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월사금

잃어버린 월사금 양월송

by 양월송

엄마처럼 나를 사랑해 주던 큰언니가 병원에 입원을 하셨습니다.

뇌경색으로 말씀도 못 하시고, 식사조차 힘든 위중한 상태입니다. 병상에 누워 계신 언니의 모습을 보는 순간, 문득 수십여 년 전, 세상을 떠나시던 어머니의 모습이 겹쳐 보였습니다. 가슴이 먹먹해지고, 마음 한쪽이 툭 하고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 언니는 언제나 오빠와 언니들과 시골집에 내려가면 버선발로 뛰어나와 어서 와라, 바쁜데 왔니? 하시며 반가워서 어쩔 줄 몰라하시던 언니이십니다. 손을 꼭 잡아 반겨주시던 그 따뜻한 손길은, 그 자체로 엄마의 품 같았습니다. 그런 언니가 아파 누워 계신 지금, 내 목은 자꾸만 메고 눈시울이 뜨거워집니다.


어릴 적, 우리 집 형편은 넉넉하지 않았습니다. 살림이 빠듯하고, 먹고사는 것도 늘 어려웠지만 언니의 교육열만큼은 누구보다 강했지요 어려운 살림 속에서도 언니는 동생들 공부만큼은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시절, 우리는 국민학교에 다녔고, 언니는 며칠씩 남의 집 일을 해주며 받은 품삯으로 우리의 월사금을 챙겨주셨어요. 언니는 평생을 그렇게 사셨습니다. 동생들을 보살피며, 남의 집 일로 생계를 이어가고, 밤이면 배틀 앞에 앉아 무명 배, 모시 배를 짜느라 잠을 설치셨습니다. 배불리 먹지도 못했을 텐데도, 힘든 기색 하나 없이 늘 웃으며 우리를 돌보아 주셨습니다. 그 희생이 있었기에, 오늘의 내가 이 자리에 있습니다.


그날도 언니는 작은 오빠보다 나에게 먼저 품삯으로 받은 월사금을 챙겨 주워 좋아하면서 학교에 가지고 갔지요. 그 당시에는 치마저고리를 입고 사는 때라 호주머니가 없어 치마 앞에 돈을 얹어 구겨 넣어 두고 땅따먹기 놀이를 하며 놀다가 무심코 일어나 손을 씻고 교실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그제야 알았습니다 돈을 잃어버렸다는 것을 운동장에 달려가보았지만 그 돈은 없었습니다.


60여 년 전의 일이지만 결코 작은 돈이 아니었지요. 뙤약볕 아래서 언니가 흘린 땀방울의 대가였을 그 돈을 나는 그 귀한 돈을 잃어버렸습니다. 어린 마음에도 죄스러워 그날 저녁밥도 먹지 못하고 이불을 뒤집어쓴 채 울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그 일이 있고, 선생님은 학년 말인 것 같습니다. 월사금을 내지 않아서 우등상을 줄 수 없다며 상을 주지 않았습니다. 다른 친구들은 좋아서 상을 받아 갔는데 나는 못 받아 서운했습니다. 결국 언제 다시 돈을 내고 상장을 받았는지조차 기억이 없습니다. 다만, 잃어버린 월사금과 그로 인한 죄책감, 그리고 그 돈을 마련하기 위해 고생하셨을 언니의 모습은 오래도록 내 마음속에 남아 있어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병상에 누운 언니의 손을 잡으며, 나는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마음속 깊이 고백합니다. "언니, 정말 미안하고 고마웠습니다. 언니의 사랑은 잃어버린 월사금보다 훨씬 더 크고 깊은 마음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언니는 월사금을 잃어버린 나를 나무라지 않으셨고. 그저 내가 미안해할까 봐, 어린 나이에 상처받을까 봐, 조용히 품어 주셨던 것입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언니는 내게 엄마였습니다." 그렇게 귀하고 소중하다고 생각한 큰 언니의 아픔은 무슨 말로 위로가 되지 않습니다.


성실하게 열심히 우리 남매들을 위해 헌신하신 언니의 삶을 본받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