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by 최정선

갑자기였다.

갑자기 오래전에 돌아가신 엄마가 생각났다. 주체할 수 없는 울음이 터져 나왔고, 울고 있는 나 자신도 당황스럽기까지 했다. 그리움은 이런가 보다. 시도 때도 없다. 오래전 그때 갑작스레 엄마랑 긴 이별을 하게 되었다. 금방 같이 저녁을 먹었고 조금씩 차도가 보이는 병환에 제법 긴 시간 마주 보고 이야기도 나누었고 남편과 딸아이의 안부도 물었다. 일상의 저녁이었다. 그러다 갑자기 호흡곤란으로 짧은 유언도, 사랑한다는 이별 인사도 못 나누고 황망히 긴 이별을 했다. 이게 무슨 일인지 실감도 안 나고 연극을 하고 있나? 무대도 상황도 성글게 겉돌기만 한 이별식을 그렇게 정신없이 치렀다. 그 후 다시는 엄마를 만나지 못했다. 인사도 없이 헤어져서일까? 20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언제나 어디서나 불쑥 엄마를 부른다. 둘째 딸을 낳고 산후조리 할 때도 내내 엄마가 생각났다. 옆에 안 계시니 어리광을 부릴 수 없어 아프다라는 말도 감정도 필요 없었다. 아픈데, 보고 싶은데, 갓 태어난 딸을 안고 내내 엄마를 불렀다. 그리웠다. 아픔보다 보고 싶어서 울었다.


돌아가시고 몇 년 후 새 아파트를 장만했다. 날 듯이 기뻤다. 이래서 살림 늘리는 재미가 있다고 했나보다. 딸들 다 시집보내고 막내딸이 전세 사는 것이 못내 미더워 집에 올 때마다 살림살이를 애꿎게 구박하셨다. 외식이라도 하자면 이렇게 맘 놓고 쓰면 언제 집을 사냐면 끝끝내 찬 없는 집밥을 드시곤 했다. 그렇게 아껴 이제 집 장만 했는데 엄마가 안 계신다. 새 가구가 들어오고, 새 그릇에 음식을 담아 귀한 사람을 불러 집들이했다. 엄마가 필요했다. 분명 엄마표로 김치 버무리고, 집채, 오징어회. 도라지무침, 과일샐러드를 준비할 것이고 최고로 기분 좋을 때 나오는 갈치구이와 한우 갈비찜도 준비할 텐데. 마치 안주인이 없는 집들이처럼 바쁜 와중에 헛손질만 하며 바빴다. 엄마가 없는 집들이 밥상에는 알록달록 색깔은 곱지만 엄마 맛이 없다. 아무리 채워도 채워지지 않아 허기가 졌다. 엄마가 보고 싶었다.


얼마 전 족욕장에서도 엄마를 불렀다. 친구랑 같이 맛있는 것도 먹고 피로도 풀 겸 족욕을 하는데 맞은편에 늙은 모녀가 보인다. 둘 다 할머니다. 엄마도 호호 할머니, 딸도 호호 할머니. 딸이 엄마의 두 발을 정성스레 닦아 주는데 샘이 났다. 나도 울 엄마 발 닦아 드리고 호강도 시켜 드리고 싶은데. 엄마가 안 계신다. 신혼살림에 친정집에 갈 때마다 도둑 딸이 되어 뭐든 가져왔다. 바리바리 싸주시는 보따리도 모자라 안에 뭐든 더 쑤셔 넣어야 직성이 풀렸을 때다. 바보. 맞다 바보다. 엄마께는 그래도 된다고 생각했다. 뭐든 다 퍼 주는 것이 당연한 것인 줄 알았다. 이런 바보짓만 하다가 이제는 조금이라도 챙겨 드릴 수 있는데. 맛있는 것만 먹어도, 좋은 곳에만 가도, 아이가 좋은 대학에 합격해도 제일 먼저 엄마가 생각난다. 갑자기 훅 들어온다.


그러다 감정 오류가 생기면 눈물이 쏟아진다. 서럽고, 보고 싶어서 “엄마~ 나도 엄마 보고 싶다” 소리 내서 엉엉 운다. 아예 두 다리까지 쭉 뻗으며 대성통곡을 한다. 한참을 울다 보며 불쌍한 엄마 때문인지, 불쌍한 나 때문인지 이유도 불분명해지고, 이런 내 모습에 실실 웃음도 나온다. 당황의 극치다. 웃음 치료도 있고 울음 치료도 있다더니 실컷 울고 나면 배도 고프고 입맛도 당긴다. 냉장고에서 이것저것 꺼내 밥을 먹는다. 엄마랑 겸상한다.‘이래 살아요. 덕분에 잘살고 있어요. 이 모든 거 다 전부 다 엄마 덕분입니다. 잘 살게요’말을 건넨다. 갑자기 목이 매인다. 살아 계신다면. 생전에 좋아했던 꽃구경이라도 같이 갈 텐데. 그립다.


서울에 있는 딸아이가 전화가 왔다. 갑자기 보고 싶단다. 엄마가 제일 좋다고, 울 엄마 최고라고 비행기를 태운다. 난 엄마께 최고로 좋다고, 사랑한다고 말도 못 했는데 딸들은 술 술 잘도 나온다. '난 효도받을 자격없는데. 난 사랑받을 자격없는데...' 딸들의 사랑고백에도 엄마가 생각난다. 엄마 생각에 빠진 틈을 타 딸들이 본심을 들어낸다. 엄마가 최고라는 고백은 서곡이다. 서곡 행진이 끝나면 항상 마무리는 엄마 카드다. 그러면 그렇지. 그래도 좋다. 카드가 있어서, 엄마 노릇 할 수 있어서, 엄마 소리 들을 수 있어서, 딸에게 그리움 속 엄마가 아니고 카드를 쓸 수 있는 엄마라서. 이렇게 모녀간의 사랑을 흘러 가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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