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년 동안 나는 한 동네에서 아이들에게 수학을 가르치는 일을 해 왔다.
교육학을 전공한 것도 아니고 수학전공자도 아니고 누군가의 선생님이 될 깜냥의 사람도 아니라고 생각해 왔는데,
결혼과 동시에 백수가 된 내 짧은 새댁이 시절에 어찌어찌하다 보니 우리집 윗 층에 살던 중1소녀의 과외쌤이 되었고 동네 마당발이셨던 내 첫 제자의 어머니덕분에 여기저기 내소문이 나기 시작해서 지금껏 수업이 끊이지 않고 그 흔한 전단지 한 장을 돌리는 일이 없이 나는 18년 동안 동네 아이들을 가르쳐 왔다.
처음부터 남을 가르치는 일보다 자기개발에 관심이 많던 개인주의적인 사람이라 잠깐 아르바이트처럼 혹은 부업이라고 여기던 일을 10년 이상을 하게 되면서 깨달았다. 내가 몰랐던 나의 적성을.
한 가지의 일을 10년 이상을 한다는 것은 그 일이 나에게 맞는다는 뜻 같았다. 최소한 오래 해낼 수 있는 일인 것은 확실했다. 또 40대에 접어들면서 주부의 역할을 병행하면서도 오랫동안 해 올 수 있는 나의 일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깨달았고 그때서야 나는 나의 직업으로써 나의 개인과외교습자일상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나는 우리지역 교육청에 개인과외교습자로 등록된 사람이다. 1인 업체이다보니 어디에도 인정받을 데가 없었는데 한때 유행한 학파라치 덕분에 공공기관에 등록하고서는 처음으로 어딘가 소속된 사람으로써의 뿌듯함을 느낀 적도 있었더 랜다.)
오랫동안 누군가를 가르치는 일을 하다보니 나에게는 직업병처럼 대화를 할 때마다 상대방의 눈과 표정을 살피는 버릇이 생겼다.
가르친다는 일의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작업이 이 아이가 나의 말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받아들였는지 확인을 하는 일이다. 어디까지 이해가 되었는지 확인을 해야 다음의 단계로 넘어 갈 수가 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네~ 알겠어요." 하고 고개를 끄덕이지만 눈빛과 표정을 들여다보면 완전히 이해한 자신감 넘치는 아이들도 있는 반면,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채, 또렷하지 않은 눈빛을 보내는 아이들도 있다. 그럼 새로 다시 시작해야 한다. 그러다보니 그 또렷하지 못한 눈빛들을 골라내느라 내가 얻은 직업병은 사람관찰하기다.
이 직업병은 수업에서 뿐만 아니라 새로운 누군가를 만나 대화를 할 때에도 적용이 되었다. 상대방이 내 이야기에 얼마나 집중하는지, 어디서 재미있어하며 눈을 반짝이는지 혹은 집중력이 흐트러지지는 않는지, 따분해하고 지루해 하는 지점을 살피면서 대화를 이어 나간다. 그러다 아예, 듣고싶지 않은 표정의 상대방을 발견하고 이내 대화의 주제를 자연스럽게 다른 곳으로 돌리거나 쿨하게 대화를 접기도 한다.
그렇게 예민하게 사람을 관찰하다보면 낯설은 사람들의 특징도 잡아내게 된다.
대화를 할 때 눈을 마주치는 것을 어색해 하는 사람, 당황하면 표정이 흐트러지는 사람, 모든 대화를 자기중심적으로 풀어나가야 만족스러운 사람, 반대로 자기 얘기는 절대 안하지만 다른 이의 이야기를 듣기 좋아하는 사람, 매사에 흥미가 없다가 이성이 나타나면 적극적으로 대화를 주도하는 사람, 또 분위기를 주도하다가도 낯선 사람이 등장하면 조심스러워 지는 사람, 특정한 주제에만 꼽히는 사람, 흥미가 없으면 산만해지는 사람, 자기 아이의 이야기말고는 관심이 없는 사람, 남의 아이 얘기에는 관심이 없는 사람... 등등 수없이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을 관찰하는 일은 지루하지가 않다.
캠핑족들에게 불멍이 유행이라고 하던데 나는 가끔 멍하니 창 밖을 내려다 보며 사람들을 관찰하며 힐링을 하는 사람멍을 좋아한다.
그래서 2층인 우리집의 베란다가 나는 딱 좋다. 멍하니 지나가는 사람들을 쳐다 보고 있으면 같은 길을 지나가는 사람들이지만 걸음새도 다르고 가는 경로도, 가는 빠르기도 모두 제각각 다르다.
활기차게 걸어가는 누군가의 뒷모습이 유쾌해 보이는 날이면 나도 덩달아 기분이 활기차지고
울적하게 내딛는 걸음들에는 힘내라고 응원 한마디를 등 뒤에다가 외쳐주고 싶어진다.
물론 몇몇은 자기도 모르고 있는 부분에 대한 언급을 유쾌해 하지 않기도 한다.
예를 들어, 말하다가 눈빛을 한번씩 찡그리는게 예뻐보여서 그런 습관을, 나는 정말로 너무 기분좋게 보여서 알려 준 것이었는데, 상대편의 표정은 그닥 유쾌하지 않아 머쓱해 진 적이 있긴 했다.
그 이후로는 긍정적인 면도 속으로만 생각하고 다 좋은데 요런 점만 고치면 참 좋겠다 싶은 사람에게도 섣불리, 조언이나 충고를 하지 않는다. 그저 나 혼자만의 오지랖일수도 있으니까.
일상에는 그닥 쓰임새가 없는 나의 사람관찰하기 버릇이 사실은 글쓰기에 가장 도움이 된다는 것을 최근에야 알게 되었다.
사람과 사람사이에는 늘 무언가의 일이 생긴다. 좋은 일이든 나쁜일이든 굳이 생기는 새로운 일들에 각각의 방법으로 대처하고 헤쳐 나가는 모든 일상들이 가끔은 몹시 놀랍고, 몹시 사랑스럽고, 몹시 눈물나고, 몹시 행복하고, 몹시 아프다. 굳이 사람뿐만이 아니다.
세상이 돌아가고 그 중심에 있는 주체가 사람이니 유심히 사람을 더 보게 되는 것이지, 사람을 둘러 싼 세상의 모든 것을 유심히 관찰하다 보면 늘 새로운 마음으로 새로운 글이 절로 쓰고 싶어진다. 내가 보고 느끼고 알게 된 세상살이를 남기고 싶은 욕망이랄까.
오늘도 유심히 사람과 세상을 관찰하고 멋진 생각이 떠오르기를 바란다.
그러면 나의 이야기들이 더욱 풍성해질테니.
어느 날의 비멍 중에 발견한 까치 한 마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