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꽃처럼 뭇 생명들처럼
다음 날 아침 일곱 시, 짐을 차에 싣고 수비리로 향했다. 식당이 있어서 여행자들이 식사를 할 수 있어 좋았다. 난 누룽지를 물에 불려서 먹었다. 어제와 달리 날씨는 맑았다. 벌써 많은 사람들이 길을 떠났고, 좀 늦은 듯하여 조급하게 뒤를 따랐다. 우리 팀은 벌써 자취를 감추었고 외국인 몇몇이 걷는 것을 보고 따라 걸었다.
등산스틱을 사용해보지 않아서 조립하는 것이 서툴렀다. 스틱을 조립하느라 쩔쩔매고 있다 보니 어느새 외국인들도 어디론가 가버리고 혼자 남겨졌다. 길을 찾지 못하면 어떻게 하나 불안했다. 순간 혼자라는 사실이 덜컹 두렵고 겁이 났다. 남편과 함께 왔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 하는 맘이 들었다. 어렵고 힘든 순간이 되니 남편이 떠올랐다. 그토록 함께 가자고 애원하던 남편을 매정하게 뿌리치고 패기롭게 혼자 산티아고 까미노를 찾아와서 길을 잃자 제일 먼저 남편이 떠오르다니….
아이러니하게도 사람들은 자유를 원하면서도 막상 홀로 있는 것을 두려워한다. 안개에 묻힌 길을 따라 걷다 보니 갈림길이 나왔다. 어떻게 해야 하나 두리번거렸다. 마침 산티아고 까미노 표시가 눈에 띄었다. 산티아고 까미노는 길이 단순하고 까미노 표시가 잘 되어 있어서 혼자 길을 걷는 것도 좋은 것 같았다. 아니 대부분의 순례자들은 홀로 걸으며 자신과 대면하는 순간을 찾고자 한다. 순례자들의 모습이 하나, 둘 눈에 뜨였고 마음이 차분해졌다.
나는 사람들의 갈등이 힘들어서 누군가와 가까운 관계가 되는 것을 두려워한다. 남편 외에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거나 친밀한 관계를 만들지 않는다. 그래서 특별히 가까운 사람이 없다. 남편을 따라 여러 도시를 전전하다 보니 학교 동문들도 소식이 끊겼고, 친정식구들과도 일 년에 한두 번 정도 보는 게 다다. 그냥 홀로 일을 처리하며 살아가는 것이 체질화되어 있다. 하지만 어려움에 봉착했을 때 소외감과 오직 혼자라는 절박함이 산다는 일에 버거움을 느끼곤 한다. 이것은 누구의 탓도 아닌 타인들을 밀어내는 내 태도 때문이다. 사람들과 관계를 맺을 때 동조하거나 단절하거나 둘 중 하나의 길을 선택한다. 그래서 사람들과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거리에서 지낸다. 내 삶이 보다 즐겁고 행복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생각, 느낌, 원하는 것 등을 표현하면서 관계를 조율해 나갈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갈등이 생겼을 때 회피하거나 동조하거나의 방식은 결코 진정한 관계를 만들 수 없다.
일행보다 늦은 출발과 등산 스틱 조립이 서툴러서 혼자 길을 찾아가느라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여행의 큰 소득이다. 수비리로 가는 길은 낮고 평탄한 구릉지다. 간간이 풀을 뜯는 소, 말 들이 보였다. 초지 비율에 비해서 말이나 소의 수가 많지 않은 것을 보면서 자연과 어우러져 살아가고자 하는 스페인 국민들의 의지가 보였다. 자연을 훼손하면서 많은 이윤을 얻으려 한다면 자연은 파괴 될 것임을 그리고 그 자연이 파괴된다면 자신들의 가장 큰 유산을 후손에게 물려줄 수 없다는 것을 이들은 잘 알고 있는 것이다.
신선한 공기와 새싹이 움트는 4월 들판은 싱그러움으로 가득 찼다. 아침 햇살이 푸른 초원을 부드럽게 비춰 주었고 키 작은 풀꽃이 빗물로 얼굴을 씻고 수정같이 빛났다. 그 작고 여린 풀들이 땅바닥에 낮게 깔리어 긴 생명력을 유지하는 것이 참 신기하기도 하고 어여쁘기도 했다. 화려한 장미는 꺾여서 잠시 화병에 담기거나 금세 시들어 휴지통 속으로 사라진다. 들꽃은 맑은 태양과 신선한 공기, 아름다운 별빛들의 사랑을 받으며 행복하게 자신의 삶을 온전히 누리다 간다. 들꽃은 자신을 고집하지 않는다. 누군가의 동조를 바라지도 않는다. 누군가와 단절하지도 않는다. 있는 그대로 자신을 보여주고 있는 그대로 단지 살아갈 뿐이다. 들꽃처럼 생명력 있는 삶을 살고 싶다. 들꽃처럼 존재만으로도 귀한 이가 되고 싶다.
한참을 걷다 보니 길가에는 작은 시내들이 하늘을 안고 흘러가고 있었다. 그 시내를 건널 수 있도록 군데군데 놓인 돌다리들이 비에 젖어 미끄러웠다. 맑고 투명한 물결에 나뭇잎이 동동 떠내려 갔다. 시냇물 흐르는 소리를 자장가 삼아 더러 수명을 다한 나무들이 통째로 누워 길을 막고 있기도 했다. 폭풍에 꺾이거나 쓰러진 나무와 수명을 다한 나무와는 누워있는 모양이나 풍기는 느낌도 다른 듯했다.
목장을 지나갈 때 풍경소리처럼 청량한 방울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가 어디서 날까 궁금했는데 가만히 귀를 기울여이며 살펴보니 말, 소 등이 목에 방울목걸이를 하고 있었다. 그들이 움직 일 때마다 목에 차고 있는 종이 흔들리며 소리를 냈다. 방목하는 가축들이 길을 잃거나 도주했을 때 찾을 수 있게 하고자 함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수비리로 가는 길에서 넓고 푸른 초지와 그곳에 깃들여 살아가는 생명체들과 조우했다. 사람은 사람대로 자연은 자연대로 조화롭게 살아가려는 모습들이 가슴에 와닿았다. 여린 풀꽃의 싱그러운 모습, 쓰러져 누운 나무마저 의연하게 보였던 것은 생명이 있는 것들은 모두 생로병사를 거쳐간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그 속에서 서로서로의 역할에 만족하며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귀하고 소중하게 여기며 존재하는 모습이 좋았다.
그러고 보면 내가 살아온 여정도 만만치 않는 세월이었다. 살면서 마음의 갈등을 겪었던 많은 부분들이 어쩜 바람에 쓸려가는 먼지 같은 것들 인지도 모른다. 들꽃처럼 뭇 생명들처럼 바람 불면 바람에 흔들리고, 비 오면 비에 젖어 지금 이 순간을 내 삶의 가장 축복된 시간으로 맞이하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수비리 가는 길에 살아 숨 쉬는 모든 것들에게 고개 숙여 경의를 표한다. 수비리 가는 길은 푸르렀고 맑고 평화로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