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비리에서 팜플로나 가는 길

강물 따라 흘러갔다.

by 이슬

아침 일찍 팜플로나(Pamplona)를 향해 길을 떠났다. 팜플로나는 스페인 나바라 지방의 도시, 한때 나바라 왕국의 수도였던 팜플로나. 고도가 400m 남짓한 고지대 도시다.

이제 조금씩 사람들을 알아가게 되는 것 같다. 산티아고. 여행을 선택한 이들은 대부분 걷기 여행 마니아들이다. 나처럼 초보는 별로 없다. 삼십일 넘게 매일 30KM가량 되는 길을 걷겠다고 실행할 수 있는 이들은 나름대로 무엇인가가 다른 이들이다. 아무런 준비 없이 덜컥 길을 나선 나와는 다르다. 나는 부족함이 많았다.

수비리에서 팜플로나를 향해 떠나는 길은 조용하고 아름다웠다. 덥지도 춥지도 않고 매우 쾌적했다. 다소 쌀쌀하기는 했다. 변덕쟁이인 스페인의 날씨 때문에 혹시 또 비가 올지 몰라 비옷, 우산, 배낭 등 짐이 산더미였다. 그 짐을 메고 하루 25KM가 넘는 길을 매일 걷고 있으니 스스로 대견하고 기특했다.

팜프.jpg 수비리에서 팜플로나 가는 안내판

길을 따라 마을을 빠져나오자 팜플로나 안내도가 있었다. 잘 읽을 수는 없지만 그래도 안내판 앞에서 대략적으로 가야 할 길을 어름해 보았다. 4월 봄기운에 물이 오른 숲길은 다정하고 상쾌했다. 맑은 하늘에 찰랑이는 햇살이 나뭇잎을 쓰다듬고 있었다. 바람도 향긋했고 촉촉하게 젖은 길은 내딛는 발걸음을 가볍게 했다. 햇볕이 없는 숲 길로 들어서자 조금 서늘했다. 바람이 불면 오싹 한기가 느껴지기도 했다. 맑게 씻겨진 산과 들, 하늘 모두 새초롬했다.

허름한 건물에 그려진 벽화

산티아고 길을 걷다 보면 벽화들이 간혹 눈에 띈다. 이 벽화는 커다란 농장인 듯 보이는 창고 같은 곳인데

전통 놀이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마치 우리나라 사물놀이와 비슷한 복장이어서 관심이 갔다. 지역이 어느 곳인 가를 불문하고 농사짓는 곳은 거의 비슷한 방식으로 문화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에 감탄했다. 거기 쓰여 있는 내용이 대략적으로 환영한다는 이야기인 듯하다. 곡식이나 농기구를 보관하는 창고일까? 궁금하고 궁금했다.

한참을 걸어가니 강이 나왔다. '흐르는 세월처럼'인가 하는 영화가 생각났다. 브레드피드가 강에서 고기를 잡으며 강을 따라 내려가던 모습이 떠올랐다. 강가에 쓰러진 나무가 있어서 걸터앉았다. 이름을 알 수 없는 강의 기슭에는 제법 우람한 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물살이 거칠게 소리를 내며 흘러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한참 앉아 있다 보니 지나가는 여행객들도 걸음을 멈추었다. 먼저 왔던 이들이 자리를 양보해 주었다. 모인 사람들은 피부도 생김새도 각양각색이다. 국적도 다르고 언어도 다르지만 모두 산이타고 까미노를 걷는다는 이유로 동료애를 느꼈다, "부엔 까미노" 인사하며 양보하고 도와주며 긴 여정을 함께한다. 과거에는 이 길을 생명을 걸고 걸었고 실제로 순례 중 많은 이들이 죽기도 했다고 한다. 배고픔과 추위와 강도들의 습격을 받으며 걷던 길이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교포들인 것 같았다. 독일에서 왔다고 했다. 강 이름을 모른다고 하니 무척 열심히 찾아 주었다. 한국말을 잘 모르면서도 조국에 대한 그리움과 동포애를 느꼈던 것일까? 같은 길을 걷고 있다는 동료 의식 때문이었을까? 강 이름을 찾기 위해 애쓰는 모습을 보며 참 마음이 따뜻해졌다. 강 이름은 수비리에서부터 흐르고 있었던 아르가 강줄기인데 수량이 풍부하고 팜플로나까지 이어지는 강이다.

팜플로나 가는 길.jpg 팜플로나 가는 길(풀밭)

미국에서 생활하다 산티아고 까미노에 동참한 젊은 친구가 왔다. 우리는 반갑게 인사하며 잠시 서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부모님 따라 이민을 갔다가 부모님은 한국으로 돌아오시고 자기와 오빠는 미국에 살고 있다고 했다. 부모님이 계시지 않는 타국 생활은 힘들 것 같았다. 직장 때문에 들어올 수가 없다고 했다. 사십이 넘었는데 결혼하지 않고 혼자서 산다고 했다. 여행도 자주 하고 아주 멋지고 자유분방하게 살아가는 것 같아 보기 좋았다. 우린 팜플로나까지 함께 걸었다. 도로가 갈라진 곳에서 같이 길을 찾고 동행하며 많은 이야기를 했다. 좋은 친구하나 알게 된 듯하여 기뻤다.


수비리에서 팜플로나로 가는 길은 그다지 먼 거리는 아니었는데 걷는 과정이 순탄치 않았다. 심심하고 무료했다. 아르가 강 다리를 건너 카페에서 빵과 커피를 주문했다. 홀로 온 여행이지만 같은 여행사에서 온 여행자들과의 관계가 형성되고 있었다. 자유롭고 싶었는데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 되어 가고 있다.


알베르게 안내표지

카페에서 나와 오늘의 알베르게를 찾아갔다. 도시에서 도시를 찾아가는 길은 어렵지 않은데 알베르게 찾는 것이 쉽지 않았다. 글씨도 낯선 데다 거기가 거기 같고 여기가 여기 같았기 때문이다. 핸드폰의 길 찾기가 없었다면 알베르게 찾는데 더 많은 어려움이 있었을 것 같다.

내 핸드폰은 좀 오래되었다. 용량도 부족하고 배터리가 빨리 달아 가득 충전해도 금방 바닥이 나곤 했다. 순례길 마지막 지점 알베르게를 찾을 때쯤 되면 배터리가 부족해서 소리가 작아져 불안해지곤 했다. 핸드폰을 새 폰으로 바꿔오지 않는 것을 후회했다.

새로운 길에서 새로운 이들과의 만남은 여행의 묘미다. 순간의 스침이기 때문에 어쩜 찬바람처럼 상쾌한 것이리라. 그들과 나눈 따뜻한 정감은 알베르게에 들어와서도 내내 안개처럼 마음을 채웠다.

강가에서 처음 만난 이들과의 인연은 벌써 강물을 따라 흘러가 버렸다. 흘려보낼 수 있는 만남도 있고, 죽어서도 끊지 못할 인연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