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잔향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새로 칠해진
담장 밖에서 이제 남의 집이 된 그곳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어머니가 활짝 웃으며 다가오실 것만 같았다. 오빠 둘에 막내딸로 자랐던 나는 결혼과 함께 정든 집을 떠나왔다. 어릴 적 그리움이 깃든 그 자리는 어머니께서 돌아가신 후, 다른 사람의 소유가 되었다.
그분의 모습이 그리워질 때면, 이제는 내 발길이 닿을 수 없는 공간, 황남동 옛집을 멀리서 바라보곤 했다. 그리고 그 낯선 풍경 속에서 옛 잔상을 애써 떠올렸다.
어머니는 평생 꽃과 함께 사셨다. 마당의 흙 한 줌 에도 따뜻한 생명을 불어넣으시듯 사계절 꽃으로 가득했다. 돌담 아래 알록달록 무리 지어 피어나던 채송화, 골목길 앞을 화사하게 밝히던 과꽃, 돌담에 기대어 노랗게 키다리처럼 피어나던 이름 모를 꽃 들.... 특히 붉은 샐비아 꽃을 따서 꿀을 빨아먹던 어린 시절의 기억은 입가에 맴도는 달콤함처럼 생생한 추억으로 남아있다. 봉숭아꽃을 빻아 백반을 넣고 무명실로 꽁꽁 동여매어 주시던, 그 손길에 물든 내 붉은 손톱의 꽃물이 그립다.
"하얀 대문 위의 빨간 장미꽃."
다니던 초등학교 바로 앞의 그곳. 국어시간 선생님께서 짧은 글짓기 예시로 말씀하실 때, “아, 우리 집인데....”하며 가슴이 두근거렸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 정원은 어린 마음의 자부심이었다.
지금은, 검은 비닐이 덮이고 상추 등 채소가 심어져 있었다. 예전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지만, 신나게 뛰놀던 어린 나를 떠올리며, 꽃을 가꾸시던 어머니를 겹쳐 그려본다. 시간의 흐름과 변화 속에서도, 마음속 깊은 곳에는 그 시절 자상하고 포근했던 사랑하는 이의 모습이 여전히 생생한 잔상으로 남아있다.
한편, 내가 살던 황남동은 이제 ‘황리단길’이라는 이름으로 전국, 아니 세계에서 관광객들이 모여드는 생동감 넘치는 곳이 되었다. 마침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열려 수많은 인파가 방문할 예정이라, 그 어느 때보다 도시 전체가 들썩이는 듯하다. 익숙했던 동네가 낯선 활기로 채워지는 모습을 보며 상념에 잠긴다. 어머니와의 추억이 깃든 공간은 사라졌지만, 그 자리에 새로운 시대의 활력이 샘솟고 있다.
현재의 황리단길,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이곳에서 아름다웠던 어린 시절을 기억한다. 삶이란 결국 사라지는 것들과 남겨지는 것들에 대한 성찰이다. 눈에 보이는 물체들은 변하고 없어질지라도 생활 속에서 가르쳐주신 사랑과 따스함은 마음속 깊이 간직하고 있다. 그리고 그 추억의 힘으로 오늘을 살아갈 또 다른 원동력이 된다. 시간이 흘러 모든 것이 변할지라도, 어머니의 향기만은 가슴에서 영원히 지지 않는 꽃처럼 남아 있다. 그리운 이의 흔적, 빛바랜 사진 한 장에 담긴 아스라한 추억은 세상 속에서 기댈 수 있는 가장 굳건한 내면의 유산이고 축복이다.
고대 로마의 철학자인 키케로는,
“살아 있는 동안 우리는 기억 속에 머물러 있고, 우리가 죽은 후에도 기억 속에 머물러 있다면 우리는 살아 있는 것이다.”라고 했다.
나 또한 어머니의 삶을 거울삼아, 훗날 누군가의 마음속에 따뜻하고 아름다운 영원한 잔향으로 남고 싶다.