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리뷰] 엄마의 원피스 - 김준정

닭가슴살이 좋다던 그녀

by 이혜주

그녀는 닭가슴살을 더 좋아한다고 했다.

"진짜?"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잠시 어리둥절해 하며 물었다.

"닭 다리살 말고 닭 가슴살을 더 좋아하는 사람이 있기도 하네. 그럼 이거는 내가 먹는다." 라며

나는 신이 나서 닭 다리를 내 접시에 덜었다.

그 후로 그녀와 함께 몇 마리의 닭을 더 먹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한참동안을 닭을 먹을 때마다 닭가슴살이 더 좋다고하던 그녀를 생각했었다.


또 있다. 그녀와 꼭 같은 얘기를 하던 사람이.

나의 작은 언니도 닭가슴살을 더 좋아한다고 했다.

그럴 때마다 작은 언니는

"어릴 때부터 닭다리를 먹어 본 적이 없어서 나는 닭다리의 맛을 모른다. " 라고 원망섞인 K-둘째 딸의 울분을 토해 내도 우리들은 그만큼 엄마의 속을 더 많이 썩였으니 되었다 했다.


K-둘째들.

분명 속으로만 억울해하며 티를 전혀 내지 않았다던 내 주변의 두 K-둘째들은 나를 제외하고도 마치 둘이 진짜 자매들인냥 살갑게 지냈다.

친구의 언니, 동생의 친구라는 이상한 관계였지만 그들은 묘하게 닮아 있었는데 이 책의 닭가슴살 언급부분에서 묘한 관계의 이 둘을 떠올리며 그 까닭이 확하게 와 닿았다.


닭가슴살을 좋아한다던 소신이 뚜렷한 두 여자가 떠올라 웃음이 났다. 닭다리를 먹어 본 적이 없이 자라느라 닭가슴살을 더 좋아하게 되었다는 그녀들은 내가 아는 한, 자신들의 취향을 가장 정확하게 알고 있는 선명한 사람들이었다.

본인이 가장 좋아하는 것과 그 까닭까지 명확하게 다른이에게 설명을 해내고 동의를 빙자한 설득을 좋아하는 그녀들 맛 볼 수 없어서 좋아할 기회도 얻지 못 한 닭다리대신에 닭가슴살을 좋아한다고 했다.




왠지 눈물이 날 것 같아서 계속 미뤄 두었다.

가장 손에 잘 닿는 곳에 <엄마의 원피스>를 두었지만 눈길은 자꾸 피하게 되었다. 이 원피스의 주인과 작가처럼.

나는 이 원피스의 주인을 알고 있다. 회색빛의 승복을 위아래로 차려 입고 역시나 회색 빛의 작은 배낭을 메고서 가볍고 경쾌한 발걸음으로 집을 나서던 자그마한 체구의 작가의 엄마.

아직 비몽사몽인 이른 아침에 낮은 목소리로 가만가만히 애절하게 에게,

"혜주에이~ 느그들 성불해야 된데이. 부처님께서 다아~ 보고 계신데이~(성대묘사 중) " 하며 마땅치 않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한 눈빛으로 흐트러질대로 흐트러져버린 우리들을 한참을 쳐다 보고 있노라면

"아, 좀~!!!!" 하는 그녀의 앙칼진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 한 발짝 물러 서 버리느라 잔소리는 거두어 들이지만, 아직 한참이나 미련이 남은 뒷 모습으로 회색 배낭을 울러매고 나서시던 어머니.


스타일은 또 다르지만,

"가스나들, 오늘은 또 어디로 싸돌아 칠라고 이래가 모딧쌋노. " 하며 앙다문 입술로 눈을 가르스름하게 뜨며 센 척하던 나의 엄마도 요리에는 소질이 없었던 것은 이 원피스의 주인과도 비슷했다.

실력이 없던 요리와 먹혀들지 않던 잔소리들로 배가 부를 리 없는 우리들었다. 맛이 없어 손이 가질 않던 요리만큼 효과도 없던 잔소리들이었지만 그 덕분에 우리는 어른 비스무리하게 성장했다는 것은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사실이다.




"대충 밥 챙겨 먹고 출동 하자." 며 냉장고 문을 열라 치면 그녀는 어김없이

"냉장고 먹을 만 거는 하나도 없다." 서둘러 냉장고 문을 닫고는 김치를 볶기 시작한다.

"귀찮게 머러 그러노? 대충 있는 반찬 먹고 말자." 나는 입이 까치롭지 않아 반찬 하나로도 적당히 한 끼는 때우는 편이건만

"먹을만한 반찬이 진짜로 하나도 없다. 우리 엄마 반찬은. " 던 그녀.


사실은 나도 한 때 내내 엄마에게 하던 당부는

"음식 아무 것도 하지 마라." 였다.

우리 엄마는 비싼 한우며, 철 생선들의 제 맛을 잃게 하는데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데도 자꾸 무언가를 만들어 싸 가지고 오던 그런 엄마가 이 책을 읽는 내내 떠올라서 울컥했다.

외면을 당하건만 내내 아침을, 점심을, 저녁을, 세 끼니를 우리에게 제공하던 것은 엄마의 숙명과도 같은 사랑이었음을 나는 미처 깨달지 못했고, 따뜻한 감사의 말을 한번 전해 듣지 못한 내 엄마가 너무 불쌍하여 몇 달만에 다시 사죄의 눈물이 흐르는 것을 참지 않았다.


"엄마, 이번 김치 대성공이야!"
엄마는 그간 쌓였던 설움 때문인지 조금 울먹거리면서 다행이라고, 고맙다고 했다. 어쩐지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내 이럴 줄 알고 자꾸 손을 대지 않으려 했건만 한번 손에 잡으니 놓을 수가 없다. 장 하나하나가 살 속에 파들어 와서 내 혈액을 따라 들어와 내 뇌세포에 콕 박히는 느낌이다. 하나 하나의 문장들을 따라 읽어가다 보니 순식간에 마지막장에 다다랗다. 첫 장에서보다 마지막 장으로 갈수록 내 마음이 더욱 담담하게 그녀를 마주할 수 있게 되어서 내게 그럴 힘을 준 작가님의 용기에 큰 박수를 쳐 주고 싶었다.


그간 꾹꾹 독수리타법으로 눌러 섰을 그녀의 모습과 오버랩되는 습작들에서 시작었을 작가님의 완성품이 이렇게 정갈하고 세련되게 누군가의 마음을 두들이는 글 탄생한 것 묵도하며, 작가님의 인고의 시간이 그대로 보여져서 마음이 몹시도, 대견...하다는 표현이 맞나? 아니, 자랑스고 대단하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다. 자랑스럽다.


나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작은 이야기이지만 정성을 들여보자는, 대단한 능력은 없지만 그래도 반보씩이라도 걸어보자는 마음이 생긴다. 그러면 다음 반보를 걸을 힘이 생길 테니까. 한번 리듬을 만들어 놓으면 어떻게든 하게 된다고 말하는 그는 그렇게 매일 달리기와 글쓰기를 하고 있으니까.


구구절절 변명도 많고 설명할 것도 많아지느라 늘 촌스러운 나와 다르게 그녀는 늘 명확하고 정갈하고 깔끔했다. 그래서 더욱 세련되게 사람의 마음을 뒤흔드는 매력이 있다. 꼭 정갈하고 세련된 글체 때문만은 아니다. 제 갈 길을, 제 할 일을 제대로 맞게 꼭 찾아내어 이루어내는 걸음을 내딪는 그 반보의 용기가 진짜로 자랑스럽고 대단하다.


그때부터 나는 관객이 아니다. 감정의 주체가 되어서 나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된다. 이것이 나를 자유롭게 만든다. 내 감정을 누구에게 기대지 않고 온전히 느끼고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이 삶을 기대하게 했다.


작가의 말을 빌려, 고생했고, 애썼고 많이 힘들었던 거 다 안다고, 세상이 다 알아봐줄 거라고 토닥거려 주고 싶다. 마음속에 있는 너에게 너를 향하는 그치지 않는 눈물을 이제는 닦아길 간절히 바란다.

그리고 가끔은 눈물을 흘려도 괜찮다. 눈물속에서 그녀는 또 성장하고 더 멋진 미래를 그려갈 것이니까.


이제는 어린 시절의 경박함에서 벗어나서 상대를 존중하는 태도를 가진 사람이라면 얼마든지 환영 이다. 이성적인 매력이 없는 것보다 예의가 없는 사람과 대화를 하는 게 더 괴로운 일이니까.


이제는 경박하지 않고 상대를 존중하는 태도를 지닌 예의있는 사람과 인생을 아름다운 대화로 가득 채워나가며 행복한 나날들을 살아가시다가 환하게 시 웃으며 만날 그날을 기대 본다.


무모했지만 조심스러웠고 거침없었지만 배려가 넘쳤던 그녀의 20살에게 꼭 보여주고 자신을 좀 더 사랑해보아도 좋을 것이라고 얘기해주고 싶은 책이다.




초밥이 손에는 손풍기가 들려 있었다.
"엄마 산에 갈 때 들고 다니면 좋을 것 같아서"
"우와~ 이거 들고 다닌 사람들 진짜 귀찮겠다고 생각했는데, 나도 들고 다니게 생겼네? 신기하게도 보기만 해도 귀찮아진다. "

늘 이런 식의 그녀의 반어적인 농담이 그리워서 줄을 쳐두고 자꾸 읽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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