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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을 끓일 때

by 조은영 GoodSpirit

라면을 끓일 때 나는 네가 생각나 내가 아팠을 때 네가 한 솥 가득 끓여준 감자탕도 아니고 베이킹에 한창이던 네가 구워준 쿠키나 마들렌도 아니고 하필 라면을 보면 말이지 우리가 라면을 함께 끓일 때 네가 했던 말 때문에 네가 결혼한 지 얼마 안 된 새댁이었다고 했나 여럿이 커다란 냄비 앞에 둘러서서 라면봉지를 뜯고 팔팔 끓는 물에 라면을 하나둘씩 집어넣을 때였어 너는 라면을 반으로 뽀개지 않고 그냥 통째로 집어넣었지 그걸 보고 누군가 쏘아붙이듯 했던


자기는 라면도 끓일 줄 몰라? 라면은 반으로 뽀개서 넣어야지


참 기가 차서 라면 끓이는 법이라니 그런 게 있기나 하나 라면 봉지 뒷면에는 이런 말이 있기는 하더라 물 550ml를 붓고 끓으면 면과 스프를 함께 넣고 4분 30초를 더 끓이면 된다고 하지만 어디에도 반으로 뽀개서 넣으라는 말은 없거든 그런데 말이지 물양도 끓이는 시간도 사실 각자의 기호대로 조절할 수 있건만 어째서 그런 말을 했을까 이제 젖먹이를 키우는 너는 육아에 살림까지 해내느라 안간힘을 쓰고 있는데 어째서 라면도 끓일 줄 모르는 사람으로 만들었을까 왜 긴 면발을 선호해서라는 생각은 못했을까 나는 지금도 그때의 너의 표정과 목소리가 기억나 그래서 라면을 끓일 때면 종종 네가 생각나 네가 생각나면 어김없이 라면을 뽀개지 않고 통째로 넣지 다행히 라면도 끓일 줄 모른다고 면박을 주는 사람은 없거든 이국 땅에 사는 너에게도 이제 그런 사람은 없겠지


없기를 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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