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구미를 아시나요?

by 양월송

바구미를 아시나요?

양월송


설날 아침에 떡국 한 그릇을 먹고 나니 80이란 나이가 성큼 다가와 있어 도대체 무엇을 하다 이 나이가 되었지요?


나는 가래떡이나 쌀을 볼 때마다 바구미 때문에 폐를 끼친 그때 그 어르신의 일이 생각이 납니다.


제 나이가 그 어르신의 나이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난처하고 난감하면 어찌할 바를 몰라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다는 말이 실감이 나게 되었습니다.


애들이 어릴 때 아주 오래된 일인데 쌀에서 나온 바구미 때문입니다. 시골에서 쌀을 보내줘서 먹고살기 때문에 일 년의 식량이라 할 수 있었지요. 항상 가을에 찧은 쌀을 보내주셔서 여름이 되어도 벌레가 나오지 않았는데 이 쌀은 설을 지나 2월쯤 찧어 보내준 것 같아요. 가마니도 지금처럼 마대자루나 비닐포장이 되어 있지 않고 볏짚으로 엮은 가마니이었지요. 그러니 바구미가 쉽게 나 올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도대체 이것이 뭣이여” 너무 놀랐습니다.


자세히 보니 쌀에서 나온 벌레 종류이었습니다. 쌀벌레는 기어 다니는 것만 보았는데 이것은 하루살이처럼 까맣고 날아다니기도 했습니다.

이웃집에서 알곡을 까부르는 키라는 것을 빌려다가 하루 종일 골목 그늘에 앉아 일을 했습니다. 까부르고 물로 씻겨 보내고 발로 비비고 애들과 싸우며 하루 종일 일을 한 것 같습니다, 피곤해서 일찍 잠을 자고 아침에 일어났는데 골목에 사시는 어르신께서 오셔서 애기 엄마야 엊저녁에 바구미 때문에 힘이 들었어하신다. 어 머나 어떡해요 죄송해요 생각만 해도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어르신께서 아드님이 교통사고로 일 년을 넘게 식물인간으로 병석에 누워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며느리와 함께 병간호를 하는데 저녁에 벽으로 까맣게 바구미가 내려와 환자의 코와 귀로 들어갈 것 같애 화장지로 막았다고 하셨습니다. 놀란 며느리와 아침까지 빗자루로 바구미를 쓸어내도 한 없이 내려와 저녁에 잠을 한 시간도 주무시지 못했다 하셨습니다.


집은 옛날 허름한 단독주택인데 시멘트 브로크로 엉성하게 지은 집이었습니다. 바구미가 낮에는 더워 담벼락을 타고 올라가 지붕사이에 있다가 밤이 되어 벽을 타고 환자가 누워계신 방으로 내려온 것이었습니다. 손주가 퇴근해서 집에 오니 할머니와 엄마가 환자인 아버지의 코와 귀를 화장지로 막아놓고 빗자루로 바구미를 쓸고 있는 모습을 보고 불 같이 화를 내며 우리 집으로 쫓아가겠다는 손주를 겨우 붙잡았노라 하셨습니다.


나는 그때까지도 어르신께서 일 년이 넘도록 식물인간이 된 아드님의 병간호를 하신 줄 몰랐습니다. 얼마나 마음이 아프고 힘드셨을까요? 죄송하고 미안하다는 말을 어찌 다 표현할 수 있었겠습니까. 정말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같은 골목에 살고 있어 자주 지나면서 어르신을 만났지만 그 고통을 받고 계신지 모른 어리석고 철부지이었습니다. 죄송스러운 마음에 얼굴을 제대로 들지 못했지요. 그런 저에게 어르신께서 다가와 제 등을 토닥여 주시며 애기 엄마야 너무 미안해 하지마소 하셨습니다. 많이 힘드시고 화나신 것인데 화도 내지 않으신 점잖하신 어르신의 성품에 절로 고개가 숙여졌습니다.

아침에 먹었던 떡국이 괜히 신경이 쓰였습니다. 나이만 먹지 말고 이웃을 이해와 배려심의 나이도 함께 먹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후로는 피해 끼치지 않는 삶을 살려고 노력했지요. 여름이 되기 전에 쌀에 바구미를 나오지 못하도록 마늘과 사과를 쌀가마니에 넣어 보기도 하였습니다.


애들과 사는 게 힘들다 하지만 어르신의 마음을 풀어드릴 수 있도록 진심으로 사과를 드렸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때 일을 생각을 하면 잠을 자다가 잠이 깨어졌어요 저 같았으면 버럭 화를 내고 야단을 쳤을 텐데 인자하신 어르신을 만나 제가 어려운 난간에서 쉽게 넘어간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어르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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