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박제
작년에 딸들의 성화로 가족사진을 찍었다. 벽에 커다랗게 고정된 사진을 걸어 두는 것에 별 의미를 두지 않아 지금까지 사진관까지 가서 찍은 사진은 없었다. 혹 다른 집을 방문해도 부럽지 않은 것이 가족사진이었다. 다 큰 자녀가 있는 집에 어린 시절 모습이 사진에 남아 있고, 작고한 가족 구성원과 함께 찍은 사진을 볼 때 편하지는 않았다. 갓 새 식구가 된 며느리가 빠져 다시 찍어야 할 가족사진도 있었다. 이렇게 가족사진의 유효기간은 짧고 무엇보다 가족사진을 쳐다봐도 아무런 감정이 없으니 지금까지 안 찍은 것 같다. 딸들이 사진관을 예약하고 의상도 맞추자 했다. 딸의 호들갑과 달리 각지에 떨어져 있고 서로 쉬는 날짜도 달라 겨우 일정을 맞춰 날을 잡았다. 요란스럽게 꾸밈도 없이 각자 청바지에 흰색 상의를 입고 찍자고 했고, 연출 화장도 없이, 머리 손질도 없이 바쁜 일정을 마치고 그냥 편하게 갔다. 가족사진을 전문으로 하시는 사장을 바로 알아봤을 것 같다. 이번 가족은 야단스럽지 않을 것이라고.
의자가 소품이 되기도 하고, 클래식 소파에 편하게 앉아서 찍기도 하고, 하얀색 벽에 기대어 서로 마주 보며 찍는 장면들을 연출하란다. 카메라 플래시가 연신 터진다. 가까이서 마주 보니 어색하다. 억지웃음이 표가 난다. 역시나 사진관 사장님께 너무 뻣뻣하다고 경고받았다. 딸들과 남편과 자꾸 눈을 맞추란다. 눈을 바라본다. 미소를 짓고 있으란다. 찰칵 소리를 기다리는데 생각보다 길다. 그 짧은 시간에 긴 생각이 들었다. ‘우리 딸이 언제 이만큼 자랐지? 배 아파 낳은 지가 어제 같은데 참하게 자랐구나. 일한다고 제대로 보살펴 주지도 못했는데 성인이 되어 독립했구나’ 미안하고 고마웠다. 갑자기 생각지 못한 감정들이 명치끝을 찌르르 찌른다. 왜 이런 감정이 들었는지 지금도 이해되지 않지만, 큰딸과도 작은딸과도 시선 교환이 편하지 못했다. 심지어는 이 가족의 엄마로서 아내로서 잘해 왔는지에 대한 회한도 들었다.
제일 힘든 연출은 부부 사진을 찍을 때다. 평생을 늦게 들어오는 일을 하다 보니 오순도순 저녁 시간도 보내지 못했고, 가까운 거리에 있는 공원 산책도 여유 있게 못 해보고 30년 세월이 훌쩍 지나갔다. 그러니 자연스레 사진 찍을 기회가 적었고 인제 와서 서로 감싸주면서 눈맞춤하고 웃으라는 미션이 너무 어색해 계속해서 NG가 났다. 돌아보니 둘이 마주 보고 웃은 기억도 가물가물하다. 선하게 웃는 모습이 좋아 3초 만에 사랑에 빠졌는데 그 선했던 미소 사이에 주름은 깊어지고 흰머리가 희끗희끗한 낯선 얼굴의 중년 남자가 웃고 있다. 가장의 무게가 무거웠고, 직장에서도 영혼을 바칠 만큼 수고했으리라. 남편의 깊은 주름에 눈을 맞출 수 없어 고개를 돌렸다. 잠시 마음이 아렸다. 아쉬운 세월과 수고한 남편이 필름에 담긴다. 이것이 회한인가? 한편도 느껴보지 못한 감정이 들었다.
내가 아닌 내가 엄마가 되어 아내가 되어 두 딸과 나란히 팔짱을 끼고 웃으면서 남편을 바라보는 사진이 거실에 걸려 있다. 아무리 기술과 기교를 부려도 그 어색함은 싹 뺄 수는 없었나 보다. 오늘도 아무도 없는 거실에서 커피를 마시며 사진멍이다, 사진관에서 만든 웃음과 억지 연출로 느꼈던 가공된 가족애. 그래도 좋았다. 다 같이 모여 같은 곳을 바라보고, 아이컨텍을 했고, 추억을 남겼다. 사진에는 담을 수 없는 보이지 않는 그때의 감정이 박제되었는지 웃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니 얼굴에 미소가 번진다. 행복해서 웃는 것이 아니라 웃으면 행복하다듯이 단란한 모습으로 가족사진을 찍고 보니 단란함이 인증된 것 같다. 이제 세월이 가져다준 여유와 가장의 수고와 바르게 자라 준 아이들의 성장을 매일 본다 감사하다. 행복하다. 이것이 가족사진이 주는 매직인지 자꾸 눈길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