일정을 조율하면서도
우리는 이 여행을 향한 마음만은 단 한 번도 흔들리지 않았다.
이건 단순한 여행이 아니라 우리 자신에게 주는 선물, 혹은 지금까지 살아낸 서로를 위한 박수였기 때문이다.


우리는 말하지 않아도 서로를 안다

여행지의 풍경보다 더 인상적이었던 건, 친구들의 얼굴이었다.
낯선 도시를 함께 걷고, 야시장 앞에서 유치하게 웃고, 호텔 침대에 둘러앉아 수다를 떨던 그 밤.
그 순간 나는 새삼 깨달았다.
이들과 함께하는 이 여행이, 무너지지 않기 위한 나의 방어막이 되어주고 있다는 것을.

한 명이 조용히 울었다.
퇴사 직전에 마음이 많이 힘들었다고.
다른 친구는 최근 환자 사건 때문에 병원에 정이 뚝 떨어졌다고 말했다.
누구도 위로하려 들지 않았다.
다만 침대 끝에 앉아 손을 잡아주는 것만으로도, 그 마음은 충분히 전달됐다.

우리는 서로의 언어를 이미 알고 있었다.


함께 늙어가는 친구가 있다는 것

간호사라는 직업은 늘 미소를 지으며 "괜찮은 척"을 강요당하는 일이 많다.
환자 앞에서, 보호자 앞에서, 동료 앞에서...
하지만 이 여행만큼은 그런 척이 필요 없는 시간이었다.
함께 늙어간다는 건, 같이 지쳐가도 된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거울을 보다 서로의 주름을 발견하고 웃었고,
사진을 찍을 때 "야 너 너무 늙었어!" 하며 장난을 쳤지만,
그 웃음 안에는 미안함과 애틋함, 그리고 자랑스러움이 함께 있었다.

"그래도 이렇게 살아남았잖아. 우리, 꽤 잘 버틴 거야."


우리는 서로를 살아 있게 해주는 사람이었다

여행을 다녀온 지 시간이 꽤 흘렀지만,
그때 나눈 대화 하나하나는 지금도 선명하게 남아 있다.

지금도 우리는 다시 각자의 자리로 돌아와
야간 근무를 서고, 환자를 돌보고, 가족을 챙긴다.
그러나 분명히 다르다.

우리는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사람들이다.
그 짧은 여행 속의 시간들이, 지금도 나를 다시 살아가게 한다.


돌아오는 길, 나의 마음 안엔 여섯 자리가 있었다

홍콩의 밤거리, 그 화려한 불빛 아래
우리는 말없이 같은 방향을 바라보았다.
누군가는 하늘을 가리켰고, 누군가는 옆 사람의 어깨에 기댔다.
누구도 말하지 않았지만, 모두가 느끼고 있었다.

그 순간, 우리는 살아 있었다.

20년을 함께 버텨낸 얼굴들.
울지 않으려 웃고, 지치지 않으려 손을 흔들던 그 시간들.
무너지는 마음을 안고도 이 자리에 선 서로를 보며
나는 안심했고, 위로받았고, 다시 시작할 용기를 얻었다.

이건 일탈이 아니라, 서로를 확인하는 조용한 약속이었다.
말 한마디 없이도 마음이 전해지고,
같은 길을 걸어온 서로의 수고를 다정하게 인정해주는 시간.

등을 맞대고 바라본 그 장면은
내 안에 오래도록 남을 것이다.
나는 이제 혼자가 아니다.
다정한 여섯 개의 등불이 내 삶을 밝혀주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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