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은 곳에 임하리

마흔 넘어 다시 쓰는 전 직장인, 현백수의 일기

by 태태

몇 년간을 방송국에서 일했다.


방송국이라는 공간에서 IT업계로 가게 된 것은 큰 이유는 아니고 그냥 질려버려서였다. 어느 정도냐면 드라마와 예능을 보지 못할 정도였다. 프로그램에 나오는 빛나는 연예인을 보면 저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자신을 갈아 넣은 수많은 사람들이 떠올라 웃을 수 없었고 버거웠다.


한참 심할 때는 '미생'이라는 드라마를 보면 한없이 분노에 휩싸여 결국 나는 미생을 끝까지 보지 못했다. 저 바닥밑에서 열심히 일하는 누군가를 우리는 왜 따스하게 대할 수 없고 우리는 왜 그들을 더 밑으로 내려야 하며 본인이 올라가기 위해서는 엄청한 희생이 필요한 걸까. 감정의 깊이가 깊어질수록 일하는 것이 힘들어졌고 그 당시 IT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나는 그저 멋져 보인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 업계에 발을 디뎠다.


"디지털" 이 얼마나 멋진 단어인가!


회사에 입사하기 위해 면접을 보는 내내 고민이 커졌다. 아무튼 IT 경력이 없는 나를 회사가 뽑아줄 리 만무했고 나는 회사가 주최하고 있는 온라인 4주 캠프에 참석하기로 했다. 인사팀으로부터 이 캠프에서의 성적과 노력여하에 따라 입사가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메일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유럽시간으로 시작된 이 캠프는 너무 고통스러웠다.

퇴근 후에 매일 온라인으로 수업을 듣고 숙제를 제출하고 시험을 봤다. 마치 학생 때로 돌아간 것 같았고 전혀 알 수 없는 내용들로 가득 차서 내가 정말 이해는 하고 있는지 알 길조차 없었다. 그렇게 4주 후에 대단원의 막을 알리는 시험은 치러졌고 솔직히 나는 겨우 겨우 합격선을 넘었다. 4주의 고통이 그렇게 허무하게 끝나버린 것이다.


기대는커녕 낙담과 함께 차라리 혼자서라도 코딩을 공부하여 지식을 쌓자라는 생각에 학원을 알아보고 있는 찰나에 인사팀에서 연락이 와서 QA Engineer부터 시작해 보면 어떻겠냐는 제안이 왔다. 무려 직급은 Junior 0!!! (느낌표를 백개는 찍고 싶지만 생략한다)


머리가 띵했지만 회사로써는 너무 당연한 이야기였다.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그 어떤 직급을 달고 시작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다. 여기서 제로부터 시작해서 도대체 어느 정도 후에 나는 제대로 된 궤도 위에 올라갈 수 있을까 가슴이 먹먹했다. 거절하면 그만이었지만 이번 기회를 놓치면 그 누구도 나에게 제로부터 시작할 기회조차 주지 않을 거라는 두려움도 함께 밀려왔다.


나는 답신 메일로 나의 경력을 줄줄이 읊고 비록 지금은 가장 낮은 레벨에서 시작하지만 나는 반년 후에 반드시 성장할 거고 내 목표는 PM(Project Manager)라고 말했다. 회사에서 나를 믿고 키워달라고 반년동안 나를 지켜보고 평가해 달라고. 도대체 그런 당돌한 말이 어떻게 나왔는지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지만 나는 아직 젊었고 열정이 있었다.


그렇게 나는 Junior 0 QA Engineer로써 프로젝트에 투입이 되었고 일을 병행함과 동시에 밤을 새워가면서 자격증을 따고 코딩을 공부하고, 매니저에게 더 많은 프로젝트를 달라고 졸랐다. 그렇게 하루 3~4시간의 잠이 이루어낸 결과는 어느새 개발자들의 결과물을 그들의 샌드박스에 들어가 집적 테스팅하고 제대로 체리 픽킹(실제 프로덕션에 올라가기 위한 코드를 발라내는 일)이 되어있는지 열심히 GitHub(코드 저장소)를 둘러보고 함께 개발의 방향을 논의하는 지점에 이르렀다.


새로운 것을 배우는 과정이 즐거웠고 고통보다는 내가 무엇인가를 이루어 내고 있다는 성취감이 나를 행복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나는 그 회사에서 좋은 평가를 받아 PM이 되었고 더 빨리 더 위로 올라가고 싶은 욕심에 한꺼번에 3, 4개 많게는 5개의 프로젝트를 소화해 가면서 점점 IT라는 곳에 스며들었다.


QA부터 시작하지 않았으면 절대 이뤄낼 수 없는 일들이었다. 차근차근 쌓아갔기에 개발자들과 소통할 수 있었고 가장 낮은 곳에서부터 시작했기에 위로 올라가면 잊힐 수 있는 기초와 디테일에 집착하게 되었다. 제로부터 시작한 결과는 퍽 만족스러웠고 그 후 모든 직장생활의 탄탄한 지지대가 되어주었다.


뭐 아무튼 이상하게도 그 후로는 드라마도 예능도 볼 수 있게 되었다.


가장 낮은 곳에서 시작된 나의 커리어는 아주 높은 곳까지는 아니지만 낮은 곳을 돌아보고 회상할 수 있는 여유 정도는 갖출 수 있는 곳까지는 도달하게 되었다. 그때의 성취감과 충만감이 나에게는 평생의 보약이 된 것이다.


백수가 된 지금 마음이 아려질 때면 생각한다 그때의 나를.

스스로에게 취해서 내가 얼마나 노력했는지 얼마나 힘들었는지 그러고 얼마나 나아갔는지. 그렇게 또 과거에만 머물러 곱씹고 곱씹고 또 곱씹다 보면 결국 내 본질은 아직도 낮은 곳에 있는 것은 아닌지 슬퍼진다.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과거에서 미래로.


나는 오늘 현재를 또 제로부터 가장 낮은 곳에서부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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