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글을 쓰는 지는 정확하게 모르겠다.
글이라고 거창하게 말할 결과물도 없지만, 늘 일상을 문자로 기록을 남기는 삶을 추구하는 나는 과연 이 문자기록의 목적은 무엇일까?
엄밀히 따지면 나는 목적의식이 있다기보다는 글을 쓰는 게 편해서 쓰는 쪽이다.
이상하게 들릴 지 모르겠지만, 솔직히 나는 말을 하는 것보다 글을 쓰는 게 더 편하고 좋다.
가끔은 조심스럽게 말을 해야 할 때는 글처럼 한 문장을 완벽하게 완성하고 나서야 말로 내뱉는 어이없는 순간이 있을 때도 있다.
말을 잘 못하는 것인지 글쓰기가 더 편한 것인지 그 경계는 정확히 모르겠다.
또 말을 하는 것으로 돈벌이를 하는 직업을 가진 내가 말을 잘 못해서 글쓰기가 편하다하면 이 참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가르치기용 생계를 위한 언변과 나의 감정, 일상을 드러내는 말하기는 엄연히 다르기에 발생하는 아이러니라 해두자. 흠흠.
이 무슨 근거없는 자신감인가, 말하기보다 글이 더 편하다니 어이없다 싶겠지만 나같은 사람도 간혹 있지않을까?
입으로 내뱉고 나면 늘 아쉬움이 남는 언어보다는 오래 두고 보면서 다시 곱씹어 볼 수 있는 문자가 더 자연스럽고 편안한 사람.
어떤 이들은 말하기보다 몸으로 표현하는 게 더 편해서 운동을 잘한다거나 춤사위로 감정을 표현을 하는 사람도 있듯이 말보다 글로 표현한 감정이 더 편한 사람도 많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나는 늘 꾸준히 어딘가에는 구구절절, 별로 재미도 없는 내 얘기를 - 정확히는 재미가 없다기보다는, 재미는 개취니까, 관심거리가 되지 못할 평범한 나의 일상을 자꾸 집착하며 일기같은 글을 -정확히는 문자의 기록을 남기며 살아 왔다.
가끔씩 브런치라는 이런 공간에는 나처럼 말보다 글이 편한 사람이 많지 않을까하는 동질감이 느껴져서 더 아늑한 곳이다.
혹시나 진짜 단단하고 깊이있는 고뇌를 멋들어진 표현법과 특유의 문체로 녹여낸 멋진 글을 쓰고 계신 분들께 이따위 단어의 나열따위가 무에가 글이냐며.
문법도, 행간도, 문단 배열도 무시하고 나만의 갬성에 빠진 어설픈 문자의 기록 따위를 감히 글이라 인정을 받을 수 있을런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차마 말로는 전하지 못 했던 내 생각을 드러내기위한 최선의 방법으로 나는 이 어설픈 글쓰기를 선택했다.
가끔은 말로 했으면 더 좋았을 껄도 싶고 능숙하게
속내의 말을 잘 못하는 내가 답답하기도 하다.
지나고 나서 깊은 후회를 남기는 순간이 쉴 새없이 찾아 오지만, 그 후회의 감정 또한 오롯이 기억해두는 방법도 글을 쓰는 것뿐이다.
지난 밤에 우연히 스쳐지나다가 글쓰기의 목적에 관해 본질적인 깊이를 고뇌하시는 글들을 언뜻 보고서는 이렇게 목적의식없이, 아무 생각없이 글을 쓰는 내가 초라해보인달까. 초라까지는 너무 오바고, 목적이 없는 나의 글쓰기의 목적은 과연 무엇인가 진지하게 잠시 나도 고뇌해보기로 했다.
다른 이들의 글쓰기의 목적은 과연 무엇일까.
다른 이들의 목적을 살짝 염탐이라도 해볼까
싶지만은,
사실 나는 브런치에 가입을 하고 짬짬이 몰래몰래 발행이라는 거를 하긴 하지만 다른 사람의 글을 즐겨 읽는 편은 아니다. 아니 의도적으로 읽지 않는 편이라고 하는 것이 맞겠다.
진지하게 정독한 글이 손에 꼽힐 듯 하다.
첫 정독은 귀여운 그림을 그리며 진지하게 자신의 미래를 고민하는 어느님의 다짐의 글귀들에서 지난 20여년 전 질풍노도의 나의 모습을 겹쳐 떠올라 이 귀여운 님의 앞날들이 어디로 얼마나 멋지게 전개될 지 궁금하여 구독을 눌러주었고.
가장 최근의 정독은 의도와 목적을 또 내용이 어디로 전개될 지도 전혀 예측할 수 없지만 이상하게 자꾸 궁금해져서 꺼꾸로 뒤로 올라가며 읽게 되는 짧은 소설도 단어하나하나를 흘리지 않고 꼼꼼히 읽으며 그 뒷 얘기를 궁금해했다.
이 소설을 정독하게 된 것은 짐작할 수 없는 내용의 궁금증보다는, 나는 절대 쓸 수 없을 것 같은 정갈한 문체에 매료 된 것 같다.
그런 문체가 있다. 나와는 너무 다른 문체. 그런 글은 어쩔 수 없이 정독을 하게 된다. 왜냐하면 절대로 나는 써낼 수 없을 글귀들은 읽어서라도 그 감성을 배우기위해서다.
그리고 오랜 ㅡ 한때는 2인조로 활동하며 가족보다 더 가까웠던 오랜 친구의 출간 소식에 그녀의 글을 정독해보려고 기대에 들떠서 그녀의 책을 주문해두었다. 하지만 그녀의 글들도 아껴서 읽을 것이다. 그녀가 애쓰고 집어넣은 시간의 무게를 가늠할 수 있을 듯해서 그 시간의 가치만큼은 시간을 두고 아껴가며 읽고 싶다.
나는 그녀를 너무 잘 알면서도 또 너무 모르기 때문에 너무 잘 아는 그녀의 모습에 대한 선입견은 버려두고, 또 낯설은 그녀의 모습에도 객관적으로, 내 감정이입은 접어 두고 그저 오로지 글 속의 그녀만 보기위해 아껴서 곱씹으며 정독할 것이다.
사실, 이렇게 정독에 야박한 이유는 나는 아직 내가 무엇을 쓰는 지 확실하게 잘 모르겠다. 내가 쓰는 글이 무엇인지, 내가 어떤 사람으로 어떤 글을 쓸 수 있을지, 아직 나를 정확히 알 수 없다. 나를 확실하게 정하지 못하고 이 수많은 다른 사람들의 글을 읽다 보면 어느샌가 나는 나를 잃어버릴 것 같다. 내 색깔은 사라져 버릴 것 같다. 목적의식은 없지만 내게도 나만의 빛깔은 있겠지.
나도 모르는 그 빛깔을 내가 뚜렷하게 그려 낼 수 있을 때 자신있게 다른 이들이 형형색색의 아름다운 글의 빛깔들도 온전하게 받아들이고 그 아름다움에 제대로 감탄하게 되겠지.
오늘도 나의 빛깔을 찾아서 가~ 보자으~
브런치팀에서 많이 쓸수록 좋은 글이 나온다고 자꼬 격려의 단톡을 보내시던데...
글에서도 과연 다다익선의 진리가 존재하려는지 나도 믿고 그 길을 가볼까.
이불킥의 어설픈 글들에 대한 부끄러움은 구독자의 몫으로 남겨둔 채 가~ 보자으~
결론이 없는 뜬금없는 글로 각인될까 두려운 소심한 나의 빛깔이 내린 나의 글쓰기의 이유는...
누군가에게, 또 세상에게 하지 못한 후회와 미련으로 가득 채운 나의 감정을 전하기 위해서 나는 글을 쓰는 것이라 하련다.
아직은 여기까지가 내 결론이다.
사실은 더 써내려가다 보면 또 다른 결론에 도달하는 혜안이 생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